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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우 Jun 26. 2019

안녕. 안녕, 안녕.

마지막 편지, 공군 서울공항

To. 콩 아가씨


 아가씨. 드디어 오늘이에요. 5월답지 않게 공기가 조금 차고, 바람도 꽤나 서늘한 것 같지만 드디어 5월 15일. 남자친구 전역하는 날이 왔어요. 지금 시간은 아마도 40분을 조금 넘긴 다섯 시. 아직 채 다 일어나지 않은 세상의 조그만 소리들을 들으며, 간밤의 여운을 매만지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자 아이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2년. 우리의 2년은 함께하지 못한 시간도 많았지만 참 예뻤던 것 같아요. 토라져서 성기게 얽은 추억들도 없진 않겠지만 서로의 손에 든 꽃바구니 속에는 가슴이 따스해지는 말들과 생각 그리고 미소 지을 수밖에 없는 기억들이 가득해요. 다행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한 사랑. 많이 변하고 자랐음에도 우리가 여전히 서로를 애틋하게 사랑해주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다행이라는 말보다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싶어요. 2년 동안 많이 힘들었을 텐데, 정말 고생 많았어요 아가씨. 고마워요 정말.


 언제나 자리를 지키던 곰 같던 남자애가 남겨 둔 빈자리에, 당신은 많이 힘들었었다고 얘기해 줬었어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곁을 비워둔 그 시간들이 나는 아직도 많이 미안하고 마음이 쓰리네요. 편지도 많이 적고, 전화도 많이 하고, 휴가를 나갈 때마다 사랑을 채워주려 노력했는데, 어째 나는 지금도 당신이 겪었을 외로움들이 참 마음이 아파요. 내가 사랑하는 이이기에, 다시는 외로워하지 않게 많이 노력하려고요. 예쁜 말들과 보드라운 생각들로, 따스한 눈길과 그 못지않게 따뜻할 손길들로. 바라만 보아도 웃음이 새어 나올 정도로 행복하게 만들어 줄게요.


 2년 동안 당신도 많이 자랐지만, 나도 이곳에서 많이 자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따금 이 시간들이 그리울 정도로 말이에요. 정말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고, 또 돌보며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던 것 덕분에 속 안에 한 겹 아주 단단한 무언가가 생긴 것 같거든요. 마지막 밤에 모두가 찾아와 수고했다고, 고마웠다고 말해주는데 모두가 아쉬움에 자리를 잘 떠나지 못하는 모습이 정말 뿌듯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그렇더랍니다. 우리 아가씨가 나눠 준 그 시간들이 이 사람들에게 많은 추억을 만들어 주었나 봐요.


 어제 그동안 수고했다고 나와 내 동기에게 정비사 분들과 조종사 분들이 마지막 야간비행을 선물해주셨어요.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전용기였던 친구였는데, 매번 토잉만 해줬지 안에 타서 비행한다는 것은 정말 상상도 못 할 일이었던지라 한껏 신이 나서 달려갔습니다. 항공기에 시동이 걸리는 순간부터 런업, 지상 활주, 그리고 비행까지. 단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어요. 2년 동안을 지킨 활주로에 마침내 올라섰을 때 느껴지는 소름이란, 이륙을 하고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모습은 참 예뻤어요. 건물, 가로등, 자동차들. 여러 빛들로 반짝반짝 빛나는 우리 동네. 좋더라고요. 날씨가 살짝 흐렸던 덕에 바깥 전망에 묘한 분위기가 덧대어졌는데 그 덕일까 비행을 하는 1시간 반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창문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이보다 좋을 수 없는 마무리였던 것 같네요.


 밖에서 출근을 준비하는 소리들이 들려오는 것을 보니 편지를 쓴 지도 거의 한 시간이 넘었나 봅니다. 이제 잠시 후면, 이곳을 떠날 시간이에요. 고맙고 사랑합니다. 얼른 나가서 사랑한다고 또 정말 잘 기다려줘서 수고했다고 말해줄게요. 2년 동안 당신이 내 곁에 있어서 행복했어요.


 사랑해요.



2018.05.15 아침


*저를 제외한 모든 편지 수령인들의 이름은 가명이나 애칭, 혹은 평소 좋아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경우, 콩/누나/아가씨 등을 사용할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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