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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 커피

by bxd May 0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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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OeEC9HpgzE0


오후 늦게 마신 커피 탓인지 밤새 잠을 설쳤다. 젊을 땐 하루에 대여섯 잔씩 마셔도 끄떡없었는데 언제부턴가 커피에 예민한 몸이 되어버렸다. 밤잠에 지장이 없으려면 오후 2시가 마지노선이었다. 그 시간을 넘겼다간 어김없이 새벽행이었다. 예전에 디카페인 커피를 시키는 지인에게 커피는 카페인 맛 아니냐며 농담처럼 핀잔을 준 적이 있었는데, 그게 내가 될 줄을 꿈에도 몰랐다.

두어 시간쯤 잤을까. 문 여는 소리에 깼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일어나셨죠?


뿔테 안경을 쓴 여자의 낮은 목소리가 더 둔탁해져 있었다.


아니에요. 일어나야 되는데... 아~ 가기 싫다~~


발장구를 치며 투정을 부렸다.


더 주무셔도 돼요. 아직 시간 있어요.


여자 쪽이 언니고 내가 동생 같았다. 자아 찾기 중인 여자는 나와 스무 살 가까이 차이가 났는데 등치도 크고 의젓한 것이 어른스러운 데가 있었다. 어제 저녁 고깃집에서도 말없이 술잔만 들이키길래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어보니 촬영 일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재미있느냐고 물어보니 잘 모르겠다며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찾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혼자 소주를 두 병이나 마셨다. 자작을 하는 모습이 자주 혼술을 하는 듯했다. 여자에게는 그 나이대 특유의 쾌활함과 발랄함이 없었다. 한 진지 하는 나로서 이런 친구들을 보면 괜스레 마음이 기울었다.

이른 아침, 여자와 나는 택시를 타고 제주공항으로 이동했다.

이런 얘기 꼰대처럼 들릴 수 있는데, 좋아하는 게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괜찮은 것 같아요. 좋아했던 것도 어느 순간 안 좋아지기도 하고, 좋아서 열심히 는데 잘 안 되기도 하더라고요. 그냥, 그때그때 마음 가는 대로 재밌게 하면 되는 것 같아요. 재밌게. 크게 고민할 필요도 없고. 물론 고민해야 할 땐 해야겠지만.

그것은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머리를 비우고 가볍게 살아도 되는데 그게 잘 안 됐다. 세상 고민을 혼자 짊어진 듯 왜 그리도 무겁게 살았는지. 이번 여행을 통해 바라는 것이 있다면 좀 가벼워지는 것? 날아가듯 흘러가듯 살고 싶다.

공항에서 헤어지며 여자는 서울 가서 연락해도 되느냐고 물었다. 연락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지만 그럼요,라고 웃으며 악수를 건넸다.


자아 꼭 찾길 바래요.
감사합니다. 즐거운 여행 되세요.

짧은 인사를 남기고 우리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자는 공항 안으로, 나는 렌트를 하기 위해 셔틀버스로.




9시가 되자마자 경찰청에 전화를 걸었다. 간단한 확인 절차가 끝나고 면허증 번호가 메시지로 왔다. 렌터카 사무실에 와서도 키오스크로 수속을 마쳤다. 이후 절차와 사용에 관한 주의사항은 모두 카톡으로 받았다. 사람이 필요 없었고 효율적이고 신속했다. 제주도가 아날로그 감성 충만한 시골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첨단 제주시다.

영수증에 적힌 구역으로 가니 나의 모닝이 보였다. 앞으로 일주일간 나의 발이 되어줄 모닝. 차에 시동을 걸고 말을 건넸다.

모닝아, 내가 오늘 굉장히 피곤하니까 날 잘 지켜줘야 한다.

이제 어디로 갈까. 오전에 예약해 둔 투어까지 시간이 남았다. 그렇다고 숙소에 들러 짐을 싣기에는 애매했다.

역시 잠을 깨는 데 커피만 한 게 없지.

카페를 검색하고 핸들을 틀었다. 뚜벅이었다면 불가능하지만 나에게는 모닝이 있다.

모닝 커피 한 잔이 당기는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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