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년홈즈 Oct 25. 2024

척박한 환경의 선물 강인한 생존력

K족이 비밀

'독종 한국인'

한국인은 어디에 내놔도 살아남을 수 있는 독종들이다. 재외동포청 자료에 의하면 2023년 기준 전 세계 곳곳에 살고 있는 재외동포는 대략 약 708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여기에 혼혈인까지 포함하면 재외동포 수는 더욱 늘어난다. 절대수로도 중국, 이스라엘, 이탈리아와 함께 세계 4위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이고, 인구비율로 따지면 세계 1위에 해당되는 수치다. 또한 한국인은 분포 국가도 제일 다양하다고 한다. 재외동포 수가 제일 많은 중국 화교들은 주로 한 지역에 차이나타운을 형성해 주로 동남아시아지역이나 각 대륙별 대도시를 거점으로 분포하는 특징을 보인다. 하지만 한국 재외동포들은 일부 국가에서 코리아타운을 형성해 살기도 하지만 적은 인원이라도 전 세계 곳곳에 분포해 살아가고 있다. 한국인들은 강한 생존력을 발판 삼아 어디를 가든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정말 독종 한국인들이다. 이러한 한국인의 강인한 생존력은 어디에서 왔을까?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다. 인간은 처해진 환경에 적응해 살아가면서 거기에 적합한 기질을 형성한다. 더운 나라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급하지 않고 온순하며 유유자적한 특징을 보인다. 반면 추운 나라 사람들은 다혈질적이고 행동 선이 굵직굵직하다고 말한다. 섬나라 일본인을 정교함과 통일성을 추구하는 축소지향적이라고 말하고 상대적으로 대륙에 사는 중국인은 크고 웅장하게 과시하고 과장하는 확대 지향적이라고 말한다. 각자 처해진 환경에 적응하며 얻은 기질이다. 수천 년 동안 한반도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온 한국인들도 형성된 기질이 있다. 바로 강인한 생존력을 가진 '독종 한국인' 기질이다. 


한반도는 척박한 땅이다. 특히 농경민족이었던 조상들에게는 더욱 척박한 땅이었다. 반도의 70% 이상이 산악지형인지라 넉넉한 경작지 확보가 힘들었고, 그나마 있는 경작지도 하늘만 바라보며 농사를 지어야 하는 천수답이 대부분이었다. 오늘날처럼 농법도 발달하지 못했으니 계절의 변화에 맞춰 경작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가뭄과 홍수 그리고 곡식이 익을 때쯤 찾아오는 태풍은 어렵게 농사지은 식량을 앗아갔다. 생산량이 늘 풍족하지 못하니 굶주림은 일상이었다. 거기에 겨울은 춥고 여름은 무척 덥다. 살아남기 힘든 환경이었다. 


이러한 척박한 경작환경은 한국인에게 어떤 고난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강인한 생존 유전자를 심어 주었다. 씨앗 심는 때를 놓치면 경작은 시작부터 실패한 것이다. 계절변화에 맞춰 농작물을 돌보지 못하면 수확량은 줄어든다.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하기에 부지런해야 했고, 계절의 변화와 시시때때로 닥치는 천재지변에 적응하기 위해선 미리미리 준비하는 빨리빨리가 필요했다. 또한 한정된 경작지에서 먹고살기 위해서는 생존 경쟁은 피할 수 없는 요소였다. 이러한 생존 경쟁은 남보다 앞서기 위한 '엄청난 교육열'을 낳았고,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으니 '무조건 할 수 있다'는 '도전정신'을 만들었다. 또한 척박한 환경에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어떤 고난도 버텨낼 수 있는 '은근과 끈기'의 힘이 생겼으며, 어려움이 닥치면 똘똘 뭉쳐 이겨낼 수 있는 '위기 극복 유전자'도 장착되었다. 그러니까 지금 살고 있는 현재는 우리 조상들이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투쟁으로 얻은 보상인 셈이다.


척박한 경작환경뿐만 아니라 지정학적 요인으로 많은 시련과 고통을 주었다. 한반도에 터를 잡고 살았던 조상들은 주변국을 한 번도 침략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흥망성쇠에 따라 크고 작은 침략전쟁에 시달려야 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근 천년 동안 무려 184번의 크고 작은 이민족의 침략을 받았다고 하니 조상들은 5~6년에 한 번씩 큰 전쟁을 겪으며 버텨온 셈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역사상 가장 불행한 세대 얘기가 가슴에 닿는다. 1580년대 생은 10~20대에 임진왜란, 30대에 사르후 전투와 이괄의 난, 40대에 정묘호란, 50대에 병자호란을 겪은 세대라 한다. 평생 전쟁을 겪으며 살다 간 조상들이다. 지금 우리는 그때 살아남은 후손들이라 생각하니 그저 웃을 수만은 없다. 


