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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Oct 03. 2021

살아가는 힘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았다.

내 우산은 당연히 네가 챙길 거라고 생각했다.

사랑받는 중이었다.

조금 이기적이고 제 멋대로에 자신 만만했다.

넌 내가 아니면 안되니까

으스대고 뻐겼다.

그래도 뭐가 맘에 안 드는지

자주 징징대고 짜증을 내고

나도 모르는 나를 너는 속속들이 알아야만 하는 것처럼

왜 모르느냐고 그건 날 사랑하지 않는 거라고 의심하고 시험하고 구박했다.

그러다 네가 별안간 사라져 버릴까봐 두려워 모질게 화를 냈다.

나는 종종 비를 뿌리고 넌 차가운 비에 녹아 너덜너덜 해졌다.

죄책감에 난 나를 미워했다.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았다.

네가 비를 맞지 않게 우산을 하나 더 챙겨야 할 것 같다.

사랑하는 중이었다.

사랑을 주는 것은 늘 조심스럽다.

사랑이 넘쳐 집착이 되지 않게

사랑이 모자라 목마르지 않게

네가 손만 뻗으면 닿을 딱 그만큼의 거리를 두었다.

주면서도 덜 준 것 같아 항상 미안한 마음이었다.

너를 위해 좀 더 멋진 사람이 되도록 나를 가꾸고.

네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난 그보다 훨씬 몇 배 더 행복해졌다.

너는 종종 비를 뿌렸지만 난 우산을 준비했으므로

비가 그치고도 말짱했다.


사랑을 받아야만 행복한 줄 알았는데

살아가는 힘은 사랑을 하는 것에서 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랑을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을 때 내가 소멸한다는 것을

그렇게 철이 들었다.

그렇게 흰머리가 생기고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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