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언제 끝날 것 같아?”
내가 그에게 물었다. 우리는 영등포의 한 삼겹살 식당에서 만났다. 비가 오는 날이었다. 나는 혼자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옆 테이블에 혼자 삼겹살을 굽고 있던 외국인 남자가 있었다. 한 팔은 문신으로 뒤덮였고, 한 팔은 아프리카 토속적인 팔찌를 차고 있었다. 긴 금발에 노란 수염이 듬성듬성 난 남자였다. 취기가 오르자 그가 궁금해졌다. 오지랖이었다.
“실례합니다. 어디서 왔어요?”
그에게 말을 걸었다.
바이킹 같은 얼굴, 바다처럼 차가운 눈동자였다.
당황한 남자가 짧게 대답해 줬다. “러시아”
우린 소맥을 말아 건배했다.
그는 모스크바 사람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코딩을 한 16년 차 프로그래머였고, 삼성에서 일을 하다가 때려치우고 아시아를 여행하고 있던 중이었다. 태국, 일본, 베트남, 인도네시아, 그리고 한국까지. 그는 모스크바에 나이트클럽을 운영할 거란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함께 사업을 할 친구 중 한 명은 군대로 징집됐고, 한 명은 전쟁이 나자마자 조지아로 떠났다는 얘기를 했다.
우리는 소주 한 병을 더 시켰다.
그의 말 문이 트였다. 그는 가끔 영어로 가끔은 러시아어로 말했다. 전쟁 이후 막혀버린 러시아 계좌 때문에 고충을 겪었다며 토로하기 시작했다. “Sanction(제재)”. 그가 가장 자주 쓰는 단어였다. 말이 나온 김에 나는 전쟁에 대해 궁금한 걸 물어보기 시작했다. 버벅거리는 영어로. 작년 초부터 10월이면 전쟁이 끝날 거라고 잘난 체했던 학자들이 있었다, 10월이면 가을 장마로 진흙이 끈적해져서 탱크가 전진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그들은 모두 틀렸다, 전쟁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전쟁이 언제 끝날 것 같은지 너의 생각이 궁금하다 등등.
“안 끝나. 이 전쟁.”
나의 버벅댄 영어를 가만히 들어준 그는 뚝뚝 끊기는 영어로 대답했다.
“한국. 휴전했어. 전쟁 중이야. 70년 동안. 똑같아. 한국처럼. 안 끝나. 이 전쟁. 잠깐 멈출 수 있어. 하지만 안 끝나. 어쩌면 몇 십 년. 러시아 슬라브족이야. 우크라이나 슬라브족이야. 슬라브족은 포기 안 해.”
나는 다시 물었다.
“푸틴을 끌어내면 되잖아? 러시아 곳곳에서 전쟁 반대 시위가 일어나는 걸 봤어.”
“지지율은 조작. 맞아. 하지만. 푸틴 인기 많아. 푸틴 반대 많아. 반대는 죽음. 죽지 않으면 감옥. 나발니 알지?"
“알아. 그런데 역사를 기억해 봐. 영국도 혁명에 성공했고, 프랑스는 왕의 목까지 벴어.”
“친구. 러시아는 유럽이 아니야. 러시아는 러시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