그 감정의 이름은 부끄러움이었다

말로 꺼내기 어려운 감정, 수치심!

by 민경수

사람들은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길 꺼려한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그렇다.


누군가에게는 말하고 싶지만,

또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부끄럽다’는 말은 비교적 가볍게 사용되지만,

그 감정 안에는 더 깊은 정서가 숨어 있을 수 있다.

우리는 때때로 그 감정을 ‘수치심’이라고 부른다.


수치심은 단순한 부끄러움보다 훨씬 더 강하고

스스로를 위축시키는 감정이다.

수치심은 다른 사람의 눈에 내가 못나 보일 것 같은 느낌이며

타인의 부정적 평가에 대한 두려움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을 쉽게 드러내지 않고

경계하고 조심하게 된다.


수치심의 근원은 명확하지 않지만

어린 시절 중요한 대상으로부터의 비난이나 경멸이 내면화되어

자신을 향하면서 생겨난다고도 한다.

그 결과, 과거에 누군가가 자신을 대하던 방식이

어느새 자신이 자신을 대하는 방식으로 자리 잡기도 한다.

혹은 어떤 행동이 사회적 기준에서 벗어나 있다고 느낄 때

스스로를 향해 느끼는 감정이기도 하다.


상담실을 찾는 내담자들은

‘부끄럽다’는 말은 비교적 쉽게 하지만

‘수치심을 느낀다’는 표현은 조심스러워한다.

그만큼 수치심은 더 깊고, 다루기 어려운 감정이다.


나 역시 내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는 일들이

그 당시에는 참 부끄럽고 감추고 싶었던 기억들이 있다.





나는 지방 그것도 더 들어가는 시골에 살았었다.

그래서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버스를 타고 통학을 했다.

어느 날 하교길 버스에서

술에 취한 아빠를 마주친 적이 있는데

왜 그랬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버스에 오르는 아빠를 모른 척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빠가 부끄러웠다기보다는

그 순간의 상황을

다른 사람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었던 것 같다.


아빠는 돌아가신 지 오래되었고

지금의 나는 그분을 떠올릴 때

따뜻하고 자상했던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동네 어르신들 사이에서는

“법 없이도 살 분”이라 불릴 만큼 선하고 다정한 분이셨다.

너무 사람이 좋아서

오히려 보호받아야 할 것 같은 분이었다.


그런 아빠를 내가 왜 외면했을까?

아마도 ‘술에 취한 아빠’라는 모습이

내가 속한 사회적 시선과 충돌했고

그 상황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는 것이 두려웠던 것 같다.

그 감정은 단순한 부끄러움을 넘어

‘내가 이런 모습을 가진 가족을 드러내도 괜찮은 사람일까’라는

자기 존재에 대한 불안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는..

나를 보호하느라 아빠를 외면했지만

아빠도 내 마음을 알아채셨는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지나가 주셨다.


지금 같으면 아빠를 부축해 함께 앉아 버스를 탔을 텐데..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부끄러움 속에 숨은 수치심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아이였다.


우리는 수치심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수치심을 바탕으로 형성된 자기 인식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이 드러날까 두려워 끊임없이 긴장하고 불안해한다.


앞서 이야기했던 나의 경험처럼

수치심은 때로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의미를 이해하게 되는 감정이다.


그렇기에 과거의 경험을 다시 떠올리며

그때 느꼈던 감정을 솔직하게 마주하고

해석해 보는 작업은 중요하다.

이러한 정서적 재경험을 통해

흔들리는 자존감을 회복하고

보다 온전한 자기 인식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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