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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관절 골절은 응급이 아니랍니다

수술도 못한 채 또 한 번의 응급실 그리고 연휴…

어머니가 서귀포서 넘어져 고관절 골절상을 입으신 지 4일이 지나서야 김포 공항에 착륙했다. 김포공항서 기다리던 사설 응급차를 타고 어머니와 나는 수술을 하기로 한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어머니의 퇴행성 무릎 관절염을 치료해 주시던 교수님께서 인공고관절 치환술의 명의 중 한 분이셨고 어머니의 수술을 담당해 주시기로 하셨다.




우리가 서울에 도착한 것은 크리스마스 연휴 전 토요일이었다. 서울도 눈이 많이 내렸는지 아직도 눈이 쌓여있었다. 서귀포를 떠나 공항에서 긴 대기와 비행 끝에 서울에 도착하니 어머니는 기진맥진하셨다. 구급차는 사이렌을 켜고 질주를 하기 시작했다. 눈 때문인지, 길이 파였는지, 앰뷸런스는 무척 덜컹댔고, 나는 어머니의 신음 소리를 처음으로 들었다. 나중에 어머니는 앰뷸런스가 덜컹거릴 때마다 골절 부위가 들것에 부딪쳐 그 통증이 어마어마했다고 끔찍해하셨다. 어머니가 아무리 큰소리로 비명을 지르셔도 앰뷸런스는 씉데없이 빠른 속도로, 강북에 있는 어머니가 수술할 병원까지 40분 만에 데려다주었다.




토요일 저녁이기에 어머니는 또다시 응급실을 통해 입원 수속을 하셔야 했다. 서귀포 의료원에서 CT 니, 엑스레이니 다 찍어 자료를 가지고 왔지만, 그래도 어머니는 이리저리 불려 다니시며 피검사며 엑스레이며 또다시 이런저런 검사들을 받으셔야 했다. 그래도 신환이 아닌 다른 병원에서 전원이 된 환자기에 수속이 조금 간단했다.


응급실 도착 2시간 후, 어머니는 정형외과 병동에 입원을 하셨다. 고관절 골절은 응급수술을 요하는 상황이 아니기에, 어머니는 휴일이 끝나고 담당교수님의 수술일정에 맞추어 수술을 받으셔야 했다. 화장실도 못 가시고 소변줄을 꽂고 계시고, 옆으로 돌아 눕지도 못하시는 어머니가 응급이 아니라니… 참 기가 막혔다. 사고 이후 평정심을 잃지 않으시던 어머니도 통증이 심하신지 조금씩 짜증을 내기 시작하셨다. 어머니가 입원을 하신 병원의 정형외과 병동은 간호간병통합병동이었다. 보호자가 상주할 수 없기에 필요하신 물품들을 대강 사다 드리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편찮으신 어머니를 두고 병원을 떠나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응급은 아니라도 고관절 골절은 정형외과에서 위중한 편에 속하기에, 어머니는 아주 센 진통제를 처방받으시고 의료진의 집중 케어를 받으셨다. 정작 집으로 돌아온 나는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다음날 아침 병원으로 달려갔는데, 어머니의 컨디션은 너무도 좋으셨다. 고관절 환자들을 많이 대해 온 전문 간병인들과 간호원들이 어머니가 가장 편안한 자세로 주무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시간 맞추어 식사와 약을 챙겨드리니 어머니는 무척 편안해하셨다. 그래도 식구들은 불안해하며 우리 4남매와 아버지가 돌아가며 어머니를 뵈러 갔지만, 보호자가 할 수 있는 그 이상의 케어를 받고 계셨다.


일요일이 지나고 월요일은 크리스마스였다. 고맙게도 어머님의 집도의 교수님은 휴일 오후, 회진을 오셔서 수술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응급은 아니지만, 어머니가 고령이시고 사고가 난 지 시간이 좀 지났기에, 다음날 잡힌 수술들 사이에 끼워서 수술해 주시겠다고 하셨다. 우리 식구들은 너무도 심각하고 걱정을 하는데, 집도의 교수님은 걱정 마시라고. 수술 다음날이면 화장실 걸어서 가실 거라는 당시로서는 상상도 못 할 멀씀을 남기시고는 돌아가셨다. 교수님을 뵙고 나니 방향을 모르는 깜깜한 터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한줄기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2023년의 크리스마스는 저물어가고 있고 어머니의 고관절은 드디어 수술대에 올라갈 희망이 보였다. 

과연, 어머니는 다시 걸으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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