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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는 부르지 말아라

부모님들의 마지막 자존심? 왜 부르지 말라고요?

12월, 제주의 귤창고에서 귤 선별 작업을 하던 어머니가 쓰러져계셨다. 


귤청고에 대책 없이 미끄러져 앉아계신 어머니는 괜찮다고, 조금 쉬면 될 거라 하시며 바닥이 너무 차니 자신을 의자에 좀 앉혀 달라 하셨다. 아버지와 내가 어머니의 겨드랑이를 잡고 의자에 올리려 하는데 어머니는 오른쪽 다리에 전혀 힘을 줄 수 없다며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셨다. 


겨우 의자에 앉고 나서, 어머니는 살살 자신의 다리를 움직여 보기 시작했다. 왼쪽 다리는 말짱한데 오른쪽 다리는 움직이기는커녕 살짝 스치기만 해도 비명을 지르셨다. 




"어머니, 아무래도 119 룰 불러야 할 것 같아요"

어렵게 말을 꺼내자, 

"아이고, 뭐 이 정도로 119를 부르니, 좀 쉬고 병원이나 가보면 될 거야"

80세 이상의 고령에 골절상을 당하시고도 어머니는 119는 자신보다 더 중한 환자가 이용하는 것이라 생각하셨는지 극구 거부하셨다. 함께 계시던 아버지는 어머니의 다리를 연신 주무르시며 아무 말씀도 못하고 계셨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다쳤다는 충격에 잠시 얼이 빠지신 것 같았다,. 나 역시 뇌에 일시정지 버튼이 눌러진 듯 생각이 멈추어 버렸다. 평소 꽤 순발력 있는 나이지만, 집도 아닌 저 멀리 제주에서 벌어진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머릿속이 백지장 같이 변해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그 해 3월 결혼을  한 딸 내외가 서귀포로 발령을 받아 근처에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얼른 딸에게 SOS를 쳤다. 10분 거리에 사는 딸은 놀라서 5분 만에 달려왔다. 넋이 나간 나와 할아버지를 보고 대신 일을 해결하기로 결정한 딸은 119를 부르지 말라는 할머니의 말을 완전히 무시한 채, 당장 119에 전화를 걸어 상태를 설명했다. 구급차는 10분도 안 되어 도착했고 어머니는 통증이 심하신지 손녀딸이 119를 부르는 소리를 들으시면서도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앉아 계셨다. 


119 구급대가 도착하고 구급대원들은 어머니의 상태를 점검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어머니는 오른쪽 골반 밑으로 전혀 힘을 주지 못하셨다. 몇 가지 간단한 테스트를 통해 어머니의 골절을 확인한 구급대원들은 어머니를 대한민국 최 남단 의료기관, 서귀포 의료원으로 이송하겠다고 선언했다. 119는 절대 안 타신다던 어머니도 통증을 견디실 수 없으셨던지 눈을 꼭 감고 아무 말도 하시지 않으셨다. 오른쪽 발에 전혀 힘을 못주시는 어머니는 들것에 실려 앰뷸런스에 태워져 서울의 집과는 완전 반대인 서귀포 의료원 응급실로 이송이 되었다. 




119 앰뷸런스는 골절성울 입으신 어머니와 보호자로 탑승한 나를 서귀포 의료원 응급실로 데려다주었고, 어머니는 응급실 침대로 옮겨져 각종 검사가 시작됐다. '악' 소리도 내지 않으시고 그저 살짝 미끄러지신 당신의 상태가 심각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통증때문인지 눈을 꼭 감으며 이송되는 어머니의 모습이 아기같았다.



내가 유학을 하던 1990년대 초반, 미국에서는 할머니들이 목걸이에 벨을 누를 수 있는 기계가 유행했다. 혹시 넘어지기라도 하면 구급대원과 곧바로 연결되는 비상벨이었다. 선전을 할 때 할머니들께서 "넘어졌는데 일어날 수가 없어요"라고 이야기하던 것이 기억난다. 이제는 세상이 좋아져서, 우리는 모두 핸드폰을 들고 있고 비상벨을 누르면 119와 연결된다. 문제는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자신이 119를 부를 만큼 다급한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머니도 전화를 들고 계셨지만 119는커녕 옆에 있는 우리에게도 전화할 생각을 못하셨고 그저 시간이 지나가면 나아지겠거니 하고 생각하셨다. 어머니의 낙상은 시간을 다투는 일은 아니었고 또 우리가 근처에 있었기에 금방 수습될 수 있었지만, 만약 저렇게 반나절, 혹은 하루를 혼자 계셨어야 한다면 큰일 날 뻔했다. 평생을 세금을 내며 살아오신 부모님들 세대에게 응급의료는 당연한 권리이자 혜택이다. 조금이라도 아프면 119를 부를 수 있게 인식을 바꾸어 드리는 것도 필요하다.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내가 밖에 있을 때 가끔 어디가 아프다, 밖에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다 하고 연락이 종종 오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화를 낸다. 

편찮으시면 119를, 무서우시면 112를 부르세요!
큰딸은 해결사가 아니라 바이올리니스트라고요!
세금은 제가 아니라 나라에 내셨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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