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의 소원은 통일

월북한 오리 이야기

by 청년홈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점입가경이다. 내가 좋아하는 나라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에 있는 호텔들이(150여개) 모두 만실이라고 한다. 러시아의 징집 대상자들이 키르기스스탄으로 도망 나와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처럼 전쟁은 누구에게나 두렵고 공포스러운 일이다. 먼 나라 얘기 같지만 우리도 아직 휴전 상태이니 전쟁 중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우주 평화주의자이자 통일주의자이다. 내가 아무리 수업을 띄엄띄엄 들었다고 하지만 졸업 논문 제목이 ‘한반도 통일방안’이었으니 믿어주어야 한다. 학과공부는 잘 안 했어도 졸업 논문 준비할 때는 무척 열심히 준비했던 기억이 난다. 간당간당 졸업학점임에도 졸업논문은 잘 썼다고 지도교수에게 칭찬을 받았으니 자랑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졸업한지 25년이 훌쩍 넘었지만 나는 여전히 통일주의자이며 노래 가사처럼 통일은 이 나라를 살리고 이 겨레를 살리는 일이라는 믿는다.


여자들이 제일 싫어 해서 앞으로 군대 얘기는 안 하겠다는 남자들 얘기는 ‘장사꾼 안 남는다는 말’이나 ‘노인들 빨리 죽어야지’라는 말처럼 알고 듣는 거짓말이다. 술 한잔 들어가면 자동적으로 슬금슬금 기어 나오는 남자들 군대 얘기는 사실 90프로가 MSG다. 사단장은 친구 먹었고, 소대장쯤은 자기가 가지고 놀았다는 허풍은 다 애교로 넘겨야 한다. 이런 현실을 아는 내가 군대 얘기를 하려니 뭘 써도 안 믿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래도 오리의 안타까운 사연을 알리기 위해 또 한번의 거짓말 같은 얘기를 쓴다. 이 얘기는 확실한 실화다. 뭐 안 믿어도 어쩔 수 없지만 혹시 같이 근무했던 전우가 이 글을 보게 된다면 증언을 남겨 주시라.


벌써 70여년, 한반도는 여전히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남과 북이 잘려져 있다. 신병교육을 마치고 배치된 부대는 강원도 화천의 백암산 자락 철책이었다. 백암산 자락 부대에서 근무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쪽 지형은 남쪽이 북쪽보다 고지대라 춥기도 더 춥고 눈도 더 많이 내린다. 오죽하면 가끔 대남 선전방송에서 ‘추위에 고생하는 남녁 병사들 따뜻한 북쪽으로 오라’고 방송까지 하니 말이다. 이런 지형임으로 냇물도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른다.


내 동기가 근무하는 옆 소초(30여명 생활하는 전방 막사)에서는 집오리를 10여마리 키웠다. 사람이야 철책을 넘으면 곧 죽음이겠지만 사상의 자유가 있던 오리는 흐르는 물길 따라 자유롭게 남과 북을 넘나 들었다. 냇물 철책은 물살 때문에 기둥을 중심으로 듬성듬성 얽어 있어 그 사이로 자유롭게 드나 들 수 있었다. 문제는 몇 마리 오리가 다른 오리보다 좀 더 사상이 자유로웠다는 점이었다.


어느 가을날 아침, 병사들은 오리 3마리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되었다. 간밤, 3마리 오리가 월북을 한 것이다. 군대는 몇 마리 가축이라도 반드시 변동 사항을 보고해야 한다. 보고를 받은 중대장은 노발대발하며 지프차를 타고 득달같이 달려왔다.


“야 새끼들아. 간밤에 누가 집합시켰었어? 어?”

“오리 누가 갈궈서 월북하게 만들었냐고? 이 새끼들아”


중대장의 화난 목소리에 두려움이 밀려왔지만 ‘누가 집합시켰냐’는 말을 생각하니 속에서 웃음이 올라왔다. 지금 생각해도 참 웃긴 중대장이었다. 중대장에게 평생 먹을 욕의 반을 들은 병사들은 오리의 월북을 못 막았단 이유로 완전군장 뺑뺑이를 돌아야 했다.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며칠 후 월북했던 오리가 돌아왔다. 거기에 혼자 온 것도 아니고 몇 마리 북쪽 친구들까지 데리고 돌아왔다. 병사들은 기뻤지만 아무일 없었다는 듯 꽥꽥거리는 오리들을 보니 뺑뺑이 돌았던 억울함이 올라와 약이 올랐다.

“야 저 시키들 얄밉다 복수하자”

고참의 한마디 말에 후임들은 발빠르게 원래 오리수만 남기고 나머지 오리를 잡았다. 그날 저녁 소초에서는 성대한 오리 고기 파티가 열렸다.


세옹지마는 돌고 돈다. 다음날 아침, 냇가에 노는 오리를 세어보니 잡아먹은 만큼 비어 있었다. 내막은 이랬다. 오리에게 이름표를 붙여 논 것도 아니니 오리를 잡던 병사들 눈에는 그 오리가 그 오리 같았을 것이다. 친구따라 잠시 월남했던 오리들은 제 집이 아니니 잘 도망다녔을 테고 원래 키우던 친숙한 오리들만 병사들 손에 잡혔던 것이다. 그러니까 월남했던 오리는 제 집으로 돌아가고 잡아먹은 오리는 몽땅 원래 살던 남쪽 오리였던 셈이다. 병사들은 다시 한번 중대장에게 평생 먹을 욕의 절반을 들었고 월북한 오리를 원망하며 뺑뺑이 돌았다는 슬픈 얘기다.


제대한지 30여년이 흘렀다. 그 소초에는 지금도 오리를 기르고 있는지 모르겠다. 만일 기르고 있다면 그 때 그 오리들의 손자, 증손자들이 살고 있을 게다. 이산의 아픔은 비단 우리에게만 있지 않다. 분단 70여년, 이제 그 오리들에게도 통일을 선물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이제 그 오리들에게도 할아버지 때 만났던 북쪽 친구를 만날 자유를 줄 때가 되었다. 오리 뿐만 아니라 그곳에 살고 있는 산양, 멧돼지, 노루, 산토끼, 이름없는 들꽃도 모두 남과 북을 자유롭게 오고 갈 때가 되었다.


잊지 말자! ‘오리의 소원도 통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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