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어와 문어

by 심시현

-언문일치

한글학의 거봉 주시경 선생은 18살 때 중국의 고시집인 ‘시전’을 배웠다.

“벌목정정 조명앵앵”

스승은 수수께끼 같은 문장을 읽고는 뜻풀이를 시켰다. 벌목정정 조명앵앵... 주시경을 포함한 학생들은 뜻을 풀 수가 없었다. 스승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풀이한 내용은, 나무 찍는 소리는 쩡쩡 울리고 새들은 짹짹 울음을 우네... 이 별 것 없는 내용을 듣고 주시경은 허탈한 한편, 답답한 마음을 가눌 수 없었다. 한글로 하면 명료하고 쉬운 것을 굳이 한자로 쓰고 뜻풀이를 하는 이 끔찍한 언문 불일치를 그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의 한글 연구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근대 이전 언어생활의 문제는 주로 언문불일치였다. 세종께서도 이를 직시하셨다.

‘어린 백성이 이르고자 할 바가 있어도 문자와로 서로 통하지 아니함으로...’

이것이 세종의 한글창제 이유였다. -세종이 위대한 왕인 것은 알파벳의 꿈이라고 하는 한글을 창제했다는 사실뿐 아니라 그 동기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에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종의 위대한 업적이 백성들을 편하게 하는 언문일치로 나가는 데는 어이없을 만큼 긴 시간이 필요했다. 여러 요인이 있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지배층의 사대사상과 오만이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언문일치는 독립신문과 유길준의 ‘서유견문’ 그리고 신소설 등을 지나 1910년대 이광수 김동인의 작품을 통해 마침내 완성에 다가간다. 신소설은 내용 면에서는 고대 소설과 확실한 차이를 보여주었지만, 판소리 사설의 운율과 ~이더라, ~하더라 등의 어미를 사용함으로 언문일치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와 같은 어미가 ‘이다’, ‘하다’로 바뀌면서 언문일치는 어느 정도 완성이 된다. 김동인은 그의 회고록에서 ‘~이다.라는 어미를 사용한 것은 내가 최초였다.’고 말했다.


언문일치가 중요한 이유는 말과 글로 더 이상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을 나눌 수 없다는 데 있다. 언문일치가 이루어짐으로써 피지배계급은 문자생활에서 소외되지 않을 수 있었고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다.

-구어와 문어

많은 선각자들의 노력으로 언문일치가 새삼스러운 기억이 된 지금, 언어생활의 다른 각도에서 시선을 끄는 것은 구어와 문어다. 구어와 문어는 언문일치와는 다른 문제다. 때문에 사회계급적 관계나 상하, 우열의 관계로 보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가장 단순하게 정의하면 구어는 입으로 표현되는 말이고 문어는 문자, 즉 책이나 문서 등으로 표현되는 말이다. 우리말에서는 종결어미에서 구어와 문어의 차이가 단적으로 나타난다. 구어는 ~해요. ~에요. 지만 문어는 ~하다. ~이다.로 문장이 종결된다.

언문일치가 화두인 때, 이다, 하다 등은 언문일치를 이루는 어미였지만, 지금 그것은 문어체의 대표적 종결어미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구어체와 문어체를 구분할 수는 없다. 유력한 지도자가 공식적인 발표를 할 때는 문어체를 쓴다(문어체 구어). 개인이 일기를 쓸 때는 굳이 문어체를 쓰지 않고 구어체를 쓸 수 있다(구어체 문어). 그러므로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구어와 문어의 실제적인 차이라고 하겠다.


21세기 한국어는 구어와 문어의 차이가 큰 언어다. 그리고 그 차이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문어체는 점점 낯선 언어가 되는 반면 구어체는 친숙함과 편함을 무기로 계속해서 확장되며, 별다른 저항 없이 문어를 대신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구어는 인본주의와 맞물려 사람들의 호감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구어와 문어를 저울에 올린다면 추는 구어 쪽으로 완전히 기울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언어에는 분명 지켜야 할 규칙과 형식이 있다. 그것을 다른 말로 ‘격’이나 ‘가치’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그것이 무너진다면 그 언어는 단순히 의미전달의 도구 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다.


괴테가 나오기 전까지 유럽에서 독일어는 너무 거칠어서 문학을 할 수 없는 언어로 취급되었다고 한다. 그 편견을 깬 이가 괴테였다. 유럽은 괴테의 작품을 보며 독일어로 이토록 아름다운 문학이 가능하다는 것에 감탄했다고 한다. 이것은 극단적이지만 문어의 역할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문어에는 문어의 역할이 있고 구어는 구어의 역할이 있다.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문어체로 표현되는 구어체는 다시 돌아봐야만 한다. 2인청 대명사 '너'는 구어로는 '니'지만 글로 쓸 때는 '네'라고 해야 한다. 또 '너가'라는 표현은 문어체로는 틀린 말이다. 할거에요. 할꺼에요. 등에서도 '거'를 글로 표현할 때는 '것'으로 해야 한다. '너무 좋았어요'는 구어체로도 틀린 말이니 글에서는 더욱 써서는 안 된다. 이 예는 간단한 것들이지만 찾아보면 많은 오기들이 눈에 뜨인다.

말을 할 때도 문어체 구어를 써야 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방과 상황을 가리지 않고 마구 쏟아지는 구어체는 듣는 사람으로서는 몹시 민망하고 피곤한 일이다.


글을 쓰고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문어체의 규칙을 지키고자 노력해야 한다. 시적 허용이나 문학적 표현이 아닌 한, 손쉬운 구어체를 글로 표현할 때는 충분한 고민이 먼저 있어야 한다.

문어와 구어의 큰 차이는 문해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문어에는 국한문혼용체의 흔적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한자는 우리말에서 ‘뜨거운 감자’ 임이 분명하지만, ‘출입금지’ 같은 한자가 관용적으로 계속 쓰이고 있는 것은 한글로 쓰면 문장이 될 내용들을 간단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한자 어휘를 한글로 바꾼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한 사회의 언어를 인위적으로 바꾸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때문에 문해력향상을 위해서는 이런 어휘들을 익히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문어 위주의 사회가 주는 난해함과 불편함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 배웠다. 반대로 구어 위주의 사회는 편리함이 지나쳐 가벼움과 경박함으로 갈 수 있다. 문어와 구어는 저울의 추가 균형을 이룰 때 가장 바람직한 모습일 것이다. 지나치게 한 쪽으로 기울어졌다면 다시 중심을 맞춰야 한다. 언어에는 정신과 삶의 태도,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모두 담겨있기 때문이다.


균형을 이룰 때,

구어는 문어의 지나친 엄격함과 경직성을 덜어 줄 것이고, 문어는 구어의 자유분방함을 잡아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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