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삐삐가 울리고 있다. 친구 집 전화번호가 찍혀있다
중학교 에피소드 셋, 삐삐세대
삐삐 삐삐.. 누군가에게서 삐삐가 왔나보다. K와 나는 독서실에 왔다. 우리 때는 학원도 가지만, 독서실이 한창 성업하던 때이다. 우리는 그냥 추억을 찾아서 독서실로 온 것이다. 남자, 여자 구분해서 방을 들어갔는데 휴게실에서는 다 같이 볼 수도 있었다. K와 나는 지금 휴게실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이다.
“무슨 소리야?”
“누가 삐삐 놔두고 갔나봐.”
곧 중학교 여학생이 친구랑 헐레벌떡 들어온다.
“야, 여기 있다. 휴- 다행이다.”
“내가 있을 거라고 했잖아.”
“그래, 있네.”
“연락 온 거 있나?”
“왔다 왔다.”
“야야, 우리 가서 들어보자. 음성이네!”
당시에는 삐삐가 있었는데, 전화를 해서 삐삐로 번호를 남기면 삐삐에 번호가 뜬다. 그러면 전화를 해주기도 하고, 음성을 남길 수도 있어서 음성을 들을 수도 있었다.
지금은 스마트폰이 발달해서 카톡을 하지만, 그 때는 삐삐였다. 생각해보면 생활은 편해졌지만 사람과의 관계가 많이 각박해진 점도 있어서 괜스레 그 때가 생각이 난다. 내 손에 놀 거리가 없으니 자연스럽게 상대방과 이야기 할 수밖에 없었다.
“쟤네들 되게 재밌네. 급한데서 연락 왔나봐.”
“뭐 좋아하는 남자애거나 그렇겠지.”
삐삐- 삐삐-
소녀의 삐삐가 울리고 있다. 친구 집 전화번호가 찍혀있다.
당시에 나는 심리적으로 저 깊은 곳에는 외로움이 있었던 것 같다. 겉으로는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고 있지만, 내가 외롭다는 사실을 나조차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어른이 되고 나서야 깨닫게 된 사실이다. 그래서 더욱 친구들을 찾았던 것 같다.
“K, 요즘은 편지나 대화보다 SNS나 온라인으로 소통을 많이 하잖아!”
“그렇지.”
“어떤 면에서는 편리하지만, 실제로 얼굴을 보며 이야기하는 경우가 줄어드는 것은 참 애석한 일인 것 같아.”
“뭐든 장단점이 있는 법이잖아.”
“그래 라고 좀 해 봐!”
“크크 또 동의 안 해 줬다고 이런다.”
“그...래...”
“좋았어. 공감하고 나서 자기 얘기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화법인데. 왜 이러셔”
“알았다고 크크”
삐삐는 1990년대 초중반에 쓰였던 휴대용 수신기기이다. 당시에는 삐삐에 새겨진 전화번호와 음성 메시지를 듣기 위해서 공중전화 박스 앞에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던 풍경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제는 사용 인구수가 많이 줄어 거의 찾아보기 힘들지만, 휴대전화가 대중화되기 전에 사랑받은 대표적인 휴대통신기기였다.
삐삐- 삐삐-
비 오는 날 들리던 삐삐 소리의 울림은 누구일지 궁금하게 만드는 운치 있는 감성을 가지고 있었다. 때로는 집에서 빨리 안 오냐고 울리는 소리일 때도 있고, 친구가 나를 찾기도 하는 소리였다.
“만약 지금 스마트폰이 없다면 어떨까?”
“또 없으면 없는 대로 살지 않을까, K?"
"그럴까? 난 아날로그 감성주의자이기는 하지만, 없으면 엄청 불편할 것 같은데!
사진은 어떻게 보내고, 음악전송은 어떻게 하고, 말로 잘 안하는 친구 녀석들 연락은 어찌 하냐고!"
“편리한 것이 많기는 하지. 넌 대화 좀 하고 사냐?”
“나를 뭘로 보는 거야? 소통의 신이지.”
“푸흡”
“그래 웃어라!”
“암튼, 넌 나하고 소통을 좀 해. 이야기를 해도 소통이 안 된단 말이지!”
“뭐야?”
“농담이야 크”
이렇게 K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벌써 날이 저물어 간다. 독서실에서의 시간은 소녀에게 있어서 학창시절 여러 가지 감성 중 하나를 차지하던 곳이다. 지금 돌이켜봐도 어른들이 공부해라고 하니 그냥 목적 없이 했었다. 소녀에게 꿈이 있었다면 지금은 어떻게 되어 있었을까? 세상의 이치를 조금 더 유쾌하게 알고,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알고 세상에 대해서 꿈을 꾸었다면? 물론 지나간 일이기에 후회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라고 생각 해보는 것이다.
지금 친구들 꿈이 없다는 것 알고 있다. 그런데 분명히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나와 내 주변이 더 행복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그래도 직업을 넘어서 때로는 심장이 터질 듯,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다. 꿈으로 인해 오늘도 심장이 두근 두근 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은 꿈꾸는 자의 특권!
