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동네 사우나에서 나와 벤치에 앉아 모처럼 시원하게 내리는 비구경에 빠졌다.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우산도 없이 아파트를 배회하는 소녀가 보였다. 처음에는 그냥 지나가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근 30여분이나 내 눈에 띄었다. 혹시 하는 생각이 스쳤다.
문득 어릴 적 비만 오면 등에 베개를 업고 머리에는 보따리 하나를 이고 귀밑에는 꽃도 한 송이 꽂고 뭐라 중얼거리며 돌아다녔던 홍살(홍산)댁이 생각이 났다. 사실 난 홍살댁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모른다. 다만 우중충한 날이면 홍살댁이 동네를 휘젖고 다녔는데 어른들이 “아이고 미친년 돌아다니는 거 보니께 비오것네” 이런 말들이 강렬하게 비와 함께 남아 있을 뿐이다. 정확하지는 않으나 홍살댁이 미친 이유는 지독한 시집살이에 그나마 의지하며 살아가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물에 빠져 죽었다든가 하는 얘기는 들었던 것 같긴하다.
나는 비를 무척 좋아한다. 비오는 날 비냄새 맡으며 멍 때릴 때가 참 좋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비가 내리는 이유는 하늘이 미치도록 불합리한 세상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반성하는 눈물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세상에 한이 맺힌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알아 주는 하늘이 고마워 홍살댁처럼 비오는 거리로 나오는 게 아닐까? 그러니 비 좋아하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족속인 거다. 불합리한 세상에 상처받은 사람들…… 그런 의미로 오늘은 불합리한 세상에 상처 받은 동족을 위하여 한 잔 해야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제 광주에서 '부산갈매기' 부른 사람들너무했다. 어제 광주도 비왔다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