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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세 어머니가 주저앉으셨다.

고관절 골절을 알리는 서막


우리 어머니는 81세로 보이시지 않으실 만큼 정정하시다. 남편을 천국 보내고 혼자된 50대 중반의 큰 딸인 나를 데리고 사시면서도 살림을 꼭 잡고 놓지 않으시는 강단 있어 바지런하신 분이시다.. 


우리 식구는 아직도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이사 온 오래된 단독주택에서 살고 있어, 일이 무척 많다. 여든 넘은 노인네가 어떻게 그 많은 일을 해 내시는지… 젊은 내가 골골거리지 어머니는 언제나 건강하고 튼튼하셨다.



어머니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것은 고관절 골절 약 6주 전이었다. 오래된 주택인 우리 집에는 커다란 지하실이 있고, 딤채며 냉동고 또 쓰지 않는 물건들이 보관되어 있다. 그날, 어머니는 선물로 들어온 고구마 박스를 지하실로 내리시다가 다리를 헛디뎌서 14 계단을 구르셨다. 어머니 껌딱지인 아버지께서 어머니가 10분 이상 보이지 않자 어머니를 지하실에서 발견하셨고 곧장 119로 응급실로 이송되셨다. 불행 었는지, 다행이었는지 어머니는 이 사고로 목뼈와 두개골에 살짝 금이 가고 뇌진탕이 있으셨긴 하지만 그래도 경상이기에 입원도, 수술도 하지 않고 목에 엄청 불편하게 생긴 깁스만 하고 집에 오셨다. 생전 처음 크게 다쳐보신 어머니는 목의 깁스를 무척 불편해하셨지만, 사고 1주일 후부터는 살림에는 영 소질이 없는 딸이 맘에 안 들어 스스로 설거지며 청소를 하실 만큼 회복이 됐었다. 4주 후 깁스를 푸신 어머니는 아기같이 신나 하셨고 이틀 후 제주도행 비행기를 타셨다. 


우리 아버지는 사업을 하셨지만 언제나 농사에 대한 로망이 있으셨던 분이다. 그 해, 아버지와 우리 남매들은 제주도의 작은 귤 밭을 서울에서 오가며 직접 농사짓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낙상을 하신 시점은 11월 중순, 귤이 막 익어가던 시점이었다. 12월 초, 귤을 딸 때가 됐지만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아무도 귤을 따라갈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우리 귤밭 앞집 사시는 이웃께서 우리 밭 귤을 따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무도 수확하지 않으니 그냥 몰래 훔쳐간 모양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신 아버지는 불안해하시다가 어머니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제주로 달려가셨고, 깁스를 하고 아버지를 따라가신다는 어머니는 우리가 겨우 말려 깁스를 푸시자마자 한달음에 제주로 가셨다. 물론 “나는 일은 못한다”라고 못을 박기는 하셨지만.




어머니가 제주에 가시고 3일 뒤, 나도 제주에 갈 수밖에 없었다. 가보니, 일은 많고, 80대의 부모님은 당신들이 충분히 하실 수 있다며 사람을 쓰지 않고 직접 일을 하고 계셨다. 사실, 이미 따서 쌓아 놓은 귤을 상자에 담아 택배로 보내기만 하는 일이기에 그리 힘든 일은 아니었다. 문제의 날에는 날이 그다지 춥지도 않았고, 귤 창고가 있어 창고 안에서 작업을 했기에 아버지와 제가 룰루랄라 작업을 하고 있었고 어머니는 귤을 선별하거나 박스를 치우는 정도로 일을 돕고 계셨다. 한참을 작업하다 보니 어머니가 보이지 않으셔서 밭에 나가셨나 보다 하고 아버지랑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어머니가 “나 여기 있어. 살짝 미끄러졌는데 일어날 수가 없으니까 좀 쉬었다가 일어닐께” 하시는 거다. 놀라 뛰어가 보니 어머니는 현무암 위에 시멘트 작업을 한 딱딱한 창고 바닥에 주저앉아 계셨고 일으키려 하자 한쪽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며 잠시 쉬면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의자에 좀 앉혀 달라고 하셨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들어 올리는데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시는 어머니를 보며 나는 기도했었다.. 





제발 이번에도 큰일이 아니길...

그저 살짝 미끄러진 것이길...

그 날 처럼 나의 기도가 간절했더ㄴ 적은 없던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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