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만에 냉탕에 들어가다

특이한 목욕탕 구조, 오후의 노을, 30보 냉탕, 계곡과 수영장

by 박냥이
좌측 상단 불폭탄X, 물폭탄O. 중앙측 설명: 누워서 쉬는 곳(베드 3개)

먼저 아이패드로 대강 그려본..(악필입니다..) 오늘 간 목욕탕의 구조이다. 아마 생긴 지 10년 정도 되었을 건데, 유치원 시절부터 장장 20여 년간 이 동네에서 살면서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집에서 제일 가까운 목욕탕 한 곳이 폐업을 하면서, 엄마랑 대타를 찾아야 했고 여러 군데 돌아다니다, 엄마가 정착하신 곳이다.(그렇지만 최근엔 나와, 차 타고 또 다른 곳에 더 자주 가시긴 했다) 까다로운 남동생이 목욕을 하러 여태껏 다니는 것을 보면, 그럭저럭 괜찮을 거라 짐작할 수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집 근처에 위치한 곳이라, 안면이 있는 사람들을 마주치는 것이 싫어서(지금 백수 처지라 괜히 엄마 친구라도 만났다간..) 엄마를 따라가지 않았던 것도 있다. 항상 주차장에 차만 들락날락하면서 엄마를 픽업해왔을 뿐이었다.

그러던 중, 오늘 오후 부모님이 시골에서 돌아오셨는데, 엄마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였다. 만약 지금이라도 엄마가 목욕탕에서 피로를 푸신다면 조금은 나아질 기대가 있었다. 나의 제안에 엄마는 처음에는 오후 4시, 목욕탕을 가긴 조금 늦은 시간이라 고민하셨지만, 찌뿌둥한 몸에 어쩔 수 없으신지, '목욕 가자'라고 하셨고 그 길로 후다닥 모녀는 목욕탕으로 향했다. 시간상, 늘 같이 다니던 (차로 10~15분 거리의) 목욕탕에 가기보다, 몇 분밖에 안 걸리는 엄마가 혼자 다니시던 목욕탕에 가는 것이 나았다. 그렇게 처음으로 입성하게 된 M목욕탕.


오후 시간대인데도 사람들이 꽤 많았지만, 꽤 널찍한 편이라 인구밀도가 높지는 않았다. 한데, 목욕탕의 구조가 꽤 특이했다(그림 참조). 아예 모르고 이용하는 것보다, 이제껏 많이 이용해 보신 엄마에게 먼저 설명을 듣고 이용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모여있는 여러 개의 탕의 특징에 대해 대략적으로 설명을 요청했다.(적혀있기도 했지만, 안경을 쓰지 않은 터라 눈이 잘 안보였다)

노란색 온탕이 가장 인기가 많다셨다(그만큼 수질이 제일 별로이다). 이곳에는 '물보라 생성기'가 있었는데, 안마용인 듯했다. 두둑한 등살을 마사지하니, 마치 헬스장이나 목욕탕 바깥에 있는 덜덜이(고무줄 덜덜거리는 기계)를 이용하는 기분이었다. 몇 시간 뒤에 사람이 적어졌을 때, 모녀지간 둘이서 두 자리를 점령하고 있었다..

열탕은, 이전에 가보았던 곳보다 온도가 조금 낮은 느낌이라, 그곳에서는 다리의 반만 담가도 땀이 줄줄 흘렀는데, 이곳에는 몸의 절반 이상을 담가도 견딜만했다. 옆의 미온탕은, 이도 저도 아닌 느낌이었지만, 만약 사람이 많아 '갈 곳이 없다면' 이용할만한 장소였다. 참, 냉탕을 제외한 각탕의 크기가 꽤 작아서 한 번에 4인 이상이 들어가면 상당히 비좁게 느껴질 것 같았다. 그나마 미냉탕은 꽤 넓은 편이었는데, 온도가 조금 차갑게 느껴져서 처음에는 들어가기 꺼렸으나, 겁쟁이처럼 조금씩 조금씩 몸을 담가서 이내 끝에서 끝으로 대충 (남에게 피해 안 갈 만큼) 헤엄치며 왔다 갔다 할 만큼(사람이 없을 때만) 미약한 냉탕의 상태를 즐겼다. 그래도 내 느낌으로는 꽤 차가웠다. 오랜만에 어린 시절에 계곡에서 놀았던 감각이 돌아오는 느낌이었달까. 햇볕이 많이 드는 얕은 계곡물의 온도라 하면 적정하겠다.


5년 전, 수영을 배운 적이 있는데 수영장의 물은 생각보다 따듯했던 기억이 있다. '진정한 냉탕'의 온도는 목욕탕에서야 체감할 수 있는 것 같다. 아니면 깊숙한 계곡이나.