대륙에 붙어 있는 반도국의 숙명은 대륙의 왕조가 바뀔 때마다 수시로 침략에 시달려야 했다. 멀리 수나라, 당나라에서 근래 명나라, 청나라까지 한반도는 늘 그들의 침략 대상이었다. 해양 쪽의 옆 나라 일본도 마찬가지다. 역사 이래로 왜구들은 곡창지대나 남해안 일대를 수없이 침탈하였고, 임진왜란, 정유재란 등 반도 침략전쟁을 일으켰으며, 근대화 시기에는 조선을 강제로 합병하여 식민지화해 버렸다. 대륙 쪽이나 해양 쪽이나 주변국이 모두 침략국이었던 것이다. 


근현대사를 돌아보아도 시련은 계속된다. 어렵게 해방을 맞이했지만 복잡한 국제관계 속에 이데올로기 전쟁에 휩쓸렸다. 수백만 명이 죽고, 수백만 명이 이산가족으로 헤어져야 했다. 이 비극적인 동족상잔의 전쟁은 잠시 휴전 중일뿐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한반도는 여전히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충돌지점으로 미, 일, 중, 러 세력들의 각축장이다. 그들 강대국들은 각자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반도를 국제정세의 중심 국가로 앉혀 놓는다. 


이렇게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생존 투쟁을 벌여야 했던 반도국 사람들은 역설적이게도 지기 싫어하고 자존심 강한 유전자를 갖게 하였다. 한국인들은 주변 강대국들을 지칭할 때 다른 나라 부를 때와 달리 일본 놈, 중국 놈, 미국 놈, 러시아 놈처럼 '놈'자를 붙이는 습성이 있다. 자존심 강한 기질이 은연중 묻어 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강대국에 지기 싫어하는 기질은 강력한 동기유발 기재가 되기도 한다. 한국인들은 여전히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 일본을 무시하며 가위바위보를 하더라도 일본한테만은 지기 싫어한다. 또한 일본이 하면 우리도 한다는 정신으로 똘똘 뭉쳐 있다. 몇 년 전 강제노역 배상문제로 촉발된 일본의 경제제재에 대한 한국인의 대응 결과를 기억할 것이다. 전 국민이 합심하여 불매운동을 벌이고 기업들은 수입불가 품목에 대한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여 오히려 국내 관련산업이 성장하는 계기로 만들었다. 이런 면으로 본다면 일본의 존재를 고마워해야 하나 싶다. 중국의 존재도 비슷하다. 


이렇듯 척박한 환경과 주변국의 침략에도 살아남은 한반도 사람들은 특유의 근면성실, 빨리빨리, 위기 극복, 은근과 끈기, 도전정신, 경쟁, 교육열 같은 'K족 기질'을 강화해 왔다. 고고학자 이종선은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온 한국인의 특성을 그의 저서 ‘한국, 한국인’에서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표현하였다.

‘우리는 인본주의자요 평화주의자였지만, 한편으로는 주변 대국의 세력권 속에 있는 소국으로서의 체념과 인내심이 민족의식 속에 간직되고 있었다. 대세의 흐름에 눈감고 순응하는 생활을 하다 보니 감정은 극도로 억제되었고, 그것은 강인한 끈기와 우수, 그리고 한(恨)과 오묘(奧妙)의 예술로 승화되었다. 또한 외세로부터의 시달림은 서민, 민초들의 생활 의식을 은근과 끈기, 해학과 여유로 나타나게 했다. 한민족의 강인함과 외세에 굴종하지 않으려는 자주성은 그 배출구가 막히게 될 때 기예나 미술 등으로 더욱 승화되곤 하였다’


우리는 이처럼 조상들이 고난과 역경을 버티며 얻은 유전자를 밑거름 삼아 지금의 문화강국, 경제대국 K를 이루었으니 고난과 시련의 반도국 사람들 숙명을 축복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싶긴 하다.  


이전 02화 세계를 사로잡은 K-콘텐츠의 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