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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 가다] 푸틴 정권을 지탱하는 기둥들

언론통제, 정적 제거, 경제성장, 푸틴의 인기



러시아에 가다




러시아 겔렌지크 물가 러시아 인플레이션



러시아 모스크바 물가 러시아 인플레이션



러시아에 오기 전부터 러시아 물가가 올랐다는 건 알고 있었다. 계란, 버터, 감자, 양파, 과일, 채소 가격이 전쟁 전보다 두 배 올랐다고 들었다. 역시나 할머니는 투덜댔다. 장을 볼 때, 이웃집 할머니와 차를 마실 때, 며느리와 코냑을 마실 때 같은 말을 반복했다. 물가가 미쳤다고.


나는 할머니에게 정말 전쟁 전보다 두 배나 올랐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그 정도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세 배’라고 했다. 2022년 이후 3년 동안 러시아의 국방비 지출과 서방의 경제 제재가 물가를 자극했다. 루블화 가치가 바닥을 기었다. 중앙은행이 10~20% 고금리를 유지했던 3년이었다. 물가는 불만의 신호탄이었다.



모스크바, 러시아 모병 광고
모스크바, 무공을 세운 러시아 군인 광고



러시아에 오기 전부터 러시아가 군인을 모집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실제로 모스크바 버스 정류장, 고속도로, 공항에서 모병 광고를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쓰여 있었다.

‘첫해에 5,200,000 루블(한화 약 9천만원) 국방부로부터 현금 지급’. 다른 광고도 있었다. 무공을 세운 군인 사진이었다. 이렇게 쓰여 있었다.



러시아 모스크바 모병 광고
러시아 모스크바 모병 광고


러시아의 자랑!
명예롭게 복무하고, 영웅으로 돌아오다!
강해지세요, 용감해지세요, 충성을 다하세요.


명예와 애국은 누군가를 영웅이 되도록 부추겼다. 여기서 애국심이 인격이었다. 겁쟁이는 패배자였다. 러시아가 돈과 애국심으로 호소하는 이유가 있었다. 장기전과 소모전.

3년 전 ‘특별군사작전’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미끄러졌다. 90만 명의 러시아 군인이 죽거나 다친 3년이었다. 모병은 고갈의 신호였다.



한국에 돌아온 후, 3월 31일 푸틴 대통령이 역대 최대 규모의 징집 명령에 사인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14년 만에 최대 규모였고 18~30세 남성 16만명이 목표였다. 러시아 경찰이 체육관까지 급습해 군 복무 기록을 확인하고 병역 기피자를 색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4월 25일 러시아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21%로 동결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상 최고치였다. 폴 볼커(제12대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가 따로 없었다.



궁금했다. 루블화가 똥값이 되고 물가가 뛰고 숨 막히는 금리를 유지하고 아들 손자까지 전쟁터로 데려간다? 인플레이션은 정치적 생명을 위협한다. 인플레이션이 바이든의 정치적 생명을 끝냈듯이. 공격적인 징병도 정치적 부담 아닌가? 한국 대통령이었다면 끝없는 분개와 비난의 대상이 됐을 거다, 저런 배짱은 어디서 나오나? 하지만 알 것 같았다. 그곳에는 크렘린의 권력을 지탱하는 4개의 기둥이 있었다.






첫 번째 기둥: 언론통제




TV를 틀면 적어도 한 채널은 우크라이나를 씹고 있었다. 메시지는 단순했다. 우크라이나는 명예를 잃었고, 썩었고, 답이 없다. 부정부패로 찌든 젤렌스키와 우크라이나 관료들을 봐라, 민간인을 학살하는 ‘나치’ 들을 봐라, 나토와 미국의 ‘꼭두각시’가 러시아를 위협하는 걸 봐라.



러시아 TV 속 젤렌스키



한편 러시아 군인들의 모범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는 빠뜨리지 않는다. 정의는 그것뿐이다. 서방의 이미지가 모순과 위협으로 뒤범벅될수록 러시아는 더 위대해진다. 러시아 정부는 전통적인 미디어를 통제하고 있었다. 언론은 ‘서방의 위협’과 ‘정의로운 러시아’로 국민을 묶었고, 국민은 믿음에 갇혔고, 적개심을 분출했다. 나조차 무엇이 진실인지 혼란스러웠다. 나토가 약속을 어기고 선을 넘은 걸까? 학살이 정말 일어났나? 우크라이나는 나치인가? 누군가 말했다.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진실'이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말이다.




두 번째 기둥: 정적 제거




붉은 광장 근처 다리를 건너다가 꽃다발을 발견했다. 꽃다발에 이렇게 쓰여있었다. ‘2015년 2월 27일 이곳에서 등에 총을 맞아 사망한 보리스 넴초프(Boris nemtsov)를 영원히 기억하며’ 누가 치우는지 알 수 없지만 밤이 되면 꽃은 사라진다. 하지만 누가 놓는지 알 수 없지만 날이 밝으면 꽃은 다시 놓인다. 보리스 넴초프. 보리스 옐친 집권 시절 제1부총리로 유명했던 인물.



