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인들은 폴란드로 몰려갔다.
사이렌 소리를 뒤로하고, 사무치게 그리울 집을 뒤로했다. 국경에는 남편을 두고 온 여자, 아들을 두고 온 노인, 등에 매직으로 전화번호가 적힌 아이, 인형을 들고 부모를 따라온 아이가 있었다. 분명 며칠 전만 해도 가족과 재산이 있었던 사람들. 그들은 한순간에 춥고 배고프고 불안한 난민이 되어 국경에서 밥을 얻어먹을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인들은 ATM 기기로 몰려갔다.
현금을 구하려는 몸부림이었다. 게다가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미국이 네놈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바로 스위프트(SWIFT) 망에서 러시아를 배제했다. 즉, 러시아 국민과 기업이 외국에 돈을 보내거나 돈을 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렇게 러시아 경제가 집단 린치를 당하는 동안 루블화는 가치를 크게 잃었다.
그즈음 뜻밖의 자산이 주목을 받았다.
도박이자 거품, 가짜 돈 취급을 받던 비트코인이었다.
우크라이나 난민은 비트코인이 필요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우크라이나 화폐는 똥값이 되었고, 정상적인 은행 업무는 중지된 상황이었다. 또한 무거운 재산을 가지고 도망칠 수도 없었다. 누군가 운 좋게 충분한 달러와 귀금속을 챙겨서 무사히 국경에 도착한다고 해도 국경 수비대에게 탈탈 털릴 수 있었다. 아니면 강도에게 피에 젖은 달러와 귀금속을 빼앗기든가. 그들을 구할 수 있는 건 달러도 귀금속도 아니었다. 그들을 구할 수 있는 건 보이지 않으면서도, 빠르게 주고받을 수 있으며, 가치를 지닌 무언가여야만 했다.
그래서 비트코인으로 기부가 이뤄졌다.
전 세계 젊은이들은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를 난민들, 우크라이나 친구들, 우크라이나 친척들의 주머니에 꽂았다. 수수료라는 장애물, 시공간이라는 장애물도 건너 뛰었다. 난민들이 받은 가상화폐는 가벼운 금고 역할을 했다. 국경 수비대와 강도들이 속닥거릴 일도 없었다. 이 안전성과 효율성을 알아챈 우크라이나 정부는 아예 가상화폐를 모금할 수 있는 홈페이지까지 만들었다. 이는 비트코인이 보여준 뜻밖의 가능성이었다. 가상화폐가 화폐로 기능한다는 말에 농담으로 반응한 사람들이 틀린 순간이었다.
한편, 러시아 국민도 비트코인이 필요했다.
러시아 국민들은 똥값이 된 루블화 대신 달러와 비트코인을 구하는데 혈안이 됐다. 특히 젊은이들과 부자들은 본격적으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비트코인 가격이 폭등한 이유였다. 또한 러시아 정부 입장에서도 결제 시스템이 막힌 상황에서 제재를 우회할 방법으로 비트코인에 주목했다. 그들은 석유와 천연가스 에너지 대금으로 비트코인 결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고 비트코인의 가격 변동성과 루블화 가치를 고려한 규제 틀을 고민했다.
이에 불편해진 건 미국과 유럽이었다.
강도 높은 경제제재를 했더니 러시아 부자들과 정부가 비트코인이라는 구멍으로 빠져나가려고 했으니까. 미국과 유럽에서 비트코인 제재가 필요하다는 위기감이 퍼졌다. 이를 미리 인식했는지 일찍이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암호화폐 규제를 담은 행정 명령서에 사인한 바 있었다. 금융안전과 국가 안보 차원에서 가상화폐의 위험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라는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