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는 말 감옥이지 말입니다.
“지금부터 군대 얘기지 말입니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 유시진(송중기역)대위의 군대 말투는 정말 멋졌다. 드라마가 끝나고 “~말입니다”체는 한동안 유행이었다. 하지만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30여 년 전 내 군생활 속에 군대 말투는 그저 폭력의 한 부분일 뿐이었다.
당직: 점호 준비 안 했습니까?”
졸병: 아닙니다.
당직: 여기가 안이지 밖이야?
졸병: 아님.. 시정하겠습니다.
당직: 니가 시정할 짬밥이야?
졸병: 아닙니다.
당직: 여기가 안이지 밖이냐고?
졸병: 네 알겠습니다.
당직: 알긴 뭘 알아? 아는 놈이 이것밖에 못합니까?
졸병: ……ㅠㅠ
이런 식이다. 추억으로 얘기하니 웃지만 당시 당해야 했던 졸병은 죽을 맛이었다. 이처럼 군대에서 언어폭력은 계급이라는 힘으로 졸병들에게 허구한 날 폭포처럼 쏟아진다.
우리 중대장은 유시진대위와 같은 계급인 서모대위였는데 멋진 말투는커녕 공포 그 자체였다. 지금도 그의 말투를 떠올리면 소름이 돋는다.
“이거 밖에 못합니까? 왜 이렇게 느려 터져?"
"이 새끼들아! 느그~적~ 느그~적~(길게 늘여 말함) 거리지 말고 느그적느그적(빠르게 붙여 말함) 거리란 말이다."
군대 말투가 왜 생겼는지 나는 정확하게 모른다. 신병교육대 입소하자마자 교관은 우리에게 사회 말투는 이제부터 그만 쓰라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말끝을 무조건 ‘다/나/까’로 맺어야 한다고 강요했다. 교관은 그 이유를 ‘신속하고 정확한 의미 전달에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썩 명쾌한 논리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특히 ‘신속’ 면에서는 충청도 말이 훨씬 유리할 것 같다.
‘하시겠습니까? 안 하시겠습니까? →할튜? 말튜?‘
‘술 마실 줄 아십니까? →술혀유?’
‘지금 가려고 합니까? →가남유?’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류’
긴말을 이렇게 간략하게 줄여 의미 전달이 되니 정확은 몰라도 훨씬 신속할 수 있겠다는 쓸데없는 생각도 해봤다.
군인은 입대하는 순간 몸은 국방부 소속으로 갇히고, 말은 ‘다/나/까’라는 말 감옥에 갇히게 된다. 말 감옥이란 표현이 생소하겠지만 언어가 잘 안 통하는 여행지에서 자기 의지대로 자유롭게 말할 수 없는 불편함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이해할 듯하다. 이런 말 감옥에서 계속 살다 보면 멀쩡했던 언어 회로도 군대용으로 바뀌어 버린다. 모든 말은 ‘다/나/까’로 맺는 습관이 배어 아무 말에나 ‘다/나/까’를 붙여 정체불명의 말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가끔 외박 나와 부모님이나 친구에게 공중전화라도 할라치면 “여보세요”해야 하는데 “여보시지 말입니다” 라든가 “아니요” 해야 하는데 “아니시지 말입니다” 와 같은 이상한 말이 툭툭 튀어나와 서로를 당황스럽게 했다.
말에 갇혀 보고 말에 데어 본 사람은 언어폭력이 얼마나 자기 존재감을 흔들고 사람을 무기력하게 하고 고통스럽게 만드는지 안다. 꼭 군대 말투만이 아니라 지위나 나이 학번 등으로 상대를 하대하며 은근히 누르는 말투 또한 언어폭력의 일종이다.
학생들과 스스럼없이 말을 놓고 지낸다는 어느 선생님 얘기가 떠오른다. 학생들과 말을 놓고 지내면 훨씬 소통이 좋아져 관계도 친밀 해진다고 한다.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도 1년에 한 번만이라도 꼭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 ‘야호! 하루 동안 온 국민 모두 그냥 야자타임 하는 거지’
언어폭력은 육체 폭력만큼이나 우주평화를 해치는 행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