붉은 광장 앞 보리스 넴초프 추모


2015년 2월 27일 밤, 그는 여자 친구와 이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얀색 승용차가 섰다. 괴한 여러 명이 내렸다. 총탄 4발을 발사하고 도망갔다. 그거로 끝이었다. 암살당하기 하루 전날 넴초프는 야권 단합과 반푸틴 시위를 열자고 주장했다. 암살당하기 열흘 전 러시아 정보기관(FSB) 요원이 그를 미행했다. 그리고 암살당하기 17일 전 그는 이러한 말을 남겼다. “나는 푸틴에게 죽을까 봐 두렵다.” 그가 죽자, 푸틴은 이 사건을 비판했고 러시아 경찰은 사건 현장을 물청소했다. 깨끗하게. 훗날 용의자들은 체첸 자치공화국 출신 5명으로 밝혀졌다.



붉은 광장 앞 보리스 넴초프 추모



뭐, 모두 그런 식으로 사라진다. 생사여탈권을 가진 푸틴이 죽였다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우연하고 공교롭게도 푸틴의 반대파들은 그렇게 사라진다. ‘배신자’로 찍혀 투옥되거나 암살당하거나 자살당한다. 반대자들은 모두 영안실로 가는 분위기에서 함부로 나대면 안 된다. 러시아 사람들은 술집에서 ‘푸틴’이라는 이름을 함부로 꺼내지도 못한다. 조용하게 가라앉아 침묵한다.




세 번째 기둥: 경제 성장




서방 제재 대응으로 러시아는 유럽으로 가는 가스관을 잠갔다. 2022년부터 에너지 위기로 유럽 성장률은 2023년 0.4%, 2024년 0.7%로 고꾸라졌다. 유럽의 에이스 독일은 ‘–0.3%’ 마이너스 성장, 금융 선진국 영국은 한 때 ‘0%’ 성장을 기록했다.



유럽 경제의 목줄: 러시아 에너지 회사 가스프롬 (Газпром | Gazprom)



반면 ‘경제 붕괴’ 예측과 다르게 러시아에선 2023년 3.6%, 2024년 4.1% 성장률이 나왔다. 군사 지출과 군수산업이 GDP를 끌어올렸고 제재를 회피해 에너지를 사준 친구들 ‘중국과 인도’ 덕분이었다. 결과적으로 경제적 선빵을 날린 놈이 먼저 드러누웠고 러시아 국민이 거지가 되어 정부를 뒤엎을 거라는 예측은 망상으로 판명됐다. 어느 나라든 정의보다 경제가 먼저라는 건 정치적 명제다. 그런 면에서 러시아는 성공했다.





네 번째 기둥: 푸틴의 인기




높은 물가에 투덜거리는 사람들이 많아도 ‘차르’의 인기는 여전히 대단했다. 소련 붕괴를 직접 본 어르신은 증언한다. 물러터졌던 고르바초프와 다르게 강한 남자라고. 술주정뱅이 보리스 옐친이 X같이 망가뜨린 나라를 다시 일으켰다고. 전쟁을 이겼고 경제를 살렸다고. 그가 착한 사람이라는 의견에 고개를 젓는 사람들도 그가 똑똑한 사람이라는 의견에는 고개를 끄덕인다.



러시아 서점 속 푸틴 책, 번역하자면 North Grand Strategy
Z 민족주의.jpg Z 민족주의




마치 한국 어르신이 박정희를 좋아하듯, 푸틴의 팬은 그를 사랑한다. 그들은 미국을 겁먹게 했던 소련의 영광을 다시 느끼고, 푸틴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차에 Z를 새기고, 푸틴의 새해 대국민 메시지를 본방 사수한다. 그들에게 푸틴은 불확실성 이후 찾아온 안정성의 상징이다. 그들에게 푸틴은 신이 러시아에 내려준 비범한 인물이다.






러시아에서 집단 피로를 느낄 수 있었다. 장바구니는 가벼웠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물가를 억누르느라 연 21% 금리를 유지했다. 남자들은 증발했다. 카페에 항상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았다. 교회에는 남편과 아들을 위해 기도하는 여자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4개의 기둥이 크렘린을 여전히 지탱했다. 내가 본 ‘차르’의 권력은 공고했다.



모스크바 붉은 광장 앞














## 참고 자료

-[푸틴의 권력은 지금이 가장 강할까?]

https://www.bbc.com/korean/articles/czvzjrx95l0o

-[ ‘푸틴 지지율 80%’… “실제 민심과는 차이”]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40220/123612409/1

-[역대 최대 득표율…러시아는 왜 푸틴을 또 선택했나]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36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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