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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다래 Sep 04. 2020

집이 나갔다.

결혼 5년 차 부부의 이사

 아르바이트도 없는 날, 집에서 뒹굴뒹굴 멍하니 시간을 보내며 있었다. 밥을 먹다 책을 보다 유튜브를 보고 게임을 하는 시간. 식탁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거실 바닥이 흥건하게 젖었다. 뭐지? 싶어 달려가 바닥을 살피고 커튼을 젖혔더니, 에어컨 배수펌프가 쓰러져있다. 헐, 이게 무슨 일이야, 싶어 정신없이 걸레는 찾는데 울리는 벨소리. 이 타이밍에? 허둥지둥 전화를 받으니, 


 "** 부동산이에요~ 지금 집에 계세요? 잠시 후에 집 보러 갈게요~"


 타이밍 한번 기가 막힌다. 설거지거리는 쌓여있고, 바닥은 물바다, 흐트러진 이부자리, 늘어놓은 물건들이 눈에 보인다. 동네에 집 보러 오는 사람도 없는데, 집 내놓은 지 두 달 만에 처음 보러 오는 건데, 이 상태로 맞이할 순 없다. 머릿속이 팽팽 돌아가며 몸이 움직였다. 걸레를 다 꺼내놓고 바닥을 닦았다. 두 개로도 부족해 발수건을 꺼내고 얼굴 닦는 수건 중에서도 가장 낡은 녀석을 골라 여러 번 닦고 또 닦았다. 배수펌프를 정리하고 바닥은 강제로 닦았는데 머리카락이 여기저기. 우선 못 본 체 했다. 바닥에 널린 리모컨과 컵, 휴대폰을 쓸어 담아 식탁으로 옮기고, 식탁 의자에 늘어놓은 옷가지들은 들고 붙박이장으로. 침대에 널린 이불을 착착 개고 베개를 세워 정돈했다. 그리고 설거지. 다행히 먹은 게 별로 없어 설거지거린 많지 않았지만 어젯밤 설거지하고 건조한 그릇들이 가득이다. 하나씩 서랍과 수납장으로 옮겨 자리를 비운 뒤, 그릇 몇 개를 후다닥 씻는다. 


 옆 동네 새로 생기는 아파트로 이사 가는 사람들이 집을 빼는 중이라 집 보러 오는 사람이 극히 드문 이 시기에, 우리 집을 보러 왔다면, 한눈에 반하게 하는 수밖에 없다. 토요일에 집을 보러 오겠다 말한 분이 계시긴 하지만 계약까지 진행될지는 모르는 일. 집을 보러 온다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서둘러 집을 정리하고 잠깐 앉아 한숨 돌리고 있으려니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빠르게 눈으로 집 안을 한번 둘러보고 마스크를 쓰고 문을 열였다. 들어오세요- 세상 친절한 목소리. 혹시 집에 아기 있어요? 하고 조심스레 부동산 사장님이 물으신다. 아기 없어요- 편하게 들어오셔도 돼요, 말씀드리니 기다렸다는 듯 우르르 들어오신다. 아저씨 한분, 모녀로 보이는 아주머니와 아가씨, 부동산 사장님까지. 사장님 빼고 세분이 가족인가? 싶었는데, 아저씨가 계속해서 설레발이다. 우와, 볕 잘 드네, 화장실 엄청 깨끗하네, 베란다 봤어요? 베란다 엄청 넓네, 역시 ** 부동산 사장님이 좋은 물건은 다 가지고 계신다니까~ 그리곤 날 보고 사진 좀 찍을게요, 하시곤 여기저기 엄청나게 사진을 찍으신다. 네 그러세요 라고 하긴 했는데 가만 보니 기분이 이상하다. 내가 올린 사진들은 직방에 다 올라가 있고, 집을 계약하지도 않은 세입자가 우리 집 사진을 찍어갈 이유라곤 없을 텐데? 하고 신경이 쓰여 부동산 사장님을 슬쩍 바라보니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드시는 부동산 사장님. 아, 저쪽도 부동산이구나? 묘하게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우리 집 사진을 찍어서 여기저기 올리는 건 아니겠지?


 모녀 두 분은 한눈에 봐도 집을 마음에 들어하신다. 우와 좋다. 붙박이장은 저희가 가져갈 거라 저거 치우면 방 더 커져요~ 아 그래요~ 방 크다~ 욕실 저희가 들어오면서 다 고치고 들어왔어요. 욕조도 넣었어요. 우와, 너무 깨끗하다, 햇볕도 잘 들고 저희가 살면서 엄청 깔끔하게 관리했어요~ 그런 거 같아요~ 서로 듣기 좋은 덕담들로 주거니 받거니. 서로 기분 좋게 이야기 나누고 맘에 든다고 해주셔서 인사하고 배웅해드렸다. 


 집을 보러 온 사람들이 돌아가고 혼자 남겨져 서둘러 정리한 집을 다시 둘러봤다. 집이 계약된 것도 아닌데 갑자기 확 서운한 기분이 몰려온다. 진짜, 이 집을 떠나는구나, 평생 살 줄 알았는데, 누군가 이 집을 보러 오고, 나도 정말 이사를 가는구나 하는 현타. 식탁에 털썩 앉아 멍하니 집 안을 둘러봤다. 이 거실도 이 햇볕도 이 부엌도 다음 달이면 다시 볼 수 없구나. 괜히 애틋한 느낌.


 한 시간쯤 있었을까.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계약하고 싶다고. 네- 날짜만 맞추면 괜찮아요-. 우리는 9월에 이사를 가야 하고 그쪽은 10월에 이사를 온다고 하신다. 우여곡절 끝에 서로 반씩 양보하여 날짜를 맞추었다. 그렇게 가슴 졸이며 언제 나갈까 부동산 앱만 들여다봤었는데, 불과 한두 시간 만에 집이 나갔다. 정말 예측할 수 없는 나날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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