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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홈즈 May 19. 2019

비요일

세상에 상처 받은 사람들을 위하여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동네 사우나에서 나와 벤치에 앉아 모처럼 시원하게 내리는 비구경에 빠졌다.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우산도 없이 아파트를 배회하는 소녀가 보였다. 처음에는 그냥 지나가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근 30여분이나 내 눈에 띄었다.
혹시 하는 생각이 스쳤다.

문득 어릴 적 비만 오면 등에 베개를 업고 머리에는 보따리 하나를 이고 귀밑에는 꽃도 한 송이 꽂고 뭐라 중얼거리며 돌아다녔던 홍살(홍산)댁이 생각이 났다. 사실 난 홍살댁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모른다. 다만 우중충한 날이면 홍살댁이 동네를 휘젖고 다녔는데 어른들이 “아이고 미친년 돌아다니는 거 보니께 비오것네” 이런 말들이 강렬하게 비와 함께 남아 있을 뿐이다. 정확하지는 않으나 홍살댁이 미친 이유는 지독한 시집살이에 그나마 의지하며 살아가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물에 빠져 죽었다든가 하는 얘기는 들었던 것 같긴하다.

나는 비를 무척 좋아한다. 비오는 날 비냄새 맡으며 멍 때릴 때가 참 좋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비가 내리는 이유는 하늘이 미치도록 불합리한 세상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반성하는 눈물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세상에 한이 맺힌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알아 주는 하늘이 고마워 홍살댁처럼 비오는 거리로 나오는 게 아닐까?
그러니 비 좋아하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족속인 거다. 불합리한 세상에 상처받은 사람들……
그런 의미로 오늘은 불합리한 세상에 상처 받은 동족을 위하여 한 잔 해야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제 광주에서 '부산갈매기' 부른 사람들너무했다. 어제 광주도 비왔다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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