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에서 한강까지 문화강국 K
이제 우리도 노벨문학상 보유국이 되었다. 한강 작가는 우리에게 노벨문학상 받은 작품을 원서로 읽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뜻도 모르는 외국 팝송을 따라 부르며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고 일본 만화영화를 동경하며 자랐던 나에게는 참으로 격세지감이고 가슴 뿌듯한 일이다.
이뿐인가? BTS, 블랙핑크가 빌보드 정상에 오르고 ‘기생충’ ‘오징어 게임’은 아카데미와 오스카에서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이제 우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명배우 윤여정의 수상소감을 듣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한국은 이제 세계가 부러워하는 명실상부한 문화강국이 되었다. 이제 K팝 가수가 빌보드 1위에 올랐다는 소식은 놀랄 일도 아니다. 넷플릭스 인기 프로그램 상위 리스트에서 드라마, 영화 등 K콘텐츠를 발견하는 것이 일상이 된 지 오래다. K는 이제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 K뷰티, K푸드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하며 세계인을 홀리고 있다. 각종 화장품들이 K뷰티라는 이름을 달고 세계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은지는 꽤 오래 되었으며, 파리나 런던, 뉴욕 등 유명 도시의 메인 스트리트에서도 K푸드 식당 간판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게 되었다. 이뿐인가? 초코파이는 러시아. 중국. 베트남 같은 나라에서 국민간식으로 대접받고 있으며, 냉동 김밥이 미국의 주요 마트에서 품절 사태를 맞고 있다고 하니 그저 신기할 뿐이다. 이제는 웬만한 나라 마트에서 우리나라 라면, 소주, 심지어 고추장까지 볼 수 있으니 번거롭게 해외여행 준비로 이것저것 챙기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는 이러한 위대한 성과를 하나의 우연으로 생각하거나 국뽕 취급하며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한국인이면서 한국인에 대해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 특유의 과소평가 기질도 한 몫 했다. 겸손을 미덕으로 여기는 유교 문화가 지나쳐 자기 비하가 습관이 되 버린 것이다. 그러니 자부심도 없다. 청년들에게 이 나라는 헬조선, 지옥불반도가 된 지 오래다. 나이든 사람들도 시끄러운 나라 소식을 들을 때 마다 여전히 식민사괸에 물들어 내뱉던 ‘**놈은 안돼’를 외치며 한국인임을 부정하려 든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밖에 나가면 애국자 된다는 말이 있다. 나라 안 소식은 매일매일 시끄럽지만 나라 밖에선 여전히 K의 인기가 최고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우리는 이룬 성과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내가 한국인임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것인지. 얼마 전 중앙아시아 키르기즈스탄과 카자흐스탄을 여행하면서 느꼈던 놀라움이 지금도 내 가슴을 뛰게 한다.
떠나기 전까지 나 또한 한류니 K붐이니 하는 말에 반신반의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런 의심은 키르기스스탄의 비슈케크에 도착한 지 반나절도 안 되어 풀렸다. 도착하지 마자 들른 현지 식당에서였다. 테이블에 앉자마자 현지인들이 우리 일행을 흘끔거리더니 한국인임을 알자 환하게 웃으며 연신 엄지 손가락을 흔들어 댔다. 그러자 마치 유명인이라도 나타난 듯 식당의 대부분 사람들의 눈길이 우리를 향했다. 일부는 미소를 보내며 손을 흔들기도 하고, 또 몇몇은 술잔을 들며 눈을 맞추었다. 갑자기 내가 스타라도 된 듯한 상황이 펼쳐졌다. 기분이 얼떨떨했다. 한류가 인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한국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어마어마한 지는 상상하지 못했다. 가이드 말로는 코로나 팬데믹 겪으면서 오징어 게임, 기생충, BTS 블랙핑크 등 K팝 가수들로 인해 한국에 대한 관심이 늘더니 최근 들어 그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믿기 힘든 관심은 며칠 뒤 카자흐스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낯선 땅 중앙아시아에서 우리 일행은 ‘Korea’라는 한마디에 황송한 대접을 받았다. 정말 내가 국제사회 인싸요, 셀럽이 된 기분이 들었다.
이러한 K에 대한 관심은 일부국가만의 일이 아니다. 얼마 전 영국의 가디언은 ‘Everything K!(K로 통하는 모든 것)’이라는 강렬한 헤드라인과 ‘the rise and rise of Korean culture(계속해서 새롭게 부상하는 한국 문화)’라는 부제로 K컬처에 대한 분석 기사를 올렸다. 또한 독일 베를린 매체 라디오 에너지(Radio Energy)는 현재 세계인들이 무엇이든 앞에 K가 붙으면 붐이 일어나 made in Korea에 빠져드는 현상을 ‘K-WHAT’이라 명명하며 K붐에 대한 분석 기사를 올렸다.
