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자기가 무엇을 원하고 생각하고 느끼는지를 알았다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그는 익명의 권위에 순응하고, 자신의 자아가 아닌 자아를 받아들인다. 그럴수록 무력감은 더욱 심해지고 더욱 순응할 수밖에 없다.
-에리히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중에서
에리히프롬은 근대인에게 자유가 주어졌지만, 개체화된 개인은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보다 독재자에게 자유를 넘겨주거나 스스로 기계의 작은 톱니가 되어 자동인형 인간이 된다고 했다. 급속한 과학 기술의 발달과 사회의 변화는 개인을 더욱 고립시키고 고립된 개인은 뒤쳐진다는 불안과 아무것도 해낼 수 없을 것만 같은 무력감, 그로 인한 자기 비하에 빠진다. 고독한 개인은 이 불안을 감당할 수 없기에 자유를 추구하기보다는 시스템 안에 편입해 안전을 추구한다. 이것이 저자가 말한 자유로부터의 도피다.
생각해 보면 나는 줄곧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시골에 사는 부모를 떠나 도시에 사는 한 친척집에 얹혀살았다. 경제적인 이유는 아니었고, 내가 그러고 싶다고 했다. 어린것이 뭘 알고 그런 말을 했을까 싶지만, 야심이 있던 아버지는 나를 도시로 보냈다. 아버지의 기대와는 달리 성적은 나오지 않았고 나는 조용하고 평범한 중학교 생활을 마쳤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학교 앞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친척의 괴롭힘이나 차별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때도 그러고 싶다고 그랬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떤 의도나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저 혼자 있고 싶었던 것 같다. 정체를 알 수 없지만 무언가 어깨를 짓누르는 듯한 무게를 막연하게 느꼈고, 혼자가 되면 그 알 수 없는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여겼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공부를 못했고 말이 없었고 특별할 게 없는 아주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때는 야간자율학습이란 게 있었는데 매일 9시까지 꼼짝없이 학교에 갇혀 있어야 했다. 나는 규율에 따라 독서실 같이 생긴 칸막이 칸에 앉아 전혀 자율적이지 않은 그 시간을 보냈다. 야자가 없는 주말이면 집에서 혼자 라디오를 듣거나 책을 읽었다. 혼자 있는 게 외롭다는 생각을 했지만 한편으로 자유로웠던 것 같다. 어떤 간섭도 없는 그 상태가.
어느 비 오는 날, 그날도 역시 학교에 갇혀 있었다. 나는 성에가 낀 창문에 손가락으로 freedom이라고 썼다. 선생님과 반 아이들이 볼 수 있을 정도로 크게. 내가 그 행동을 기억하는 이유는 나중에 친구들이 이거 누가 썼냐고 수소문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조용히 손을 들었다. 존재감 없던 애가 그림도 아니고 하고 많은 말 중에 자유를 썼다는 사실에 아이들 일부는 놀라워했고 일부는 웃었다. 그때의 나는 어렴풋하게 자유를 감각하고 있던 것이다.
그날 놀라워하던 친구들의 표정과 웃음소리에서 내가 그들과 어딘가 다르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꼈고, 잘 알 수 없지만 그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가게 되리라는 예감을 받았다. 어렸던 그 순간부터 나는 서서히 만들어지고 있었고 지금까지도 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나만의 개성을 지닌 한 독창적인 인간으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라고 믿고 싶다.
40대, 결혼하지 않고, 안정된 직장도 없고, 모아둔 자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인생 계획이나 포부가 있는 것도 아닌 나는 솔직히 불안하다. 어찌 불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선택한 이 길이 맞는지 의심하고, 주변의 상황과 사람과 비교하고, 시도 때도 없이 자기 비하와 무력감에 빠지고. 자유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순간은 너무나 빈번하게 찾아온다. 특히 40대가 된 이후 더 자주. 하지만 이런 기분을 피하지 않는다. 이 불안이 인간 본성의 고유한 경향이고, 진정한 나다움에 이르는 데 필요한 요소라고 보기 때문이다. 나는 이 불안을 동력 삼아 보다 나다운 길을 꾸준히 고민할 뿐이다.
프롬은 개인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른 채 외부에서 주입된 생각을 자기 의지로 착각하며 이 환상 덕분에 자신의 불안한 상태를 깨닫지 못한 채 살고 있다고 했다.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자아 상실이다. 그리고 오늘날 대부분의 개인은 자아를 상실해 버린 것 같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자유로부터 도피해 의존과 복종의 상태로 들어가거나 아니면 고독과 불안을 직시하고 독자성과 개인성에 바탕을 둔 적극적인 자유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거나 둘 중 하나이다.
당신은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