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족의 문화유전적 특징-모방창조의 천재들
‘독보적 혼종(Hybrid)문화 창조자’
한국인의 문화 정체성과 잘 어울리는 표현이다. 한국인은 무엇이든 가져와 내 것으로 만들어 내는 장인들이다. 한국인은 어떤 문화를 들여와도 한국식의 새로운 혼종문화를 만들어 낸다. 사실 문화란 원래 서로 베끼고 닮아 가는 것이니 한국인만의 능력은 아니다. 하지만 기존의 것과 조화롭게 융합해 새로운 혼종문화를 창조해 내는 능력은 한국인이 단연 독보적이다.
멕시코가 고향인 고추는 먼바다를 건너와 이 땅의 장문화와 융합하여 고추장이 되었고, 전통가옥 방식인 온돌이 서양의 아파트 문화와 결합하여 한국식 온돌아파트를 만들었다. 축구 종주국 잉글랜드의 좀 과격하기까지 한 축구 응원문화도 한국에 들어오면 붉은 악마의 신명 축제 문화로 바뀐다. 치킨이 그렇고, 노래방이 그렇고, 짜장면이 그렇다. 모두 외국에서 들여왔지만 한국식 옷으로 갈아입고 새로운 K-문화가 되었다. 심지어 언어습관에서도 우리 것과 섞어 쓰는 기질을 버리지 못한다. 한자를 들여와 그 속에 우리말을 섞어 ‘초가집(草家+집)’ ‘동해바다(東海+바다)’처럼 문법에 맞지 않는 혼종어를 고집하고, 영어 ‘Fighting’도 이 땅에 들어오면 한국인의 정서를 담은 '파이팅!'이 되어 ‘힘내자’ ‘아자’라는 한국식 영어로 사용한다.
이러한 언어습관의 혼종문화 창조자의 기질은 요즘 MZ세대들의 언어생활에도 나타난다. ‘개좋아’ 그냥 '좋아'가 아니라 '개'가 붙어야 진짜 좋은 것이 된다. 사실 이 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욕의 주재료로 쓰인다. ‘개새끼’ ‘son of a bitch’ ‘이누(~の犬)’ ‘띤까우(電狗: 미친개)’와 같이 개는 인간과 가깝다는 이유로 동서양에서 욕 재료 신세가 되었다. 우리도 오랫동안 개차반, 개꿈, 개죽음, 개수작, 개망나니, 개잡놈 등 개를 욕이나 부정적인 접두사로 사용하였다. 그러던 한국인들은 이 개를 욕에서 건져 내어 한 단계 격상시켜 주었다.
‘개좋아, 개이득, 개간지, 개설렘, 개웃김, 개득템, 개대박, 개멋짐, 개이쁨’
한국인들은 이제 개새끼에서 개를 건져 내 보다 창조적으로 폭넓게 쓴다. 기존형식을 파괴하고 새롭게 조합하는 ‘혼종문화 창조유전자’를 발현시킨 것이다. 과연 독보적 혼종문화 창조자들답다.
이러한 한국인의 독보적 혼종문화 창조의 힘은 현재의 K-콘텐츠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지금 세계를 홀리고 있는 K팝이 바로 대표적 결과물이다. K팝은 랩, 아메리칸 팝, 힙합, R&B, 락 심지어 클래식도 가져와 조화롭게 섞고 비벼서 만들고 거기에 춤을 입힌 새로운 음악장르다. 김영대 대중문화평론가는 이를 맥시멀리즘, 즉 다양한 장르와 요소가 섞여 있는 새로운 장르의 음악이라고 평한다. 한 마디로 지금까지 보지 못한 종합선물 세트 같은 새로운 혼종(Hybrid) 음악장르를 창조한 것이다. 세계가 열광하지 않을 수 없다. K드라마, K영화도 마찬가지다. 할리우드 영화기법을 사용하지만 그 속에 인류 보편의 문제들을 한국식으로 디테일하게 풀어낸다. 세계인들이 공감하며 빠져들 수밖에 없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국민간식으로 추앙받는 초코파이도 미국의 문파이를 보고 만들었다고 하며 거기에 한국인의 정을 입혀 누적 5조 원대의 매출을 올렸으니 대단한 혼종문화 창조력이다. 최근 핫도그의 본고장 미국에서 현지인들을 줄 서게 만들고 있다는 K핫도그도 그렇다. 미국식 핫도그나 콘도그와 달리 빵가루를 묻혀 튀겨내고 거기에 설탕을 묻혀 먹는 K스타일에 놀라며 그 맛에 빠져든다고 한다. 사실 말이 핫도그지 전혀 다른 음식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세계적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은 자신의 예술세계 근간을 서로 다른 것을 잘 섞어 제 맛을 내는 ‘비빔밥 정신’이라고 했다. 비빔밥은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 맛을 내는 통찰의 음식이다. 각 재료의 성질을 이해하고 그것이 혼합되었을 때의 맛을 가늠하지 못하면 비빔밥은 음식으로 대접받지 못한다. 통찰과 혼종문화 창조자의 힘이 필요한 음식인 셈이다. 한국인은 비빔밥처럼 무엇이든 섞고 비비고 거기에 한국인 독특한 문화까지 조화롭게 더해 최고의 새로운 혼종문화 창조물을 만들어 내는 천재들이다.
