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yJoYo Oct 24. 2023

슈만의 ⟨나의 장미⟩와  ⟨여름날 마지막 장미⟩

& ⟨회귀⟩, 리스트 ⟨사랑의 꿈⟩, ⟨내 사랑은 붉디붉은 장미와 같아⟩

§ § §


첫 음을 듣는 순간,

숨이 멎는다.


높은 레(D)에서 시작해

시들어 고개 숙이는 꽃잎처럼,

가만히 내쉬는 한숨처럼

미(E)까지 하행하는 피아노.

이윽고 셋째 마디에서

한 옥타브 위의 미로 도약하고

약박에서 비로소 홀연히,

고요하게 울려 나오는 목소리.


슈만의 ⟨나의 장미(Meine Rose)⟩.

작품번호 90으로 1850년 출판된

⟪6개의 노래와 레퀴엠⟫ 가운데

두 번째 곡이다.


R. 슈만, ⟨나의 장미⟩ | 마티아스 괴르네(바리톤), 마르쿠스 힌터호이저(피아노)


원래는 소프라노/메조소프라노가

부르게끔 출판되었지만,

나는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의

따뜻하지만 쓸쓸한,

고요한 읊조림 같은 목소리를

사랑한다.


니콜라우스 레나우가 쓴

2연으로 된 시의 내용을

옥스퍼드 송 페스티벌” 사이트의

독일어 원문과 영역을 참고해

대략의 내용만 간추리자면,


봄날 마치 보석과도 같던 장미,

그 기쁨은 이제

태양의 열기 속에 시들어

고개를 떨구고 빛깔을 잃어,

깊고 깊은, 어두운 우물에서

길어 올린 한 바가지 물을 주네.


내 마음의 장미,

사랑하는 이는

병상의 고통으로 시들어

고개를 숙인 채 창백해져,

다시 회복하기 어려움을 알지만

꽃에게 물을 준 것처럼

그대 발치에 내 영혼을 바치네.


...... 정도가 되겠지만,

독일어를 잘하지도 못하고

시로 옮길 만한 문장력도 없으니

당연히 온전한 번역은 아니다.

시 전문과 영역은

위에 언급한 사이트를 참고하시길.


1850년에 작곡된 이 가곡집에

의아하게도 ‘레퀴엠’이 들어간 것은,

슈만이 작품집을 완성할 무렵,

레나우의 사망 소식을 듣고

급히 추가한 것이라고,

또 실제로는 레나우가 위독했지만

사망한 것은 며칠 뒤였다고 전해진다.

(Liederabend.cat참고)


시는 장미의,

그리고 장미로 상징되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그리고 있고,

슈만은 그 시인의 ‘죽음’까지

다루고자 하였으니

(더구나 레나우는 정신질환으로

몇 년 뒤의 슈만처럼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참으로 외롭고 쓸쓸한,

듣다 보면 코끝이 아릿해지는,

가슴 먹먹한 노래다.




장미는 대체로 사랑과 정열,

젊음과 화려함의 상징이겠지만,

바로 그 때문에 정반대의 것들,

이를테면 죽음의 불가피함과

남겨진 자의 쓸쓸함을 의미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아일랜드 시인

토머스 무어(Thomas Moore)가 쓴 시

⟨여름날 마지막 장미

(The Last Rose of Summer)⟩에

이전부터 전해져 오던

⟨Aisling an Óigfhear(젊은이의 꿈)⟩의

선율이 붙어 만들어진 민요가

지금까지 널리 사랑받는 것도,

비슷한 까닭에서 이겠다.


⟨여름날 마지막 장미⟩ | 소프라노 조운 서덜랜드(Joan Sutherland)


어쩌면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 날 부고가 부모상이 아니라

본인상으로 전해지는 것,

그렇게 연락처의 목록이

조금씩 조금씩 줄어드는 것.


사랑하는 이들 하나둘 먼저 떠나보내고

여름의 끝무렵 마지막 남은

한 떨기 장미처럼 우두커니 홀로,

훗날 베토벤과 멘델스존, 플로토우와

같은 수많은 작곡가들이 인용할 만큼

널리 애창되었던 이 노래는,

그렇게 쓸쓸하지만 담담하게

아직은 살아있는 자의

서글픈 심정을 담아낸다.


머지않아 자신도

그 길을 따라가리라는 것을,

소중한 이들이 사라진 이곳의 황량함을

버틸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음을.

(슈만의 노래와 마찬가지로

시를 번역하는 것은 내 능력 밖이기에,

영시 전문은 링크로 대신한다.

위키피디아)




레나우와 무어에게는 장미였다면,

시인 김지하에게는 목련이었다.

김광석이 4집에서 부른 ⟨회귀⟩.

(황난주 작곡)



그야말로 절창(絶唱),

절창(絶唱)이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그러나 이제 시를 지은 이도,

노래를 부른 사람도 가고 없으니,

마치 15세기 프랑스 시인

프랑수아 비용(François Villon)이

<지나간 시절의 고귀한 여성들에

대한 발라드⟩에서 한탄했듯이,

Mais où sont les neiges d’antan!

(지난날의 눈은 다 어디로 갔는가!)


흰 눈도, 하얀 목련도 그렇게 흰 빛만,

‘짧은 눈부심’과 ‘긴 기다림’만 남기고

하얀빛만, 하늘로 오른다.

어제의, 엊그제의 눈은,

목련은 다 어디로 가는 것인가.

(비용의 시구는 훗날 관용구처럼

사용되기도 했다고 전한다.)




슈만의 ⟨나의 장미⟩가 발표된 1850년에,

리스트는 3곡으로 된 피아노 작품집

⟪사랑의 꿈⟫, S.541을 출판한다.


리스트, ⟨사랑의 꿈⟩ 3번 | 손열음 연주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알려진 3번은,

원래는 1843년에 작곡된

소프라노와 피아노를 위한 가곡

⟨O lieb, so lang du lieben kannst

(사랑하라, 사랑할 수 있는 한)⟩, S.298.

페르디난트 프라일리그라트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이다.


그렇다, 이전에 올린 글

막스 리히터: Maria, the Poet(1913)에서

러시아 시인 츠베타예바가 썼듯이

우리는 나약하고 위태로운,

늘 이별과 죽음 앞에

홀로 설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살아있는 한,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My Love is Like a Red, Red Rose⟩에서

스코틀랜드 시인 로버트 번스는,

“사랑은 붉디붉은 장미와도 같”은

것이라고 쓴다.

이 노래 역시 ⟨여름날 마지막 장미⟩처럼

이전부터 전해져 오던 민요

⟨Low Down in the Broom⟩의 곡조를

차용한 버전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My Love is Like a Red, Red Rose⟩ | 조시엔 클라크 & 벤 워커


바다가 말라붙어 사라질 때까지,

바위가 햇빛에 녹아 내릴 때까지

(Till a’the seas gang dry, my dear

And the rocks melt with’ the sun),

내 삶의 모래시계가 다하더라도

(While the sands o’ life shall run),

수만 마일이나 떨어진 먼 곳에서라도

(Tho’ it were ten thousand mile),


그렇게 살아있는 한,

사랑할 수 있는 한,

그대를 사랑하겠노라고,

그대 발치에 내 영혼을 바치노라고,

아직은 살아있는 자가 부르는,

장미의 선연한 빛과도 같은

노래들.


오, 나의 장미! 사랑하는 나의

여름날 마지막

장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