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과 공포의 진단
겨울 제주, 서귀포에서 아버지의 조그마한 귤밭에서 귤을 포장하다 넘어지신 어머니는 119를 타고 서귀포 의료원으로 이송되셨습니다.
응급실은 그다지 붐비지 않았고 어머니는 도착하자마자 엑스레이를 찍으실 수 있었습니다. 도착한 지 채 10분도 되지 않아 담당 선생님은 보호자로 동행한 저를 호출했고 어머니의 엑스레이 사진을 보여주며 고관절이 부러졌다 말했다. 어머니는 귤 창고에서 살짝 오른쪽 엉덩방아를 치셨다고 말씀하셨는데, 82세인 어머니의 골반뼈는 마늘을 으깨놓은 것 같이 으스러져 붙어 있었다. 도대체 어찌해야 하는 건지… 일단 엑스레이 사진을 핸드폰으로 찍어 내과의사인 사촌오빠와 평소 친분이 있는 정형외과 교수님께 보냈다.
이 모든 일을 치르며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제 남편이 심장암 판정을 받았을 때도 침착하게 치료해 보자고 했던 내과의사인 사촌오빠가 엑스레이를 보고 한 첫마디가
"이거 좀 골치 아픈걸… 이모 연세도 있고… "
하시는데 정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오빠가 계신 병원에 고관절 담당 교수님이 마침 자리를 비우셔서 친분이 있는 정형외과 교수님이 계신 병원에서 수술하기로 했다. 그 모든 일을 결정할 때까지 나는 어머니께 고관절 골절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고 뼈에 조금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CT를 찍어봐야 정확한 걸 알 수 있다고 둘러댔다.
정확히 이번 사고 6주 전, 어머니는 지하실에 선물 받은 고구마 박스를 옮기시다가 낙상을 하셨고, 다행히 목뼈와 두개골에 살짝 금이 가는 정도의 경미한 부상으로 저희 식구 모두가 가슴을 쓸어내렸었는데… 그때 어머니가 하신 말씀들이 고관절을 다치지 않아 얼마나 다행이냐며 고관절을 다친 당신 친구분은 걷지를 못하신다, 친구 남편은 고관절이 부러져 세상을 떠났다는 등의 말씀을 하셨는데 어머니의 고관절이 으스러졌다는 이야기를 저는 차마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정신이 말짱하신 어머니에게
응급실 담당의는 아주 세세하게 어머니의 상태를 알려 주었고 "고관절 골졸상"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어머니의 눈에서 절망을 보았다. 82세인 어머니에게 고관절 골절은 사형선고였나 보다. 늘 기도와 찬송을 하시며 긍정적으로 삶을 사는 어머니셨지만 그 순간만큼은 죽음의 공포가 스쳐 지나갔다. 그런 어머니를 생전 처음으로 마주쳤기에 저도 무척 당황했지만 대수롭지 않은 척, 수술만 하면 된다고 둘러댔다. 입원 수속을 하고 어머니를 돌보는데 잠도 잘 못 주무시고 너무 아파하셔서 밤을 꼴딱 새웠다. 중간중간 화장실에 가는 척, 간호원을 부르러 가는 척하며 화장실에 가서 나도 너무 기가 막혀 엉엉 울다 들어가기를 몇 번을 했다….
인터넷 검색을 해도, 이런저런 카페를 기웃거려 봐도 70세 이상 고관절 골절 환자의 30%가 1년 내 사망을 한다는 둥, 골절 전과 골절 후의 삶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둥 절망적인 이야기뿐이었다.. 하필이면 왜 우리 엄마한테 이런 일이 생겼는지 너무 기가 막히지만 시간을 사고 이전으로 되돌릴 수는 없었다.
고관절골절을 당하신 어머니에게는 골절로 인한 통증보다 앞으로의 삶에 대한 걱정이 먼저이신 듯했다. 연세 드신 분들에게 고관절 골절은 무덤으로 가는 KTX에 올라탄 것 같은 공포감으로 시작도 하기 전부터 멘털을 흔들어 놓는 듯했다 어머니는 당신이 떠나시면 혼자 남게 될 아버지 걱정, 요양원에 계신 이모 걱정, 그리고 남편을 잃고 홀로 친정에서 더부살이하는 내 걱정 때문이신지... 밤새 기도를 하시며 눈물을 보이셨다. 어머니의 눈물은 내 가슴을 찢어버렸습니다. 내가 어머니의 눈물을 처음 본 것은 6년 전, 남편의 보호자로 나와 함께 남편의 심장암 진단을 들으시며 앞으로 평균 2 개월, 빠르면 한 달, 길어야 6개월 시한부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이다. 외할머니 장례식장에서도 눈물을 닦기만 하시지 우는 모습은 보지 못했었는데. 그날, 어머니는 "불쌍해서 어떻게" 하시며, 밖으로 나가 큰소리로 울고 들어오셨었다. 암에 걸린 남편이 불쌍하다는 건지, 혼자 남을 내가 불쌍하다는 건지, 어머니는 그날 종일 눈물을 흘리셨었다. 그런 어머니가, 또 울고 계셨다. 어머니의 눈물을 또다시 마주하며 나는 왜 내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일이 자꾸 생기는지 어머니가 기도하고 있는 그 신을 원망하며 밤을 꼴딱 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