이러한 섞고 비비는 혼종문화 창조력은 초대문화부장관을 지낸 이어령 선생의 변죽론에서도 찾을 수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 문화권에서 북을 연주할 때 가죽의 가운데 부분을 정타해 소리를 낸다. 한국인들만 거의 유일하게 북이나, 장고 등의 가운데뿐 아니라 가장자리를 두드리며 연주의 일부로 삼는다. 판소리에서 고수는 북 가운데 정타 소리에 가장자리 소리를 얹어 더 맛을 낸다. 변죽을 울리는 거다. 정타를 치지 않는 소리는 대부분 문화권에서 잡음에 불과해 버리는 소리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잡음조차 버리지 않고 판 속에 끌어들여 연주에 섞어 버무린다. 비빔밥처럼 정음과 잡음을 섞어 새로운 판을 만들어 내는 혼종문화 창조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태초에 ‘시발’이 있었다.
여기서 ‘시발’은 욕이 아니다. 처음으로 시작한다는 의미의 시발(始發)이다. 전쟁으로 산업기반이 쑥대밭이 돼 버린 아무것도 없는 나라에서 무엇을 새롭게 생산해 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강인한 한국인들은 전쟁 후 버려진 군수물자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방법을 찾아냈다. 미군이 버리고 간 자동차를 분해해 구조를 이해한 후 그 엔진에 굴러다니던 폐드럼통을 펴 차체를 씌워 자동차를 만들었다. 그 이름이 바로 최초의 자동차 시발이다. 이렇게 어렵게 시작한 한국의 자동차 산업은 알다시피 오늘날 세계 5위권 안에 드는 생산국이 되었다.
이처럼 한국의 대부분 산업은 앞선 나라를 따라 하면서 성장했다. 사실 이런 따라 하기 전략은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취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은 다른 어떤 개발도상국보다 훨씬 더 탁월한 모방창조 능력을 발휘했다. 한국인은 무엇이든 따라 하되 그대로 따라 하지 않는다. 한국인은 기존의 형식을 쫓지만 똑같이 하는 것은 싫어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기존의 것을 분해하고 분석하여 내 것에 맞게 변형, 조합하여 새로운 혼종을 만들어 내는 천재들이다. 기존의 것을 해체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쓸모 있게 조합하는 것이 바로 창조다. 이렇게 독보적 혼종문화 창조력의 바탕인 모방창조력의 근거는 한국인의 일상의 언어 습관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한국인들은 습관적으로 ‘만일’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만일(萬一)은 만 분의 1이라는 의미다. 만일을 입에 달고 살다 보니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그러다 보니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만일 이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만일 저렇게 하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창조력이 안 생길 수 없다.
독보적 혼존문화 창조력의 바탕인 이러한 창조력은 자기 해체와 자기반성을 통한 성장욕구에서 생겨난다. 그 성장욕구의 바탕이 바로 시련과 고통의 시간이다. 시련이 사람을 더 성장하게 하고 단련시킨다는 것은 맹자에도 나온다. 하늘이 그 사람에게 큰 일을 맡기려 할 때는 많은 시련과 고통으로 그의 마음을 두들겨서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일도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시련과 고통의 시간이라면 한국인들이 살아온 역사 또한 세계 어느 민족에 뒤지지 않는다. 그러한 시련과 고통의 시간들이 창조력의 바탕이 되었을 것임은 자명하다. 그런 의미로 한국인들은 모두 예술가요 작가들이라 할 만하다. 작가는 글자 그대로 집을 짓는 사람이니 아무것도 없는 대지에 새롭게 집을 창조한 한국인들이니 하는 말이다. 이러한 예술가적 기질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없는 전후 폐허국에서 어떻게 불과 70여 년 만에 경제강국, 문화강국을 지어 낼 수 있었겠는가?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꼭 하고 싶은 것 중 하나가 소맥 마시기라고 한다. 세계 주당들 중에 제일 술을 잘 섞어 마시는 종족은 한국인들이다. 서양인들도 칵테일처럼 섞어 마시는 술이 있지만 한국인들이 섞는 창조력은 따라오지 못한다. 한국인들이 섞어 만든 술들은 셀 수없이 많다. 양주와 맥주를 섞는 원조 폭탄주부터 고진감래주(소주+맥주+콜라), 소메리카노(소주+아메리카노), 홍익인간주(소주+홍초음료), 소백산맥주(소주+백세주+산사춘+맥주), 메오나주(소주+사이다+메로나바), 스크류키스(소주+사이다+스크류바), 소콜(소주+콜라) 한때 유행했던 오이소주(소주+오이채), 막사이사이주(막걸리+사이다)까지 한국인의 술 섞기에 대한 창조력은 끝이 없다. 여기에 술을 마실 때도 맥주잔 위에 양주잔이나 소주잔을 올려놓고 도미노게임처럼 쓰러트려 섞어내는 기술을 보여주기도 하며 마실 때도 신박한 술게임으로 술판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낸다. 하긴 뭐든 잘 섞는 혼종문화 창조자들인데 술 섞는 것쯤이야.
남의 옷을 빌려 입으면 계속 남의 옷이지만 남의 옷을 가져와 내 몸에 맞게 고쳐 입으면 내 옷이 된다. 한국인은 무엇이든 이 땅에 들여와 조화롭게 융합하여 새로운 혼종문화를 창조해 낸다. 현재 K를 달고 세계를 열광시키는 모든 영역 속에는 이러한 독보적인 혼종문화 창조자의 면모가 들어 있다. 문화강국 K의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다. K-문화 유전자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