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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xd Nov 29. 2023

굿바이


여행하면서 이렇게 많은 일을 한 건 처음이에요. 다 언니, 오빠 덕분이에요. 진짜 다양한 일을 한 것 같아요. 오빠가 고생했겠지만. 이번 여행 정말 잊지 못할 거예요. 이헤.


이른 아침 제주 공항으로 향하는 도민의 차 안에서 j는 끊임없이 재잘거리고 있었다. 마치 지금이 아니면 영영 보지 못할 것처럼 못 다한 말을 쏟아내는 중이었다. j의 말처럼 나 역시 이번 여행을 잊지 못할 것이다. 아무런 기대 없이 시작된 여행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만남이 성사되었고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 새겨졌다. 이렇게 셋이 다시 만나게 될 날이 또 오게 될까. 뒤에서 조잘거리는 j의 목소리를 들으며 정면을 응시했다. 차 앞 유리로 익숙한 풍경이 보였다. 주차장을 찾느라 헤맸고 압도하는 자연이 주는 공포에 몸을 떨었던 그곳이었다.


여기 사려니숲길 아니야?

맞아.


도민이 대답했다.


사려니숲길? 여기 유명하지 않아요? 한 번도 못 가봤는데.


j가 뒤에서 말했다.


갈래?


내가 물었다.


어...


j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빠, 시간 되지 않아?

30분 정도 있을 수 있지.

그럼 잠깐 있다 가자.

그럴까?

어...


의견이 통일된 나와 도민과 달리 j는 아까부터 어, 어, 거리고 있었다. 즉흥적인 제안에 당황한 듯 보였다.


가자.


도민이 결정을 하고 유턴을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사려니숲길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지난번 두려움을 떨치려 엄마와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하고 음악을 틀고 주문을 외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날과 오늘은 사뭇 달랐다. 함께하는 일행이 있어서인지 하늘을 찌를 기세로 높다랗게 뻗은 삼나무는 근사하기만 했다. 그날 느끼지 못한 신성한 숲이라는 이름의 진가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다시 오길 잘했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을 대상을 온전히 마주하는 것이다. 외면하고 회피하면 영원히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숲길 안 데크를 따라 걷고 벤치에 누워 삼림욕을 했다. 나무가 내뿜은 상쾌한 공기가 코를 타고 들어가며 코끝이 찡고 몸 안의 나쁜 공기가 정화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짧게 휴식을 취하고 나와서는 지난번과 같은 푸드트럭에서 핫도그를 먹었다. 함께 나란히 서서 먹는 핫도그는 외롭지 않고 맛있었다. 줄무늬 고양이가 푸드트럭 아래서 같이 먹자고 냥냥 댔다.




이거.


가방에서 책을 꺼내 j에게 건넸다. 인생은 한 번뿐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이번 여행을 아름답게 색칠해 준 j에게 무언가를 선물하고 싶었고, 고민 끝에 여행 내내 함께한 이 책을 건넸다.


이거 언니가 좋아하는 책 아니에요?

난 다 읽었어. 편하게 읽기 좋더라고. j가 읽으면 좋을 것 같아서.

고마워요.


j는 오늘 아침에 공항에 오는 길에 산 따끈따끈한 오메기떡을 몇 개 쥐어주었다. 주머니에 떡을 넣고 j를 안아주었다.


잘 가.

갈게요.


j는 몇 발자국 앞으로 가더니 뒤돌아 다시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는 안으로 사라졌다. 도민과 나는 말없이 돌아서서 공항을 빠져나왔다. 차 안에서 도민도 나도 말하지 않았다. 뒤에서 종알대던 j가 없으니 차 안이 조용했다. 마음에 구멍 뚫린 것 같이 허전했다. 도민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민은 나를 제주시내 호텔에 내려주었다.


오빠가 아니었으면 진즉에 돌아갔을 거야. 진짜 너무 고마워.

여행 마무리 잘하고 조심히 가.


도민과도 이별했다. 도민의 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약간 허전했고 좀 외로웠다. 짧은 사이 함께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다시 혼자가 되었다. 혼자가 되면 얼마간의 적응 시간이 필요하다. 크게 숨을 내쉬었다. 캐리어를 끌고 발걸음을 내디뎠다. 또다시 새로운 여행이 시작되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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