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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빠진 새앙쥐

by bxd May 0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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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FcBL3VxKCeY


삼십 명의 사람들이 우비를 입고 거문오름 탐방로 안내 표지판 앞에 모였다. 거문오름은 숲이 우거진 모습이 검게 보여 붙여진 이름으로 사전예약을 해야지만 방문이 가능한 곳이었다. 200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자연유산지구이며 자연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하루 방문 인원을 제한하고 있었다.

해설사의 통솔 아래 사람들은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걸었다. 작은 체구의 해설사는 매일 산을 오르내려서 그런지 연세가 있으신데도 동안에 폐활량도 남달랐다. 사람들이 헉헉거리는 와중에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안정된 톤으로 설명을 이어 나갔다. 문제는 비가 오는 데다 비옷이 내는 마찰음으로 인해 마이크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설명을 놓칠 새라 무리의 선두자리를 지키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탐방로 초입의 완만한 경사로를 지나자 가파른 계단과 함께 첨탑같이 높게 뻗은 삼나무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어제 오늘 계속 비가 와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미지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트와일라잇의 늑대인간과 뱀파이어가 살 것 같은 신령스러운 곳. 우리식으로 하면 구미호와 도깨비가 살 것만 같은 그런 곳.

삼나무를 제주도 사람들은 쑥대낭이라고 불러요. 쑥쑥 큰다고.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들여왔는데, 제주도에 바람이 많잖아요. 귤농사 같은 거 지을 때 바람 막는 용도로 삼나무가 많이 심어졌어요.
선생님, 삼나무가 지들끼리 뿌리를 막 올가맨다카대요? 그래서 아무것도 몬 자란다카대. 그기 맞아요?


 아주머니가 경상도 사투리로 물었다.


맞아요. 삼나무가 워낙 번식력이 강하다 보니까 다른 식물종이 못 자라서 지금 문제가 되고 있거든요. 그래서 간벌작업이 진행 중이에요. 좀 더 들어가면 곳곳에 삼나무가 베어진 걸 볼 수 있어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고개를 끄덕였다. 해설사의 설명을 리플릿에 받아 적으며 지면 아래서 여러 겹의 나무뿌리가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장면을 상상했다. 바오밥나무가 행성을 움켜쥐고 있던 어린왕자의 장면도 떠올랐다. 해설사 옆에 붙어 물었다.


삼나무가 이게 얼마나 된 거예요?
70년대 녹화사업 때 심은 거니까 50년 됐겠네요.
50년밖에 안 됐는데 이렇게 커요


해설사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걸 누가 심었어요?


내가 다시 물었다.


우리들이요.


해설사의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가득 차 있었다. 50년 전이면 해설사는 국민학생이었을 것이다. 당시 학생들도 녹화사업에 동원되어 책가방을 메고 삽과 곡괭이를 들고 등교했다. 일본의 제국주의 야심을 뒷받침하기 위해, 혹독한 전쟁 통에, 이후 가난한 국민들이 겨울을 나기 위한 땔감으로, 화전민이 농사를 이유로, 질곡의 현대사 속에서 나무는 숱한 수난을 겪으며 처참히 베어졌다. 한때 민둥산이었던 산이 이제는 나무로 뒤덮였다. 2차세계대전 이후 산림녹화에 성공한 유일한 나라 대한민국. 그리고 그것을 기꺼이 감당해 낸 사람들. 교과서에서나 보았던 역사의 한 장면이 머리를 때렸다. 인간이란 대단하구나.


250개의 계단을 올라 1룡에 도착했다. 한라산을 포함해 여러 오름이 보여야 할 곳은 희뿌연 안개가 에워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해설사는 장관이 보이지 않아 아쉬워했지만 내겐 오히려 이 광경이 더 신비하게 느껴졌다. 자연에 압도되어 입을 떡 벌린 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한 시간 정도 지나 정상 코스를 내려오니 빗줄기가 더 굵어져 있었다. 숲 속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나무가 비를 막아주었던 모양이다. 리플릿이 젖을까 소매 안쪽으로 집어넣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출구를 향해 내려갔고 나세 명의 아주머니 일행이 남았다. 이어지는 분화구 코스를 돌려면 한 시간 반 정도를 더 걸어야 했다. 나에게 이런 체력과 열정이 남아있었다니. 나, 아직 살아 있었네.


