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의 시작 분배
사교육계에서 밥 벌어먹던 시절 현장에서 만났던 초보 엄마의 현명했던 육아 방식이 생각난다.
초보 엄마에겐 모든 육아가 힘든 일이겠지만 특히 아들 둘과 함께 하는 일은 매일매일이 곧 전쟁터일 게다. 오죽하면 엄마들 사이에 아들 둘은 순둥이도 전사로 만든다는 말이 있을까?
극성스러운 두 아들을 키우던 그 엄마의 육아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뭔가를 할 때마다 두 놈이 어찌나 싸워대는지 몸이 버텨내 질 못해 우울증 초기까지 갔었다고 하니. 특히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오는 식사시간이 나 간식 시간은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우유나 물 같은 걸 줄 때마다 항상 자기 컵보다 상대방 잔이 더 많다며 싸웠다.(보통 가정집에서는 모양이 다른 여러 컵을 사용하는 집이 많음으로) 어느 날 엄마는 방법을 하나 찾아냈다. 항상 불만을 제기하는 동생 녀석한테 잔 크기와 상관없이 일단 두 잔을 내어주고 본인이 공평하다고 생각한 만큼 음료를 따르게 했다. 그다음 형한테 두 잔 중 하나를 선택하게 했더니 그다음부터 싸움이 엄청 줄었다고 한다. 그 뒤로 모든 일에 이 방법을 적용했더니 드디어 평화가 찾아왔다는 얘기였다.
엄마 얘기에 조금의 MSG가 있다손 치더라도 나는 그때 깨달았다. 분배의 공평함이란 애나 어른이 나 모두 자기 앞 잔의 관점이란 것을.
세상사 모든 일이 크고 작은 갈등의 연속이다. 그 갈등의 원인을 뜯어보면 분배의 공평함에 대한 서로 다른 잣대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경제적인 것이든 그 외에 것이 든 주는 사람 입장에서는 공평하게 많이 주었다 생각하고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항상 자기가 적게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설령 두 개의 잔에 공평하게 담겨 있을지라도 서로 자기 잔에 든 것이 적다고 생각하기에 그러는 것이다. 나라 일도 그렇고, 회사 일도 그렇고, 가정 일도 그렇다. 심지어 남녀 사이에 사랑도 부모 자식 간도 이와 같다. 그러니 갈등을 줄이는 일은 내가 더 많이 받아 내 잔이 더 크고 많이 가졌다고 생각해야 한다. 설령 적게 받았더라도 내가 더 많다고 생각해야 여유로운 마음이 생겨 아량을 베풀 수 있다. 사랑하는 연인 사이도 불꽃 튀는 연애 초기와 시간이 지난 뒤는 다르다. 연애초에는 서로 많이 주려고 하다가 서로 사이가 깊어지면 오히려 서로 많이 받으려 한다. 그간 줄만큼 주어내 잔이 비었으니 이제 받고 싶다는 욕구 때문이다. 물론 평생 서로 주려고 하며 살다 간 신선들도 많다는데 주변에서는 아직 많이 보지는 못했다.
쑥 들어온 가을 덕분에 추남을 씹으며 문득 나를 돌아본다. 나는 분배의 공평함에 얼마나 진지하고 넓은 마음을 가졌는가? 나 또한 내 잔에 든 것보다 상대방 잔에 든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하며 살지 않았는가?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더 주려고 한 것보다 어떤 방식으로 든 도움이나 관심을 더 받고자 하지 않았는가? 나름 냉정하게 판단해보건대 다 잘살았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자기 욕심으로만 살아온 것 같지는 않으니 평균 이상의 점수를 주고 싶다. 순전히 중년 아저씨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자뻑 점수니 시비는 사절이다.
내 나이도 어느덧 가을의 나이를 넘겼다. 이제는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적게 남았을 터다. 나는 ‘과거 추억형 인간’이 아니라 ‘미래지향형 인간’이라 자부하며 살고 있으니 남아 있는 날들을 위해 작은 다짐을 해본다. 나는 앞으로 어떤 자리 어떤 상황이든 내가 받은 잔이 더 크고 많다고 생각하며 살아야겠다. 그래야 덜 욕심 내고 덜 싸우고 덜 아프고, 더 베풀 수 있다.
쉽지 않을 길이겠지만 어디 우주 평화가 거저 오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