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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홈즈 Jan 22. 2024

갑순이와 갑돌이를 기다리며

1인 1표가 맞아?

전갑녀는 누나 이름이다. 종갓집 종손이었던 할아버지 작품이다. 할아버지는 손녀 이름을 손자들과 달리 ‘병’ 자 돌림에서 벗어난 이름을 지었다. 종갓집 종손의 여자아이 이름 짓기는 쉬웠을 수도 있다. 용띠 누나가 태어난 그 해가 바로 올해와 같은 갑진년이었고 갑진(甲辰)년에 태어난 여자아이(女兒) 이름이 갑녀(甲女)가 된 것이다. 물론 할아버지에게 직접 물어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당시 상황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개연성 있는 추측이다. 평생 갓 쓰고 도포자락 휘날리며 글만 읽었던 종갓집 종손이 출가외인이 될 여자아이를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충분히 추정 가능하다. 할아버지가 살았던 시대적 상황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더라도 누나 이름을 생각할 때마다 이름부터 차별을 받았다 생각하니 내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도 그저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어렸을 적 누나 이름은 놀림감이 되기 일쑤였다. 동네 꼬맹이들은 누나 이름으로 별명을 지어 놀렸다. 나도 아무 생각 없이 ‘찐감자’와 같은 별명으로 놀렸으니 누나한테는 지금이라도 맞아도 싸다. 그런데 지금도 미스터리한 건 누나는 국민학교까지는 병숙이라는 이름을 썼다. 그러다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호적이름대로 썼다. 뭐 그 당시 미스터리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니 넘어가자. 사실 나는 어려서 잠시 놀릴 때 말고 이름에 대해 불편함을 갖고 있는지 어쩐지 누나에게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다. 갑녀라는 이름에 대한 생각들도 괜한 나의 오지랖일 수도 있다. 누나 하락도 없이 갑녀 누나 이름을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꺼낸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인간아 제발 두괄식으로 쓰라고’ 

내 글이 이게 문제라고 그렇게 잔소리를 들었는데 어쩔 수 없는 스타일이니 이해 바란다. 여기까지 읽은 사람들에게 괜히 미안해진다. 각설하고 갑진년 새해에는 청룡이 승천하듯 아이들이 많이 태어나길 바라는 마음과 기원을 담아 이 글을 쓴다. 


1,001,833명, 1964년 갑진년에 태어난 출생아 수이다. 24만 9천 명, 2022년에 태어난 신생아 숫자다.  작년 2023년은 21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으니 이런 추세라면 올해 출생아 수는 자칫 20만 명선이 무너질 수도 있겠다 싶다. 보통 큰일이 아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1959년~1971년까지 한해 빼고 해마다 백만 명 이상이 태어났다.(1965년-99만 6천 명). 한 세대 출생아 수가 불과 60년도 안돼 5분의 1로 줄어든 것이다.  


“이대로라면 다수결 원칙인 민주주의는 폐기되어야 하지”

내 동무 감자선생이 술자리에서 울분을 토하며 한 말이다. 맞는 말이다. 올해 20여만 명 태어난다고 가정하고 이들이 투표권이 생기는 18년 후에 이들의 목소리는 베이비붐 세대의 5분 1밖에 안되니 젊은이들 의견이 정책이나 제도에 제대로 반영되기 바라는 것은 바보 같은 생각일 수도 있다. 평균수명이 늘며 노인 세대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고 갈수록 신생아 수는 급감하고 있으니 한국사회에서 다수결은 불공정한 기준일 것이 분명하다. 앞으로 표로 먹고사는 정치인들이 청년들 의견을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소리는 헛소리일 것이 뻔하다. 1인 1표 원칙에서 노인 세대의 5분의 1도 안 되는 청년표를 위해 그들의 의견을 온전하게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말을 믿는 것은 믿는 놈이 바보인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아니 이미 도래했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어쩌라고?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정치 혐오의 시절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없는 백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이런 선거철에 1표 행사하는 일이 유일하니 어쩌겠는가? 다가오는 총선에는 무조건 아이 많이 낳을 수 있는 정책을 실행할 사람을 뽑아야 한다. 무조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사회 만들기가 이 시대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하고 어떤 정치세력이든 그것이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한다. 정당이 어떻고 뭐가 어떻고 보다 일단 무조건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온 나라가 온 세대가 힘을 합쳐 표를 모아야 한다. 미래세대가 없는데 정당이 무슨 소용인가? 정치하는 놈들 다 그놈이 그 놈이라고 포기하지 말고 그나마 있는 권리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꼭 젊은이들이 아이를 낳아 잘 키울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정치인이 나타나기를 바란다. 그런 사람이 나타나야 하고 그들을 뽑아야 우리 미래가 있다.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갑진년 태어날 갑순이와 갑돌이를 기다린다. 몇 년 후 갑진년에 태어난 갑순이와 갑돌이들과 희망의 노래를 함께 부르길 소망하며 흘러간 노래 한 자락을 웅얼거린다.


‘갑돌이와 갑순이는 한 마을에 살았더래요. 둘이는 서로서로 사랑을 했드래요.’ 


갑돌이와 갑순이/김세레나

https://youtu.be/mty6lwvt4W0?si=I8G3Xlorv1t5oVk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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