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은 Jan 15. 2021

이사를 가고 이사를 온다.

이사를 가고. 이사를 온다.

그 집을 구성하는 가족이 몇 명 일지 아직은 모른다.

아이가 있는지 없는지.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지 없는지.

다닥다닥 붙아파트  옆집에 누가 사는지 알 수 없는 세상.

시끄럽다거나 냄새가 난다거나 어떤 불쾌한 일이 생겨야만 얼굴을 볼 수 있다.

때론 사람보다 강아지가 사는지 안 사는지는 정확히 알게 된다.

집 앞에 세워놓은 자전거 바퀴의 크기가 안장의 높이가 한 사람을 알려줄 때도 있다.


겨울을 지독히도 싫어했다.

가을에서 겨울의 냄새를 맡았을 때 온몸을 파고드는 시린 쓸쓸함이 싫었다.

벽에 기댄 작은 등을 밀어내는 써늘한 냉정함도.

바람 한 줌 통과할 수 없게 집집마다 꼭꼭 닫힌 문들이.

한 칸에 하나씩 손을 찔러 넣고 몸을 잠근듯한 움츠린 모습이

일찍 문을 닫 캄캄한 상가의 발길 끊어진 무관심이

칼날 같은 추위에 배일까 봐 시선조차 돌릴 여유가 없는 앞만 보고 종종걸음 걷는 조급함이

살짝만 닿아도 파삭 깨질 것만 같은 꽁꽁 얼어붙은 공기가

모든 것이 찔릴 것 같은 날카로움으로 다가왔다.


그럴 때면 집에 들어와 이불속에서 가족들과 숨이 막힐 정도로 끌어안았다.

손에 손을 비비고 코에 코를 비비고 가슴을 열어서 가슴을 녹였다.


또 이사를 가고 이사를 온다

누군가의 아빠가

누군가의 엄마가

누군가의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누군가가...

누구일지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사는 동안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문 걸어 잠 누군가가

겨울처럼 왔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 겨울처럼 갈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른한 행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