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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elyn H Jan 16. 2024

제 성장판 아직 열려 있어욧!

일을 마치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쭈욱 계속이요. 

제가 회사 생활을 하면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은 꽤 엄정한 '자기객관화' 입니다.

학창시절엔 크게 느끼지 못했던, '할 줄 아는 것 없음'을 입사 직후부터 줄곧 느껴왔으니까요.

이다지도 무능력하고 무력한 자신을 거울처럼 마주보는 것 만큼이나 괴로운 일은 또 없을 겁니다. 

할 줄 알게 된 일의 가짓수만큼, 여전히 모르고 못하는 일이 자꾸 생겼습니다.

그리고 겨우 할 줄 알게 된 일은 어쩌면 '허드레' 같은 것이었겠지요. 그 일이 갖는 중요성의 문제라기보다, 누구라도 쉽게 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의미에서요.


유독 '쌤'이 많았던 저는, 다른 대리님들 과장님들처럼 일하고 싶었습니다. 

그들만큼 아는 게 없으니, 의미 있는 일을 못하는 것이라고 자책하며 '뭔가 배워야겠구나' 자각할 즈음 

'ㅇㅇ협회 세미나 교육'이란 게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주로 과장급이나 진급을 목전에 둔 대리급 직원이 참석하는 과정이었는데, 제가 가고 싶다고 졸랐습니다. 

조금 난감해하던 윗분은 뭔가 말씀하시려다 말고, 다녀오라고 허락해주셨어요. 


2박 3일. 길다면 긴 외부 교육이었는데, 첫 시간에 바로 절감했습니다.

'헛, 오지 말아야 할 데를 왔구나...' 

기본 소양과 지식이 없으면 견디기 어려운 난이도 있는 과정이었기에, 상사분은 완곡히 말리려던 것이었을 겁니다. 그저 결과를 뻔히 아시면서도 직접 겪어보고 겸손해질 기회를 주신거라 믿습니다. 아마도요. 


한없이 길고, 원없이 생고생 하던 시간을 견디고 겨우 사무실로 복귀하니 질문들이 쏟아집니다. 

"OO씨, 3일 간 뭐 배웠어? 재밌었어? 우리 엄청 기다렸어. OO씨한테 배우려고."

"아, 그게... 그러니까... 음..." 차마 고개를 들기 힘들었어요. 배웠는데, 배운 별로 없었으니까요.  

물론 베테랑 상사분들에겐 초보적 수준의 강의 내용이었을테고, 3일이나 자리 비우고 놀다온 것 같은 저를 짓궂게 놀리시려던 것이었음을 얼른 눈치챘습니다만.


그 일로, 배움에도 단계가 있으며 서두르지 말고 그 단계를 하나씩 거쳐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손쉽게 달랑 단기 교육 한 번으로 단숨에 과장 수준의 전문 지식이 쌓일리 없다는 것을.

일의 숙련도가 욕심만으로 높일 수 있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숏컷 없는 것, 아시잖아요.

잘 해내려면 대개는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품'이 적잖게(꽤 많이) 드는 것이지요. 

 

아무리 성장판이 열려 있어도 '성장통'을 겪지 않고는
제대로 자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저는 뭐든 오히려 힘들게 배우는 쪽을 택했습니다. 할 수 있는 걸 다 하면 적어도 후회는 없으니까요.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으면 우선 기사, 책, 논문 등을 이것저것 찾아 봅니다. 그렇게 배경 지식을 쌓고 나면, 해당 전문가나 유사 경험을 가진 분 인터뷰를 하기도 하고, 각종 포럼이나 컨퍼런스도 방문하여 놓친 것은 없는지 살펴 봅니다. 

또한 미처 몰랐던 정보나 생각 못한 아이디어가 있는지, 팀원들과 자주 상의하면서 보충을 합니다. 

그리고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계속 정보를 업데이트하고, 아이디어를 보완하고, 의견을 정리합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사실 별 거 아니네요. 

아무튼 평생 일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이런 '사이클'의 끝없는 반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배우고 익힌 것을 잘 써먹고, 거기서 얻은 경험을 밑천으로 다음 일에 도전하는 것. 

이 과정을 지치지 않고 무던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일을 대하는 태도의 본질이라고 감히 헤아려 봅니다. 


그래도 늘 뭔가 부족하고 목마르다 느끼는 것은 어째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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