냉탕에 안 들어가 본지 꽤 되었다. 아마 초등학생 때였나.. 십 년도 더 넘은 듯하다. 냉탕에 한번 빠져서 어떻게 될 뻔했던 기억도 있지만, '찬 것'에 대해 지레 겁을 먹게 된 탓도 있다. 간략하게만 적으면 자궁 상태가 안 좋아서 찬 음식을 먹으면 곧잘 후유증이 나타나서.. 지금도 따듯한 음식, 음료 위주로만 먹고 있다. 찬 음식을 먹는 것에도 이런데, 굳이 찬물에 들어갈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냉탕이랑은 멀어졌었지만, 옛날 냉탕에서 온탕으로 옮겨 다닐 적에 (아마 모세혈관의 수축과 확장 때문에) 몸에 전기가 통하는 듯 시원했던 자극은 기억에 남아있다. 약간 차가웠던 미냉탕에서 (예정에 없던) 조금의 자신감을 얻고, 훨씬 더 넓어서 걸어서 30 보정도 되는 길고 큰 냉탕에 조금씩 조금씩 몸을 담갔다.(나와는 반대로 바로 뛰어드는 아주머니들은 참 대단한 듯..)

생각보다 깊어서 손을 짚고 헤엄치긴 힘들 거 같아, 어린 시절의 스킬을 발동했다.

동생이 아이패드 쓴다고 가져가서, 대충 폰으로 그린 그림..

'바가지 두 개 겹쳐서 부표 만들기'. 그 시절보다 몇 배는 불어난 덩치에, 쳐다보시던 엄마는 큰 바가지를 써라 했지만, 컨트롤하기는 작은 것 두 개를 겹치는 것이 더 편했다. 내가 오죽 무거운지, 자꾸만 부표가 가라앉아 바가지 사이로 들어간 물을 빼내야 했다. 그래도 부표에 의지해 한층 자신감이 생긴 나는 몇 분 동안의 수영을 하고, 곧바로 몸을 데우러 온탕과 열탕을 드나들었다. 오랜만에 전기가 통하는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 그래도 옛날보단 나이가 들었는지.. 원래 한번 들어가면 두 번째 들어갈 때는 덜 차가웠던 것 같은데, 두 번째 들어갈 적이 먼젓번보다 더 차가운 것이었다.. 허접한 체력에 오랜만의 짧은 냉탕 체험은 고작 두 차례를 끝으로 마무리되었고, '이제 나도 따듯한 게 더 시원한 나이인가'라는 고뇌를 잠시 했다.

어릴 적에는 따듯한 물에 몸을 푹 담그고 오래 앉아 있는 어른들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곳에 있는 것이 갑갑해서 냉탕에서 놀기를 더 즐겼던 것 같은데.. 이제 나도 따듯한데 몸을 담그는 것이 더 좋아졌다.


목욕탕이 서향인지, 위쪽에 난 창문으로 햇빛이 쏟아지고 욕탕의 물에 햇빛이 비쳐 넘실거린다. 뜬금없는 목욕탕의 노을 체험이랄까.. 엄마는, '여기는 목욕탕 같지 않아'라고 하셨다. 무슨 말인지 물으니, '다른 목욕탕은 거의 지하에 있는데, 이곳은 지상층이라 덜 갑갑하게 느껴진다'라고 하시는 것.

뭐.. 이곳은 2층에 여탕, 3층에 남탕. 작년에 폐업한 목욕탕은 지하에 위치해있었긴 했다. 3층의 남탕에서는 아저씨들이 열심히 물장구를 치는지, '쿵 쿵'대는 소리가 종종 울려 퍼졌다. '혹시 무너지면 어쩌나'하는 걱정도 슬며시 들었다. '설마 무너지겠어'라고 생각했지만, 괜한 걱정에 기존에 가던 곳에 가야겠다 생각해보지만.. 거기도 2층이 여탕, 3층이 남탕이긴 매한가지네.. 기도하고 들어가야 하나..


붙어있는 4개의 탕을 오고 가면서, 멀리 동떨어져 있는 냉탕을 보니, 한 아주머니께서 열성적으로 냉탕의 구석에 위치한 '물폭탄 기계'를 이용 중이시다. 정식 명칭은 물폭탄은 아니었고, 그곳에 뭐라 적혀있긴 했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튼 마사지 용도의 기계이다. 나는 찬물 세례를 맞기 싫어서 건드려보지 않았다.


대부분의 목욕탕에서는, 카운터에서 열쇠를 받아서 신발장이랑 락커에 공용으로 쓰던가.. 그렇게 들어올 때 나갈 때 계속해서 열쇠를 챙겨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그저 아무 락카나 선택해서 쓰고 나갈 때까지 열쇠를 챙기지 않아도 되는 점도 나름 괜찮았다. 다만, 열쇠들이 목욕탕의 나이만큼 거의 낡아서 보통 소용돌이 모양 고무끈(?)의 형태인 열쇠고리가 늘어진 경우도 꽤 있었다.


여튼, 그렇게 모녀는 장장 3시간여의 목욕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에 어느 곳을 갈지는 아직 고민이다. 물이 별거 아닌 것 같아도 모이면 어마어마한 몇 톤급의 무게이고.. 단지 울리는 물장구 소리에, 왠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쓸데없는 걱정까지 하게 되었고.. 이렇게 된 이상 이전에 가던 곳을 갈 수도 있겠다.

나의 속사정을 잘 모르고 그냥 '목욕탕 괜찮더라'라는 말만 들었던 남동생은, '거기가 제일 낫다, 이근방에서'라고 대꾸해주긴 했지만.. 왠지 나는 이전에 갔던 곳에 다시 갈 거 같은 기분이 든다. 뭐, 두 곳 다 장단점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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