‘어쩌다 K는 이렇게 국제사회 인싸가 되었을까? 한국인들은 어떻게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IMF 등 그 험난했던 시련을 단기간에 이겨내고 지금과 같은 위상을 갖게 되었을까? 한국인들은 어떻게 빌보드와 아카데미 그리고 노벨문학상까지 인정한 문화강국이 되었을까? K는 정말 왜 떴을까?
사실 지금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동시에 이룬 성공요인을 몇 가지로 딱 잘라 요약하기는 어렵다. 이는 마치 코끼리 코가 어디부터 인지, 뱀의 꼬리가 어디부터 인지를 밝혀내는 것처럼 힘든 일이다. 분명한 것은 위대한 작품이 어느 날 난데없이 태어날 수 없는 것처럼 지금의 문화강국K도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분명 한국인만의 어떤 독특한 힘이 있었기에 지금과 같은 성과를 이루었음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그 한국인만의 독특한 힘의 요체는 무엇이었을까?
한때 조직관리 전문가라 자부하며 살았다. 나는 새로운 조직에 부임하면 먼저 그 조직의 이력부터 분석한다. 조직이 걸어온 길 속에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나 현재의 실력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과거의 결과물이다. 국가나 민족도 마찬가지다. 한국인의 현재는 조상, 선배들이 살아오면서 축적한 결과물이다. 따라서 현재 한국이 이룬 성과를 제대로 알고 싶다면 한국인이 살아온 이력, 한국인의 삶의 총체를 들여다보면 된다. 즉 한국인의 문화를 알면 현재가 보인다.
사람들이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면서 갖게 된 생활 습관, 기질, 풍습 등 삶의 총체를 문화라 한다. 다시 말해 문화란 한 공동체가 자연을 개척하면서 공동체의 생리에 맞게 개조한 것들의 총체라 할 수 있다. 문화연구자 존 피스크(John Fiske) 교수는 문화를 관념, 태도, 언어, 실천, 제도, 권력구조를 포함한 여러 가지 생활방식과 예술형식, 텍스트, 건축, 대량생산 상품 등 문화적인 여러 실천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문화란 인간 활동의 모든 영역을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 문화에 대해 알고,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는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인이면서 한국인의 문화 정체성을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살아가는 가짜 인생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 공동체의 문화 속에는 현재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기질, 특성, 장점 등 그들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이를 문화 유전자라 한다. 원래 이 '문화 유전자'라는 개념은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1976~2006)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생물학적 유전자 진(gene)에 대비하여 문화 유전자를 밈(meme)이라고 명명한 데서 유래했다. 그러니까 공동체의 문화 유전자를 알면 그 공동체가 가진 정체성을 알 수 있고 현재를 읽어 낼 수 있다.
한반도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함께 살아온 한국인에게도 한국인의 정체성을 담은 문화 유전자가 들어 있다. 성별, 생김새, 성격, 성씨는 달라도 한국인이라 부르는 사람들에게는 좋든 싫든 어쩔 수 없이 K라는 문화 유전자가 들어 있다. 아무리 영어에 익숙한 사람이라도 아프리카 오지 마을에서 들리는 한국어에 고개를 돌리게 되고, 햄버거에 익숙한 MZ세대라 해도 해외 나가 일주일만 떠돌면 김치를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금 이룬 '문화강국 K'는 우연이 아니다. 지금 전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는 '문화강국 K'의 힘은 한국인의 문화 유전자가 큰 영향을 끼쳤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나 능력, 성과는 수천년 이어온 한국인 내면의 힘(한국인의 문화유전자)이 발현된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인의 문화유전자를(이를 K-문화 유전자라 하자) 읽어내면 '문화강국 K'의 요체에 한 발 더 다가가 갈 수 있다. 문명충돌론을 주장한 새뮤얼 헌팅턴(Samuel Huntington, 1927-2008)도 ‘문화가 중요하다 The Culture matters)라는 책에서 식민지와 전쟁을 겪으며 거의 폐허가 된 최빈국 한국이 불과 수십 년 만에 경제 대국으로 일어설 수 있었던 이유를 바로 유구한 역사를 지닌 한국문화의 힘으로 보았다. K-문화유전자를 알면 '문화강국 K'가 보인다.
당분간은 이러한 문화강국 K의 바람은 점점 더 거세질 것이 확실한다. 한국인들 속에는 수천년 쌓아 온 K-문화 유전자의 힘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 불고 있는 K-바람은 다른 나라에서 따라 하기 힘들고, 따라 한다고 해도 당분간 같은 결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K-문화 유전자는 우리만 가질 수 있는 오래시간 축적된 경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K-문화 유전자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 이유다. 자 지금부터 한국인의 매력과 그 비밀에 대해 더 깊이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