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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im Oct 08. 2020

경상남도 브라이튼시

Day 32

영국 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아래에.

그 해 런던에 닿기 전 브라이튼이라는 영국 남부의 해변도시에서 지냈었는데,

휴양 도시다 보니 여름에는 전 유럽에서 놀러 오는 그런 곳이다.

그리고 프라이드 퍼레이드, 다양성 문화로 영국에서는 가장 유명한 도시이기도 하다.


브라이튼이란 도시가 왜 좋았는지, 왜 사랑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먼저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빠질 수가 없다.


그곳에서 하숙을 했었는데,

칠순이 넘은 자넷이란 이름의 할머니 집에서 한동안 지냈었다.

나이가 있으시지만 여전히 경제활동을 하시면서

장애(다운증후군)가 있는 마흔이 넘은 딸을 보살피고 있고

금전적인 여유를 위해 하숙을 받으셨다고.


인연이 신기하게도

할머니께서 동양인은 평생 내가 두 번째인데

첫 번째 하숙했던 친구가 중국인, 그리고 한국인인 나였다고 한다.

중국 친구가 워낙 예의 바르고 괜찮아 다음 하숙도 아시아계로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하니

왠지 모르게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붙임성이 좋다 보니 두루 잘 지냈는데

특히 따님이 나를 많이 좋아해 줘서 식사도 매일 같이 하고

티브이도 함께 보며 두런두런 이야기도 많이 했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전형적인 영국인이었는데

요리도 무척 잘하셔서 매일 저녁 먹는 만찬이 너무 좋았다.

참 다양하게 맛있는 영국 가정식을 매일같이 차려주셨다.

그리고 돌아가신 할아버지 이야기, 영국 역사 이야기, 전쟁사, 인생 이야기 등

식사 중에 나누는 대화의 문화가 무척 좋았다.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들이었다고나 할까.




할머니의 죽기 전 마지막 소원은 집에 발코니를 만드는 것이었다.

브라이튼이 해변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해안 도시인데,

할머니 댁이 저어 어어어 어어어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어서

창을 열고 해 질 녘 밖을 내다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바다 뷰가 펼쳐지는 장관을 목격할 수 있다.

이 해 질 녘의 풍경을 바라보며 차 한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다는

'그' 꿈을 이루고 싶다고.


내가 있는 동안, 내가 드린 하숙비로 본인의 목표 금액을 모으셨고 

브라이튼 생활이 끝날 무렵 그 발코니를 완성할 수 있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그 풍경과 차 한잔, 의자에 앉아 있는 그 순간

할머니도 눈물을 흘리셨고 나도 눈물이 핑 돌았다. 

살아생전 할아버지와 이 순간을 함께 했다면 어땠을까 말씀하시면서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LP로 틀어 주셨는데

Johny Mathis의 A Certain Smile이란 곡이었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때의 그 순간이 환기된다.

그 공기, 그 풍경, 빛과 눈부심, 미소, 그윽한 감정과 편안한 마음


내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브라이튼이란 도시는

경상남도처럼 가깝게 느껴지기도

그만큼 선명한 그런 기억의 도시이다.


20대의 기억 한편에 자리하고 있는

따뜻했던 그곳,

한 여름밤의 꿈같은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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