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0일, 국제 행복의 날을 맞이하여
외할머니댁 근처에 숲으로 된 지름길이 나있었다. 그 지름길에는 돌 사이사이 마다 세잎클로버가 가득했는데, 그 사이에서 네잎클로버를 찾느라 한참을 들여다보곤 했다. 네잎클로버의 희귀성은 어린아이의 오기를 자극했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기적과 같은 '행운'을 갈망하게 했다. 그렇게 매번 들여다보아도 나에게 온 기적은, 내가 찾은 행운은 없었다. 남들이 신나게 네잎클로버를 꺾는 동안 나의 여리고 어린 마음이 꺾였다. 책 사이에 끼워두고 길이길이 기릴 행운이 나에겐 없었다는 것이다.
행운을 찾지 못했던 나는 운 좋게 100점을 받았고, 운 좋게 상을 받았다며, 나의 노력과 능력을 행운으로 치부해버렸다. 나에게서 발현된 행복을 부정한 채 비로소 나에게도 행운이 찾아왔다며 세잎클로버에 꾸역꾸역 한 잎을 이어붙였다. 순수한 행복마저 겸양으로 그 가치를 떨어뜨리는 게 참 어리석었던 것 같다. 순수한 시절, 그렇게 나는 불확실한 행운을 좇고 행복마저 행운으로 치부하느라 확실한 행복을 만끽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따스한 햇살 아래 돌을 덮을 만큼 가득 빛나는 세잎클로버를 단 하나도 가져오지 않았고, 가져올 생각 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눈앞에 가득한 행복도 가져오지 못했던 아이는 행복을 볼드체로 깊게 새기고 살아가는 어른이 되었다. 기적과도 같은 행운만 기다리다가, 눈 앞의 행복도 놓쳐버린 것에 대한 후회가 컸다. 어렸을 때 만끽하지 못했던 일상 속 행복이 더욱 크게 와닿았을 것이다. 행운의 탓이 분명 아닌데도, 오지 않는 것에 대한 무의미한 원망과 실망이 무수한 가치를 변질시키는 것 같았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곧, 대수로운 행운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짧은 점심시간에 커피를 마시며 책 10장을 겨우 읽는 순간도 행복하고, 상반된 방향에서 바라보는 평행선의 대화도 행복하다. 결국, 내 일상엔 행복 투성이였다. 행운은 딱히 필요하지 않았다.
억지로 이어붙였던 한 잎이 떨어지고, 오히려 더욱 아름다운 클로버꽃이 피었다. 잎의 개수는 결국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주어진 세잎의 행복을 만끽하며 앞으로 이 클로버꽃을 소중히 가꾸어 나갈 것이다. 소중한 너에게도 언제 함께할 지 모를 행운을 빌어주기 보단, 항상 함께하며 일상 속에 스며들 행복을 빌어주고 싶다.
"행복하자, 우리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