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런남자 Nov 15. 2024

#20210123

“오빠 나 부탁이 있는데… 좀 어려운 부탁이긴 해. 근데 들어줬으면 좋겠어”

“응? 뭔데 그래? 슬이 부탁인데 어려워도 들어줘야지”

“정말? 듣지도 않고 그렇게 이야기했다가 후회할 수 있어 ㅎㅎ”


그렇게 미리 겁을 주고 시작한 그녀의 부탁은 그녀의 말 대로 ‘좀 어려운 부탁’이 맞긴 했다.

이번주 토요일이 그녀의 아버님의 생신이라고 했고 그날 가족끼리 저녁을 먹는데 나도 같이 먹었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하셨다는.

“그래 뭐 그렇게 해. 긴장돼서 밥이나 제대로 먹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ㅎㅎ”

“오~ 고마워 우리 엄빠 좋은 사람들이야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그녀의 부탁을 한 그녀의 아버님 생신이 바로 오늘이다. 그녀의 가족들이 자주 간다는 고깃집을 예약해 뒀다고 위치와 시간을 나에게 보내 주었다. 선물은 필요 없다고 그녀가 만 번 정도 이야기를 했지만 내 입장에선 생신 식사에 초대를 받고 가는 건데 준비 안 할 수는 없었다. 일전에 그녀의 어머님과 식사를 할 때는 꽃을 준비했지만 아버님에게도 꽃을 드리는 건 영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전히 회사를 운영하고 계시는 걸로 알고 있어서 타이를 하나 준비 했다. 물론, 대단히 많으시겠지만.


그녀와 먼저 만나서 같이 가면 좋겠지만 다른 일정이 있어서 그럴 수 없음을 대단히 미안해하던 모습을 떠올리며 집을 나섰다.

날씨가 추워서인지 긴장을 해서인지 몸이 좀 으실으슬 떨렸다. 긴장을 잘 안 하는 성격이긴 하지만 여자친구의 부모님을 만나는 건 지난 연애들에선 없었던 이벤트라서. 우연히 어딘가에서 마주쳐서 인사를 드린 적은 있지만 오늘처럼 작정하고 대면하는 건 태어나서 처음이라 긴장이 안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여유롭게 출발을 해서 먼저 가 있어야겠다는 마음으로 나왔더니 예상대로 식당에는 조금 일찍 도착했다.


‘난 도착 했어~ 조금 일찍 왔네 ㅎㅎ’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식당입구 쪽에서 멀뚱멀뚱 서성거리고 있었다. 입구 쪽 유리에 옷매무새를 확인하고 있는 데 식당 직원인 거 같은 사람이 다가왔다.

“윤대표님께 연락받았습니다. 예약된 룸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아 예 고맙습니다” 얼떨결에 답을 하고 ‘윤대표님?’이라고 생각을 하던 찰나 그녀의 아버님이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안내받은 룸에 앉아서 박대표가 보낸 이메일을 읽고 있는데 밖에 인기척이 나서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이 열리고 그녀의 얼굴이 보이는 걸 확인하니 조금은 긴장이 풀리는 듯했지만 뒤 따라 들어오시는 그녀의 부모님을 보자마자 풀린 긴장이 다시 조여졌다.


“일찍 왔네~ 역시 부지런한 사람이야”

그녀의 말에 그녀를 보며 웃음을 짓고 그녀의 부모님 좀 더 정확하게는 그녀의 아버님에게 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세요 김준한이라고 합니다.”

“그래요 지난번에 우연히 한번 봤었죠? 다시 만나서 반가워요”

“네 지난번에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인사도 못 드린 거 같아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이건 생신 선물입니다”

“아~ 그래요 고마워요 딱 보니 타이 같은데 타이 할 일이 있을 때 잘 사용할께요”

누가 봐도 타이의 포장이었지만 그래도 바로 알아 차린 점이 조금은 놀랍긴 했다. 꽤 오래 회사를 운영한 대표의 눈썰미는 일반적인 동년배의 사람과는 차이가 있는 거 같긴 했다.

“왜 이렇게 계속 서 있어요? 앉아요 어서”

어머님의 이야기가 없었다면 더 서 있을 뻔했다. 그렇게 그녀는 내 옆에 앉으면서 살포시 나의 손을 잡아 주었다. 그 손길에 조금은 긴장감이 풀리는 것 같긴 했다.


“혹시 차 가지고 왔나요? 아니면 와인 한 병 시키려고 하는데”

“괜찮습니다. 버스 타고 왔습니다”

저녁 메뉴가 준비되고 고기 맛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와인 한잔을 하는 그런 의례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와인을 한 잔 했더니 조금은 긴장이 풀어지는 듯했지만 지금 이 자리는 그러면 안 되는 자리임을 알기에. 그러던 중 그녀의 아버님의 나에 대한 질문이 의례적인 시간은 끝이 났음을 알리는 듯했다.

“지금 그럼 회사 다니는 건가요?”

“네 지금은 xxxx라는 IT 회사에서 기획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팀장입니다”

“아 그 회사는 나도 들어본 것 같네요. 팀장이면 10년 차 정도 되었나요?”

“네 올해가 딱 만으로 10년 차입니다. 지금 이곳에서는 3년째이고요”

“그래요. 아 들어 보니 곧 다른 곳으로 이직을 할 예정이라고 하던데…”

갑자기 그녀가 당황하면서 우리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회사 이야기 그만하면 안 돼? 밥 먹는데 왜 계속하는 거야?”


딸의 말에 아버님은 더 하시려는 말이 있었던 거 같지만 이네 하지 않고 딸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셨다. 자상한 부녀의 모습인지 딸의 말에는 아무 말 못 하는 아들만 있는 집에서 자란 나로선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질문에 답은 해야 할 거 같아서 답을 했다.

“같이 일하던 임원분이 창업한 스타트업에서 함께 일해 보려고 합니다”

나의 답에 아무 말 없이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무언가를 말하시는 듯했지만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그렇게 길게 느껴졌던 식사를 마무리하고 술을 드신 아버님 대신 그녀의 어머님과 그녀가 차를 가지러 간 사이 난 아버님과 식당 입구에 잠시 서 있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나 멀뚱히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데

“스타트업 그거 쉽지 않죠? 조금 해 보고 아니다 싶으면 우리 회사에서 일해 보는 건 어때요?”

“아 네 쉽지 않긴 하지만 더 늦기 전에 한번 해 보려고 합니다. 제안은 말씀만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냥 하는 이야기 아니니 명심해 둬요”

마침 차가 도착을 했고 그녀는 창문을 열고 소리쳤다.

“아빠 빨리 타 우리 오빠 그만 괴롭히고”

“아이코…이런… 그럼 또 봐요 잘 들어가고요”

“네 오늘 저녁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다시 한번 생신 축하 드립니다”


알 수 없는 미소로 나의 어깨를 한번 툭 치곤 차 쪽으로 걸어가셨다. 그녀는 차 쪽으로 걸어오는 아버님을 무언의 째려봄으로 맞이하고 있었고 아버님이 차에 타시자 나에게 손을 흔들면서 전화하겠다는 손짓을 했다. 나 역시 손을 흔들고 출발하려는 차를 보면서 허리 숙여 인사를 했다.


그리곤 허리를 피니 무조건 반사 마냥 “휴 드디어 끝났네"라는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두 번은 못하겠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혹시 내가 오늘 실수한 것이 있는지를 회고하면서.

이전 13화 #2021011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