좋아하는 일들은 있었지만, 아직 천지도 모르고 해야 될 일을 하고 있던 소녀의 하루 하루 속에서 삐삐는 놓칠 수 없는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중학교 에피소드 넷, 중2병
중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수업시간에 발표하려고 손들고 했던 그 기억이 있는데, 그 이후로는 점점 나도 그렇지만, 친구들의 손이 좀처럼 올라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이 때 부터 아마도 왜 공부해야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던 것 같다. 도대체 왜 공부해야 하는 것인가! 속 시원하게 말할 수 있을까?
솔직하게 중2병이라는 것은 세상이 만들어 낸 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병이라는 것은 대부분 결핍되거나 과잉되었을 때 생기는 것이 아닌가! 물론, 바이러스에 의해서 생기기도 하지만.. 이유의 설명 없이 “해라”고만 하는 방식의 존재감들이 중2병을 만들어낸 경우가 많다. 또한, 가정에서 공급되어져야 할 사랑의 부재가 커질 때, 이 병은 문제아를 생산해 낸다.
그런데, 이제야 알 수 있는 것도 있다. 그렇게 한 존재들은 그것이 답이며, 억지로 해 두면 분명히 훗날 잘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렇게 했고, 다른 방식의 다가섬을
배운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오늘은 중2가 되는 날이다. 1학년 때 보다는 달라진 소녀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저기 애들 청소하고 있다.”
“나도 저기 있네.”
조금씩 외모에 더 신경을 쓰고, 소녀들은 변화를 겪기 시작한다.
친구가 나에게 이야기를 한다.
“어제 아빠한테 맞았다.”
“왜?”
“집에 늦게 들어갔거든.”
“왜 늦게 들어갔는데?”
“그냥.. 엄마랑 아빠랑 싸워서 집에 있기 싫어서...”
나는 친구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고 있다.
“뭐 때문에 싸우시는데?”
“나도 모른다.”
“니가 많이 힘들겠네. 이거 같이 들을래?”
“뭔데?”
"왼손잡이“
“그래, 들어보자.”
이 때는 정말 많은 가수들이 좋은 멜로디의 노래를 많이 발매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비롯해서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은 300만장이나 판매되었다. 공부에 시달리기 시작한 여중생들에게 노래는 어떻게 보면 중요한 탈출구였다. 그리고 댄스 가수들의 활약이 시작되던 때였는데, 소녀들은 춤이라는 신세계에 빠지기도 했다.
나는 조용히 친구에게 음악을 들려주며, 우리는 힘든 일들을 잊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어느 사이엔가 장난치며 정말 쓸데없다 싶을 정도로 웃고 있는 우리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 맞아. 중학교 때는 특히 음악의 영향이 컸던 것 같아. 중학교 때부터 나도 기타를 정말 죽자 사자 쳤지.”
“넌 그래도 뭔가 딱 하나에 꽂혀서 잘 했네, K."
"이 때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몸이 약해서 생각 보다는 많이 못 해서 아쉬워."
“그래도 뭔가 좋아하는 일을 정하고 했다는 사실이 부럽다. 아니야! 나도 공부도 한다고 했고, 친구들이랑 놀기도 열심히 했고!”
“그래, 너도 뭘 어떻게 해야 될지 몰랐겠지.”
해 맑은 미소로 교실에 오는 친구가 있다. 그런데 친구에게 놀랄만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아마도 그 친구는 웃고 있지만,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야, 나 담배 핀다.”
“어?”
얼굴은 놀란척하지 않았지만, 놀랐던 것이다. 그랬던 것이다.
“중학생이 그러면 안 되지.”
“그냥 한다.”
처음에는 그렇게 친구에게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이런 일은 중2 전체 반에서 몇몇 아이들에게 일어나게 되었고, 중3이 되었을 무렵 더 늘어나게 되었다. 멋있다는 호기심에 친구 따라 피는 친구들이 많았다. 하지만, 역시나 어른이 되어 그 때를 다시 보니 많은 친구들이 사랑이 부족했고, 환경이 안정되지 않았다는 사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도 당시 막 나가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러지 못했던 것은 엄마에 대한 마음이 컸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당시에 뭐도 모르지만, 나갔던 교회에서 들었던 이야기들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
“K, 중2병 주요특징이 뭔지 알고 있어?”
“뭐야?”
“하나, 대들고 욕을 한다. 둘, ‘짜증나’를 달고 산다. 셋,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 넷,날라리가 되고 싶어 한다. 다섯, 방문을 걸어 잠근다.”
“아하, 그래? 그러고 보니 나는 당시에 해당되는 것이 없네.”
“난 전부 다 해당되네.”
“이런, 중2병이었네.”
“그런데 중2병 해결책이 있어.”
“뭐야?”
“왜 해야 하는지 아주 집요하게 끊임없이 설득하는 것!”
“진짜 힘드네!”
“그러게! 진짜 중2랑 관계 맺기 힘든 일이다.
“K, 넌 어떻게 그 시기를 잘 보낸거야?”
“음.. 난 부모님과 대화를 많이 했었어. 나도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한 고민도 많았는데, 대화의 힘이 컸던 것 같아.”
“관심 받는 것이 그 때는 중요하지.”
중2때 친구들을 떠 올려보며, K와 함께 하교길을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우리 앞에 지나가는 애들 중2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친구들이랑 숨이 넘어 가도록 웃고 있다. 저렇게 소녀같은 애들인데, 그 속에 걱정은 한 트럭인지 누가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