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젤렌스키
보드카를 마시고 카드를 치고 있었다.
등 뒤 TV에서 싸우는 소리가 났다. 영화이겠거니 했다. 뒤를 돌아보니 영화가 아니라 정상회담이었다. 러시아 뉴스는 세 남자가 개처럼 싸우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트럼프와 젤렌스키.
사실 회담 전부터 두 남자는 마찰하고 있었다. 2월 12일,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 90분 동안 통화를 하고 이런 말을 남겼다. “서로의 나라를 방문하는 등 매우 긴밀히 협력하는 데 동의했다”. 2월 21일, 미국은 UN 총회에 상정된 러시아 규탄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오고 가는 말에서 마찰음이 계속 났다. 트럼프에게 젤렌스키는 ‘능력도 없고 선거도 없는 독재자’였고, 젤렌스키에게 트럼프는 ‘양보하는 푸틴의 친구’였다.
바이든은 과거였다.
그의 보좌관도 그의 국방 장관도 사라졌다. 바이든의 ‘우크라이나 NATO 가입’ 약속은 증발했다. 새로운 백악관 주인은 손해 보는 장사를 하지 않았다. “러시아에 빼앗긴 영토를 양도하라. 미국이 너희를 재건한다. 너희와 경제적-산업적 협력체를 형성한다. 만약 러시아가 너희를 다시 때리면 미국 기업과 미국 경제 시스템을 공격하게 되는 셈이다. 그러니 러시아는 너희를 다시 침략하지 못할 것이다. 아, 참 그리고 너희가 가진 희토류도 내놔라.”
그리고 2025년 2월 28일,
광물 협정서(희토류 개발)에 서명을 하러 젤렌스키가 백악관에 왔다. 오벌 오피스에서 마주 앉은 두 남자는 서로가 불편했다. 그래도 광물 협정이 그들 사이에 있는 거리를 녹여줄 참이었다.
싸움은 질의 시간이 끝나기 10분 전에 일어났다.
젤렌스키 입에서 ‘안전보장’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부통령이 한마디 했다. 평화와 번영을 위해 러시아와의 외교가 필요하다고. 젤렌스키가 발끈했다. “푸틴은 정전 협상을 깼고, 우리 국민을 죽였고, 포로들을 교환하지도 않았습니다. 부통령께서는 무슨 외교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부통령도 발끈했다. “우리는 당신 나라 전쟁을 끝낼 외교를 하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이 여기에 와서 이 문제를 미국언론 앞에서 따지는 건 무례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당신은 먼저 트럼프 대통령께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라는 말이 울려 퍼졌다. 무기를 대준 것에 감사. 평화를 만들어 주는 것에 감사. 전후 복구를 해주는 것에 감사. 예의를 까다롭게 따지는 사람이었다. 우리 JD 밴스 부통령은.
젤렌스키는 말했다.
“당신은 대서양 건너편에 있어서 느끼지 못하는 모양인데, 당신도 미래에 느끼게 될 겁니다. 그때 신의 축복이 있기를.” 그는 미국의 리더들에게 우크라이나가 서방을 대표해 최전방에서 싸우고 있다는 걸 상기시켰다. 듣고 있던 트럼프가 발끈한 지점이 여기였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가 뭘 느끼게 될 거라고 말하지 마라.” 불이 번졌다. 그때부터 서로의 말이 엉겨 붙었다.
응당 그들이 받아야 할 예우를 충분히 받지 못한다고 생각했는지 트럼프는 하고 싶은 말을 쏟아냈다. 젤렌스키는 ‘카드 없는 놈’, ‘국민의 목숨과 3차 세계대전을 놓고 도박하는 놈’, ‘빈대처럼 용돈이 고프면서도 무례한 놈’이었다. 바이든도 젤렌스키가 감사를 표현하지 않는다며 화를 낸 적이 있었지만 트럼프에 비하면 바이든은 젤렌스키에게 낙원이었다.
서로를 후려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는 표정, 그리고 날이 선 목소리가 섞인 이중주는 외교 역사에 남을 사건이었다. 이 역사적 사건을 보고 있던 주미 우크라이나 대사는 미간을 짚고 고개를 숙였다.
회담은 그걸로 끝났다.
젤렌스키는 광물 협정서에 서명하지 않고 떠났다. 그를 포근하게 안아줄 런던으로. 백악관 공식 SNS 계정은 회담 직후 ‘AMERICA FIRST’를 썼다. 트럼프는 말했다. “내가 볼 때 젤렌스키는 아직 평화를 맞을 준비가 안 됐다. 그는 미국을 무시했다. 평화를 맞을 준비가 되면 다시 백악관에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회담을 본 러시아 정부와 미국 공화당은 열광했고, 유럽 정상들은 개탄했다.
러-우전쟁이 일어난 해 헨리 키신저는 <파이낸셜 타임즈> 대담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두 적을 뭉치게 하는 적대적인 자세는 현명하지 않다”. 바이든의 전선은 넓었다. 중국, 러시아, 이란. 바이든이 그들에게 펀치를 날리고, 문을 닫아거는 동안 중국과 러시아의 우정은 단단해졌다. 새로운 백악관 주인은 적끼리 뭉치는 걸 원치 않았다. 러-우 전쟁을 ‘유럽의 전쟁’으로 규정하고 우크라이나와 거리를 뒀다. 개판으로 망가진 정상회담은 트럼프가 아시아에 있는 한 놈만 패기로 결정한 듯 보였다.
카드 게임을 멈추고 뉴스를 보고 있던 할머니의 손녀는 이렇게 외쳤다.
“하라쇼 Хорошó (좋아)”.
## 참고 자료
-[푸틴 편드는 트럼프 … 러시아-중국 갈라놓기 전략일까?]
https://www.bbc.com/korean/articles/cy7xy4lgk6lo
-[밴스는 왜 젤렌스키와의 설전에 나섰을까]
https://www.bbc.com/korean/articles/c2erw83pw27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