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굴의 도전정신 K-깡다구
‘그래 *꺄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정육점 윤 씨와 간판 집 김 씨가 소리를 지르며 대거리를 한다. 시장통 입구에서 싸움이 붙었다. 평소 친한 사이인데 무슨 이유인지 시비가 붙었다. 정육점 윤 씨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웃통을 벗는다. 주변 상인들이 말리지만 말리면 말릴수록 더 커지는 것이 시장통 싸움판이다. 간판 집 김 씨도 이에 질세라 웃통을 벗고 달려든다. 자칫 피를 보게 생겼다. 다행인지 싸움이 최고조에 이를 때쯤 각자의 부인들이 나타나자 싸움은 싱겁게 끝났다. 역시 대한민국 서열 1위는 마누라님 들이다.
한국인들은 왜 싸울 때 웃통을 벗을까? 안 벗어야 맞아도 덜 아프고, 상처도 덜 날 텐데 싸움이 시작되면 꼭 옷부터 벗는다. 왜 그럴까?
이는 마지막 승부수 ‘배 째라’ 내놓는 정신, 바로 한국인의 깡다구 정신이다. 깡은 목숨까지 내놓는 마지막 승부수다. 한마디로 정상적인 상황이 아닌 것이다. 깡다구로 돌파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마지막 돌파구니 ‘배 째라’ 내놓고 목숨 걸고 달려든다. 깡다구의 힘이다. 그러므로 깡다구 정신이 있으면 무슨 일이든 극복하고 이룰 수 있다.
한국인은 평상시 유순하고 부드럽지만 안에는 ‘깡’이 있는 사람들이다. 한국인의 깡다구 유전자는 위기 극복, 경쟁, 빨리빨리, 한풀이 등과 같은 문화 유전자와 괘를 같이 한다. 한국인의 ‘깡’은 쥐가 궁지에 몰려 고양이를 무는 정신이다. 한국인의 깡 유전자는 절박한 생존 유전자다. 그래서 절실하고 끈질기다. 다른 면으로 보면 독하고 무서운 기질이다. 깡, 깡다구의 의미는 ‘악착스럽게 오기로 버티며 밀고 나가는 힘’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니까 힘으로나 뭘로 보나 싸움이 될 것 같지도 않지만 악착같이 대드는 정신이 바로 깡다구다.
‘때리면 맞고 피나면 닦는다’
내 바로 손아래 동생이 군대 시절 군용 수첩 머리에 적어 놓았다던 문구다. 한국인의 깡다구 정신이 그대로 들어 있다. 처음 해보는 무서운 군대 생활에 대한 마음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무섭지만 오기와 배짱으로 버텨보겠다는 마음이다. 깡다구는 이처럼 오기와 배짱에서 나온다. 오기와 배짱을 장착하면 세상 무서울 게 없고 안될 것도 없어진다. 다윗이 골리앗에게 대들던 그 패기가 깡다구다.
깡은 남들이 모두 안된다고 할 때 할 수 있다고 나서는 힘이다. 모두 포기할 때 악착같이 끝까지 밀고 가는 힘이 바로 깡이다. 우리 선조들은 역사 속에 그런 깡다구를 보여준 예가 부지기수다. 멀리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은 겨우 12척의 배로 300여 척이나 되는 왜군과 대항하여 이기겠다고 큰소리쳤고 그 깡다구 정신으로 이겼다. 애니깽으로 부르는 최초의 이민자들은 낯설고 척박한 환경 아래서도 깡다구로 버텨 내며 이민사회를 일구었다.
한국인들은 깡다구 정신을 좋아하고 스스로도 깡이 있다고도 믿는다. 돈과 권력과 거리가 먼 힘없는 약자에게 깡이라도 있어야 버티며 살아갈 게 아닌가. 한국인들은 깡이 있는 사람을 은근히 존중해 준다.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던 사람이라도 ‘깡’을 보여주면 어느 정도 인정해 주는 정서가 있다.
제대 후 갑자기 아버지를 여의고 고학생이 돼 버린 20대 시절, 60킬로도 안 되는 말라깽이 몸으로 노가다판에서 버텨낸 내 힘의 근원은 그저 ‘깡다구’ 하나였다. 죽기 살기 깡다구로 버텼지 안 그랬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도 깡다구는 쫌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한국 사람들 유전자 속에는 당신도 모르는 깡다구 유전자가 숨어 있다. 지금 조금 어렵고 힘들다면 깡다구 유전자를 꺼내 보시라. 잘 찾아보면 안에 분명 있다.
조선소도 짓지 않았는데 오백 원 지폐 한 장으로 차관을 얻어 배를 만들었다는 정주영 회장의 정신이 바로 한국인의 깡다구 정신이다. 불굴의 도전정신은 바로 깡다구에서 나온다.
이런저런 일로 무기력해지려는 내 귓가에 자꾸 정주영 회장이 말이 윙윙거린다.
‘임자 해보긴 해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