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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홈즈 Jan 06. 2021

명의(名醫)]

세상의 모든 부모는 명의다.


“엄마 손은 약손~ 엄마 손은 약손~”

아침부터 아랫배에 핫팩을 붙이고 나왔다. 금세 따스해지는 핫팩 맛을 보니 “엄마 손”이 그리워진다. 아랫배가 끊어지게 아프다 가도 따스한 엄마손만 닿으면 아랫배는 잠잠 해지며 잠이 스르르 쏟아졌다. 


세상의 모든 부모는 명의(名醫)다. 산천이 놀이터였던 시골마을 개구쟁이 무릎은 누구네 집 아이 할 것 없이 성한 데가 없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일이다. 어디선가 넘어져 생긴 무릎 상처에서 고름이 찔끔찔끔 나왔다. 병원이라는 곳을 모르고 살던 산골이고 어른들에게 얘기하면 혼날 것 같아 참으면 나아질 줄 알았다. 며칠이 지나자 무릎이 시큰거리며 걷기에도 불편했다. 참다 참다 빨간약(포비돈 요오드액, 머큐로크롬)이라도 바를 심산으로 마루에 앉았다. 빨간약을 바르기 위해 딱정이를 떼니 상처 자리에서 피고름이 올라왔다. 살살 누르니 고름이 계속 올라오며 뼛속까지 아파왔다. 지나가던 아버지가 내 무릎을 보더니 다짜고짜 꾹 누르며 피고름을 짜냈다. 양이 얼마나 많이 나오던지 나도 아버지도 깜짝 놀랐다. 한참을 짜내더니 아버지는 상처 구멍에 입을 가져다 대며 마지막 고름까지 빨아 냈다. 신기하게 그 뒤로 상처는 씻은 듯이 나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으로 미련한 짓이었지만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상처 자국을 볼 때마다 주저 없이 입으로 고름을 빨아 내던 아버지 사랑을 본다. 아마도 아버지 침이 명약이었을 게다. 아버지 침이 명약이라는 걸 한번 더 본 적이 있는데 큰형 눈에 모래가 들어가 괴로워할 때였다. 물로 씻어내도 나오지 않아 한참을 힘들어했는데 아버지가 나타나 형 눈을 입으로 핥아 내니 신기하게 모래가 싹 빠졌다. 울 아버지는 역시 명의(名醫)였다.


어려서부터 배앓이는 내 단골손님이었다. 얼굴은 마른버짐 투성이, 빠짝 마른 몸에 매일 배앓이를 달고 살았으니 부모님 눈에 나는 아마 가장 아픈 손가락이었을 게다. 바로 손위 형을 잃고 얻은 놈인데 거기에 홍역으로 잃을 뻔했다가 간신히 살아난 놈이니 더욱 그랬을 터다. 배앓이는 찬바람이 불면 더욱 심했는데 그때마다 내 차가운 아랫배에는 명의(名醫)인 엄마 몫이 되었다. 배앓이는 아랫배가 차가워지며 끊어질 듯 복통이 일었는데 그때마다 “엄마 손은 약 손, 엄마 손은 약손” 처방은 탁월한 진통제였다. 울 엄니는 내 배앓이 전문 명의(名醫)였음이 확실하다.

찬 겨울은 나에게 여전히 시련의 계절이다. 오십 줄 넘은 중늙은이 아랫배는 여전히 가끔 아침마다 찬바람이 쌩쌩 분다. 그 자리에 성능 좋은 핫팩이 명의인 척하지만 어디 울 엄니 손만 하랴.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척박한 코로나 시절이 한없이 길어지고 있다. 혹시나 하여 켠 TV는 연신 반가울 것 하나 없는 그저 그런 뉴스 쪼가리들을 뱉어낸다. 엄마 손이 그리운 춥고 긴 겨울이다.

내일이 울 아버지 제사구나. 조용히 시골에나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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