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인가? 그 임원이랑 이야기한다고 하더니 했어?”
그녀와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던 중 먼저 말을 꺼냈다.
“아… 어 이야기했어”
“어떻게 하기로 했어? 역시 내가 예상했던 대로 이야기를 해서 나한테 먼저 말을 못 꺼내는 건가?”
너무도 내 마음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그녀의 말에 나는 순간 강한 훅을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잠깐 앉을까?”
나는 앉아서 그녀에게 임원과 나눈 이야기를 해 줬다.
지금 있는 곳을 퇴사하고 합류하기로 결정했고 시기는 내년 3월에 하기로 했다고.
“결국 내가 예상했던 대로 했네… 오빠를 많이 안거 같아서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하네~”
“미안해 슬이가 해 준 이야기를 많이 생각하긴 했는데 그래도 내가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나 봐”
“뭐가 미안해. 괜찮아. 오빠가 잘 알아서 결정했을 테니”
“근데 주말에 파트타임식으로 일하면 우리는 주말에 어디 놀러도 못 가는 거야? 한동안은? 크리스마스나 연말에?”
“아니야 그렇진 않아. 그럴 일이 있으면 내가 잘 조정해서 우리 데이트에는 피해 안 가도록 할게. 너무 걱정 마”
“에 그게 말처럼 쉬워? 직장인이면 그게 맘처럼 쉽지 않지”
나도 자신 있게 말하긴 했지만 그 부분은 신경이 안 쓰이는 건 아니었다. 아무래도 그들이 일주일 동안 하는 일을 나는 하루 혹은 이틀 만에 검토해야 하고 그에 맞춰 내가 해야 할 일도 해야 하기에. 그리고 난 비교적 시간 운용이 편한 직장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본인의 학원을 운영하고 있어서 가끔 대회가 있거나 입시 시즌에는 주말에도 수업을 하기도 해서 그럴 때마다 내가 맞추곤 했었다. 그래서 그녀가 걱정하는 것을 나 역시 고민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으로는 토요일은 쉬거나 데이트를 하고 일요일에 일을 할 예정이었다. 가능하면 그 스케줄은 지키려고 했고 그렇게 할 예정이라고 이미 말은 해 둔 상태였다.
“그럼 지금 회사는 다니는 건 이제 한 4개월 정도 남은 건가?”
“그렇지 10월도 이제 중순이 지났으니 그 정도 남은 거 같아”
말을 하면서 나란히 앉은 그녀의 표정을 살피느라 난 정신이 없었다. 화가 난 거 같진 않고 그렇다고 실망한 거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진짜 괜찮아 보이지도 않은 그런 오묘한 표정이었다.
“오빠 미안 오늘은 나 그냥 집에 갈게. 아무래도 오늘은 그냥 가는 게 낫겠어”
“음… 그럴래? 데려다줄게 가자”
“아니야 그냥 택시 타고 갈게. 다음번엔 이러지 않을 테니 오늘만 이해해 줘 미안”
“그래 알겠어 그럼 그렇게 해”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택시는 굉장히 빨리 왔다. 난 그녀가 탄 택시를 멍하니 바라보면서 한참을 서 있었다. 그리곤 나도 다시 발길을 돌려 그녀와 함께 앉아 있던 벤치에 잠시 앉았다. 그리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다시 한번 기회가 오진 않겠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소위 말하는 ‘하늘멍’을 하고 있었다. 다시 한번 기회가 온다면 어떤 결정을 할까? 아마도 같은 결정을 할 거 같다. 고집불통 아저씨 같으니라고. 뭐든 여자친구의 말에 맞춰 준다고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니면서도 정작 실상은 그렇지 않은, 내로남불이 따로 없었다. 이젠 이 말은 삼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때렸다.
‘근데 내가 목요일에 만나서 이야기한다고 이야기했었나?’
그녀가 그렇게 말을 해서 난 내가 말을 했다고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근데 아무리 머리를 돌리고 쥐어짜 봐도 내가 그녀에게 말한 기억이 없었다. 근데 그녀는 오늘 정확하게 ‘목요일’이라고 말을 하면서 나에게 물어봤다. 난 암기력은 별로 좋지 않지만 기억력은 남다르다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 물론, 가끔 나를 못 믿을 만한 짓을 하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진 기억력은 탁월하다고 자부하면서 살고 있다. 근데 지금 이 시점에선 내가 그녀에게 ‘목요일’을 이야기 한 기억이 전혀 없다.
더 답답한 건 물어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녀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