조촐해진 일행은 동네 마실 나온 듯 슬렁슬렁 걸었다. 해설사도 마음이 편해졌는지 아까보다 더 많은 지식을 알려주었다. 덕분에 바빠졌다. 설명을 적고, 사진을 찍고, 펼쳐진 광경을 둘러보느라 자꾸만 일행에서 뒤처지고, 뛰어서 따라잡기를 반복했다. 나도 참... 가벼워지고 싶다면서 비 오는 날 필기구를 들고 뭐 하는 짓인지. 나는 진정 가벼워질 수 없단 말인가.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 이게 나임을.

일행이 멈춘 곳은 어느 동굴 앞이었다. 그 앞에 일본군 갱도진지라는 안내판이 있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은 거문오름뿐만 아니라 제주도 전역에 수많은 군사시설을 만들었다. 제주도 내 360여 개 오름 가운데 일본군 갱도진지 등 군사시설이 구축된 곳은 약 120여 곳이며 거문오름에서 확인되는 갱도는 모두 10여 곳이다.]

제주는 일본의 대공방어지였다. 일제는 미국의 일본 본토 공격을 막고자 제주도 전역을 병참기지화했고 제주 사람들은 진지 공사에 강제로 동원되었다. 춥고 어두운 공간에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공포 속에 하루 11시간씩 굴을 팠다. 고단한 노동에 쉬다 들키면 십장이 들고 있던 몽둥이로 때렸다. 좁은 굴속에서 몰래 쉴 때도 허리를 구부려야 했다.


아직 그 사람들이 이 땅에 살아 있다.

일제가 남긴 상처와 눈물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내려올 때는 혼자 걸었다. 일행이 저만치 앞에 있었지만 다리가 아파 도저히 따라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머니들은 어디서 저런 힘이 나오는지.


하산길을 따라 탁 트인 억새길이 이어졌다. 마음도 덩달아 활짝 열리는 것 같았다. 내리는 비에 억새도 나도 물에 빠진 새앙쥐 꼴이 되었다. 그게 나쁘지 않았다. 비를 맞아본 적이 언제였더라. 왜 이제껏 비를 맞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못했을까. 투둑투둑. 빗방울이 부서지는 소리가 리듬 같았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양팔을 벌리고 뻥 뚫린 하늘을 향해 고개를 젖혔다. 자유로웠다.

b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딛고 서 있는 이곳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의 모습이 보이자 크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신났네. 그렇게 좋아?
여기 너무 좋아.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됐어. 비 와?
어, 비 와.
완전 물에 빠진 생쥐 꼴이네.
여긴 왜 비도 음악처럼 내리는 거지?
아주 신났네.
같이 있으면 더 신났을 텐데.
됐어.
뭐야~ 실은 같이 있고 싶?
됐어. 거기서 좋은 사람 있으면 만나.


그는 그 얘기를 아주 쉽게 꺼냈다. 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곧잘 헤어짐을 이야기했다. 내 반응이 재미있다고 했지만 사실, 그 말이 언제 실현된대도 이상하지 않았다. 5년을 함께했지만 우리 관계에 대한 확신이 우리에겐 없었다. 그 사이 헤어졌다 만나기도 여러 번이었다. 그저 아쉬운 마음에 이별을 유보한 채 시간만 끌고 있었다.


내가 알아서 할게.


그가 피식 웃었다.


감기 걸려. 얼른 들어가.


그와 전화를 끊었다. 얕게 한숨이 나왔다. 이별을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왔음을 인정해야 했다. 언제까지 계속 미룰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곳과도.

아쉬운 마음에 뒤돌아 거문오름을 바라보았다.

과연 빽빽이 우거진 나무가 검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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