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목

by 해진

제 옷을 빼앗아가지 말아요


늦가을 지나가는 바람에게

너는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지


겨울바람은

네게 더 혹독했지


네게 남은 희망이었던

마지막 잎새 하나마저

떨어 뜨리려고

야멸차게 굴었지



마침내 너는


벌거벗은 몸으로


비탈에 섰다



너는 온몸을 드러내고

지내야 했던

부끄러움에


한동안

몸둘 바를 몰랐지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너와 같은 길을 가고 있는

다른 벌거숭이 나무들을 보면서


너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알아차렸지


하지만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옷을 입고 지내려면


추운 겨울 내내

벌거벗은 몸으로

지내야 하는

아이러니를 이해한다는 것은


네게는 너무나

아프고 힘든 일이었을 거야


그래도

이제 봄이잖아


그 추위


그 부끄러움


잘 견뎌 냈어


지난겨울의 기억들은

모두 바람에 실어 보내고


보드라운 봄비에 몸을 씻고

예쁜 새 옷을 입어 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