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싶지 않지만 알아버린 비행 상식
비행기의 스트레쳐 서비스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나는 외국 생활을 오래 하며 한 2번 정도 서울로 들어오는 국제선에서 커튼이 쳐져 있는 환자석을 본 것 같다. 보통 이코노미 좌석의 맨 앞쪽에 자리 잡은 커튼 속 환자들은 고향에 돌아가 임종을 하고 싶은 말기암 환자나 고령의 어르신들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집 식구가, 그것도 무척이나 건강하신 어머니가 그 커튼 속 환자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해봤다. 어머니의 고관절이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부러질 때까지는….
폭설로 제주 공항까지 사설 앰뷸런스로 거의 도착할 때쯤 비행기 결항 소식을 듣고 다시 서귀포로 돌아온 후, 항공사에서는 바로 그다음 날 비행기를 예약해 주었다. 전날 비행기가 거의 다 캔슬 돼 좌석이 모자랄 텐데도 신속하게 다음 비행기 편을 섭외해 준 항공사가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또다시 엠블런스를 타고 공항으로 갔다. 이번에는 비행기가 정시 운항된다며 항공사에서 전화와 문자를 주었다. 공항에 도착하니, 미리 준비하고 기다리던 항공사 직원이 앰뷸런스의 어머니를 확인하고 나를 데리고 들어가 수속을 했다. 신분증을 확인하고 좌석권을 건네준 항공사 직원은 니와 함께 앰뷸런스에 탑승, 또 다른 곳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스트레쳐 서비스 환자였다.
스트레쳐 서비스란?
항공사에서는 여행 중 불의의 사고나 건강의 이상이 온 환자들을 위해 침상채로 환자를 이동하는 스트레쳐 서비스를 운영한다. 보통 이코노미 좌석 6자리를 침상이 놓일 수 있도록 개조하는 것인데, 알루미늄으로 된 스트레쳐라고 하는 침상은 개당 천만 원이 넘는다고 한다. 하지만, 타지에서 건강에 이상이 생겨 집으로 돌아가는 환자나 혹시라도 비행 중 생길 응급환자에 대비해 이 서비스를 운영한다 한다. 제주는 여행객이나 제주에서 치료가 불가능한 중환자들이 서울에 가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한항공의 경우, 이코노미 6석을 사야 하는 스트레처 서비스를 50% 할인해 주고 보호자를 무료로 동행하게 해 준다. 결국, 이코노미 좌석을 정상가로 3석을 구매해 2명이 탑승하는 것이니, 제주의 여행객과 도민을 배려한 아주 고마운 서비스이다.
나는 출국장에서 수속을 하고 탑승구로 향할 줄 알았기에 어디로 가냐고 물었다. 항공사 직원은 엠블런스가 활주로까지 진입해야 하기에 함께 간다고 답해주었다. 활주로? 비행기가 오르고 내리는 활주로? 그렇다. 어머니는 전혀 몸을 일으키실 수 없기에 침상 채로 비행기에 탑승해야 했다. 어머니가 침상 채로 탑승하기 위해 엠블런스가 활주로까지 진입, 비행기 리프트를 이용해 기내로 들어가야 했다. 활주로라는 것이 아무나 들어가고 나가는 곳이 아니기에, 엠블런스 기사, 운송요원의 신분증, 앰뷸런스의 등록증, 그리고 동승자의 신분증까지 모두 필요한 것이었다. 활주로에 들어가기 전, 탑승구에 들어갈 때와 같이 응급요원들과 나는 캐리온 짐 검사와 보안검색대를 통과해야 했고, 어머니도 누우신 채로 공항 보안 요원이 침대까지 가서 금속탐지기로 보안 검색을 하고 신분증을 체크했다.
드디어 제주 공항의 활주로로 진입했다.
여기저기 비행기들이 서 있고, 뜨는 비행기, 내리는 비행기, 나는 어머니의 상황도 잊은 채 넋을 놓고 거대한 비행기의 반짝이는 불빛을 보며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어머니도 밖의 일이 궁금하신 지 자꾸 몸을 일으키려 하셨지만, 구급요원이 위험하다며 제지했다. 우리는 비행기에 승객들이 탑승하기 전, 뒷문으로 계단 대신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 기내로 들어갔다. 보통 이코노미석 앞쪽이나 뒤쪽에 침상을 마련해 주는데, 전날 비행 편이 거의 다 결항되어 그런지 어머니는 이코노미석의 중간 쪽에 마련된 침상으로 안내 됐다. 침상은 생각보다 좁았고 또 높았다. 어머니가 누우시니 위의 짐칸과 너무 가까워 마치 MRI 찍으러 들어간 듯 보였다. 게다가, 어머니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커튼을 쳐야 했는데, 답답하고 힘드실 텐데도 어머니는 괜찮다며 그냥 눈을 감고 참고 계셨다. 항공사 직원들은 무척 친절했고, 어머니가 골절 부위와 침상이 닿아 힘들어하시니까 기내 담요를 가져다 아낌없이 받쳐주고 또 덮어주고 하며 챙겨주었다. 또, 이륙과 착류시를 제외하고는 내가 어머니 옆에 서서 손을 잡고 있게 해 주어서 어머니가 편안히 비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50여분 정도의 비행 후, 김포 공항에 도착했다. 그날따라 김포의 불빛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집에 오기가 이리 힘들 줄이야... 비행이 끝났어도 우리는 승객들이 모두 비행기에서 내린 후, 구급차에서 구조요원들이 올라와서야 내릴 수 있었다. 또다시 리프트를 타고 내려가 대기하던 서울의 사설 구급차에 올랐다. 서울에 왔지만, 어머니는 집 대신 수술을 할 병원의 응급실로 가셔야 했다. 그래도 이제는 서울이다 하는 안도감과 집에 못 간다는 서운함을 안고 어머니와 나는 또 다른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