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오늘 정시 퇴근해?’
점심 먹고 있는 중에 그녀에게 메시지가 왔다.
‘응~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그럴 것 같아’
‘그래? 잘됐네~ 나랑 그럼 저녁 먹어’
‘근처 올일 있나 보네~ 알겠어 그럼 이따가 봐요’
지난 주말 그녀의 부모님과 식사 후 매일 메시지를 주고받고 통화를 했지만 그날의 일에 대해서는 둘 다 별 언급이 없었다. 나 역시 구체적으로 물어보질 않았고 그녀 역시 먼저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난 그날의 결과를 듣는 것이 조금 두렵기도 했었다. 그래서 애써 피하고 있었던 것 같다. 더구나 그녀가 아무런 말도 없으니 더욱 겁이 났던 것 같기도 했다. 아무런 잘못을 한 것도 없는데 왜 죄를 진 느낌이 드는지 알지 못한 채.
‘내일 일정이 어떻게 되시나요?’
나는 이번주에 그리고 이번달에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 HR 담당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내일 오후에는 일정이 괜찮습니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그럼 내일 15시 정도에 면담 가능 할까요?’
‘네 그렇게 하시죠. 혹시 무슨 일인지 미리 좀 알려 주실 수 있나요?’
‘음… 내일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찌 보면 오후에 해야 할 가장 큰 일을 처리하고 시간 맞춰 사무실을 나왔다. 회사 앞 카페 창가에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고 이네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나 역시 웃으며 그녀에게 달려갔다.
“역시 수트 입은 내 남친 모습은 볼 때마다 어색하고 근사해ㅎㅎ”
“그래? 하긴 평일에만 입으니 슬이가 볼 기회가 많이 없긴 하지. 아직은 쓸만해?”
“아직은 이라니 ㅎㅎ 평생 잘 관리할 거면서. 기대하고 있겠어~”
어디 갈지를 정하려고 하는데 그녀가 우리가 처음 갔던 그 고깃집에 가고 싶다고 말을 해서 그곳으로 향했다.
“왜? 고기가 먹고 싶었어?”
“꼭 그런 건 아닌데 왠지 오늘이 아니면 그 고깃집을 가 볼일이 없을 것 같아서. 우리한테 나름 추억의 장소이니”
그렇다. 내가 다음 달에 퇴사를 하게 되면 이 동네를 다시 올 일은 많이 없긴 할 것이다. 굳이 찾아서 와야 할 동네로 바뀔 테니. 그리고 그녀가 말한 대로 이 고깃집은 우리의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고 나에겐 ‘하루 다시 살기’를 처음 경험 한 곳이기도 하니.
“와 오늘도 사람들이 많네. 다들 퇴근하면 집에 안 가고 여기로 오나 봐 ㅎㅎ”
그녀의 말대로 고깃집 안은 퇴근한 것 처럼 보이는 직장인들로 가득했다.
“지난번에 우리 엄빠 만나고 난 이후 궁금하지 않아?”
“아 궁금하지. 혹시 좋지 않게 보신 거 아니지?”
“안 좋게 볼 이유가 뭐가 있어 ㅎㅎ 오빠는 그렇게 오빠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어?”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처음 해 보는 거니…. 여자친구의 부모님을 뵌 적이”
“내가 궁금한 건 왜 나한테 물어보지 않았냐는 거야. 지난번에 우리 엄마만 만났을 때는 그 이후에 나한테 물어봤었잖아. 뭐라고 하셨는지. 이번엔 별로 궁금하지 않았나 봐”
순간 고기가 식도가 아닌 기도로 들어간 느낌이었다. 숨이 막힐 것 같은 그런 느낌. 그랬다. 그때는 내가 먼저 물어봤었고 그녀는 만나서 이야기해 주겠다고 해서 기다렸던 기억이 갑자기 머리를 치고 갔다. 누군가를 만나든, 어디서든 기억력이 좋다고 항상 이야기하고 다녔는데 이젠 하지 입도 뻥긋 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걱정하지 말아 ㅎㅎ 우리 아빠도 오빠가 맘에 든다고 하셨어. 따로 한번 술 한 잔 하고 싶다고 하기도 했어”
“아 진짜? 다행이네. 근데 아버님과 둘이서 술을 마시면 진짜 긴장되긴 하겠다.”
“긴장을 뭐 그리 자주 해 ㅎㅎ 우리 엄빠가 무섭기는 한가 보네. 오빠의 이런 모습 재미있네”
“나도 그날 오빠한테 사과해야 할 것 같아. 아빠한테 오빠 이직한다고 조금 걱정 어린 투정을 부렸는데 밥 먹다가 갑자기 이야기를 해서. 혹시 기분 나빴던 건 아니지?”
“아니야 약간 놀라긴 했지만 기분이 상하거나 하진 않았어”
“그래? 다행이네 나는 오빠가 기분이 상해서 안 물어보는가 했어”
오늘도 다시 한번 그녀와 이야기를 하면서 깨달았다.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내 머리 위에 있다는 사실을. 그것도 훨씬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