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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는 섬이다

골절도 모자라 눈까지...

어머니가 2023년 연말, 제주의 남단 서귀포에서 낙상을 하셔서 고관절골절상을 입으셨다. 응급실에서 처음으로 나에게 고관절 골절 사실을 알려준 응급의의 첫 번째 질문은 “수술을 어디서?”였다. 제주라는 지역의 특성상, 여행 와서 골절이 되시는 분들이 많다며 연고지에 가서 수술을 받을 것인지, 서귀포 의료원에서 수술을 진행할 것인지에 대해 결정하라 했다. 구급차는 보호자 1인만 탑승할 수 있기에, 보호자로 응급실까지 어머니를 모시고 간 나는  모든 결정을 혼자 내려야 했다. 일단, 서울집과 먼 서귀포에서 수술을 받고 재활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서울에서 수술을 하기로 하고 고관절이 부러져 꼼짝도 못 하시는 어머니를 모시고 서울에 올라가는 길을 찾아야 했다.



어머니를 제주에서 서울로 이송하는 절차는 생각보다 복잡했다. 고관절은 우리 몸이 일어나 앉을 수 있는 회전을 담당하는 관절이라 고관절이 으스러져버린 어머니는 휠체어가 아닌 침상채로 비행기에 타셔야 했다. 일단, 어머니의 이송을 위한 서류 작업이 끝나기까지 어머니는 서귀포 의료원에 입원을 하셨다. 뼈가 부러져 움직이지도 못하시지만, 고관절 골절은 응급상황이 아니라 닥터 헬기가 뜬다던지 지역 병원에서 응급수술을 진행하지 않기에, 어머니는 진통제 처방을 받고 안정을 취하기 위해 일단 입원을 하셔서 서울로의 이송을 기다리셔야 했다.




서귀포 의료원에서는 일단 항공사에 전화를 걸어 이송 방법을 의논해 보라고 했다. 서비스 신청을  받는 부서의 전화 응대 시간이 8:30-17:30 까지라 오후에 사고가 난 경우 아무것도 물어볼 수 없이 하루를 보내야 했다. 하룻밤을 아무 대책도 없이 지내 보내고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수속을 시작했지만, 수속은 무척 복잡해 보였다. 일단은 항공사에 의사 소견서와 항공이송 요청서를 보낸 후, 메디컬 팀에서 승인이 나면, 제주와 김포 공항 담당부서에 연락을 해서 승인을 받은 후,  운송이 가능한 비행 편(운송이 가능한 비행기종이 따로 있다고 한다)을 섭외하고 각각 서울과 제주에서 어머니의 이송을 담당할 사설 엠블런스 업체와 연락, 차량 번호와 등록증, 그리고 운송 기사와 응급요원의 신분증까지 전부 제출이 된 후에야 비행이 결정된다 했다. 이 모든 과정이 너무 복잡하게 느껴져 대행업체를 찾았더니 350-400 만원 정도 들 거라고 이야기를 했다. 처음에는 얼마가 들던지 빨리 이송을 하려는 욕심에 대행업체에 맡기려고 했지만, 마침 제주에 공보의로 내려와 있는 사위가 이리저리 수소문해 모든 예약과 앰뷸런스 섭외를 해 주었다. 복잡해 보였지만, 사실 의사 소견서를 보내고 사설 앰뷸런스를 섭외하니 반나절 정도에 모든 수속이 끝났다. 수요일 오후에 골절상을 당하신 어머니는 금요일 오전 비행기로 서울로 이송하기로 결정돼 서귀포 의료원에서 통증 조절만 하며 서울로 이송 대기를 하고 계셨다.





어머니와 함께 서울로 가기로 한 날, 제주에는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다. 전날, 서귀포 의료원 창밖으로 눈이 펑펑 내리는 것을 보며 제주에도 이렇게 눈이 많이 오네 하고 눈이 쌓인 귤나무들이 신기해 사진도 찍고 하며 여유를 부렸다. 제주 공항으로 떠나기 전, 항공사에 전화를 주었다. 제주에 눈이 내려 비행기가 좀 지연될 것 같기는 하지만 김포에서 우리를 태울 비행기가 떠났으니 여유 있게 공항으로 나오시면 된다 했다. 그래서 진짜로 여유 있게 어머니를 모시고 앰뷸런스로 제주공항으로 떠났다.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것은 서귀포에서 1시간여를 걸려 제주로 가는 길에서였다. 비교적 따뜻한 서귀포를 출발할 때는 길에 눈이 녹아 있고, 다니는 차들도 꽤 많이 보였는데, 제주로 갈수록 길에 눈이 쌓여 있고 다니는 차들도 별로 없었다. 아직도 눈은 펑펑 내리고 있는데 어디를 봐도 제설차 한 대 안 보이고, 가끔씩 보이는 차들은 기어 다니고 있었다. 이 정도 눈에 설마 했던 일이 실지로 일어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공항에 거의 다 도착해서야 항공사에서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가 타실 비행기가 제주에 착륙하지 못하고 다시 김포로 회항했고, 어머니의 비행기 편은 결항됐다고 미안해했다. 또눈앞이 깜깜해졌다.  다시 서귀포로 돌아가야 할지, 제주에 있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제주에서 수술도 응급조치도 필요 없이 그저 잠시 어머니를 어머니를 받아줄 병원은 없었다. 구급차 구조사님들께서 이리저리 연락을 돌리셨지만, 다시 서귀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 같았다. 그나마 아침 비행기라 일찍 출발하느라 가퇴원(정식 퇴원이 아닌 임시로 퇴원 수속을 밟는 것)을 한 상태라 서귀포 의료원에서 다시 받아주기로 한 것이 한줄기 빛만 같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엠블런스 타는 것을 힘들어하셨고, 그런 어머니를 모시고 다시 서귀포까지 가자니 기가 막혔다.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어머니와 나는 3시간여 만에 다시 서귀포 의료원으로 돌아갔다. 병원에 다시 들어가서야 그날의 눈이 제주 최고의 폭설이었고 제주 공항은 제설작업을 할 수 없어 종일 활주로가 전면 폐쇄 되었고, 12시간 동안 아무도 오도 가도 못하고 꼼짝없이 잡혀있었다는 사실을.  그 해 내내 귤농사와 딸아이를 보러 버스 잡아타듯이 비행기를 타고 제주를 들락날락하던 우리 식구들은 그날, 제주가 섬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바다를 건너야 하지만 않는다면 어떻게든 어머니를 서울로 모시고 가야하지만, 폭설과 풍랑으로 바닷길마저 막혀버린 제주에서 우리 식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기다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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