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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Jan 05. 2020

태권도는 애들이나 하는 거 아니야?



네, 아닌데요?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한 뒤에 수차례 들었던 질문이다. "어른도 태권도를 하나? 태권도는 애들이나 하는 거 아니야?"하고 말이다. 지금이야 아니라고 힘주어 말할 수 있지만, 처음 태권도를 시작할 땐 내 안에도 그런 생각이 없지 않았다.


'태권도'라는 단어를 들으면 경희대나 용인대 마크가 그려진 노란 버스에서 데구르르 굴러내리는 도복 입은 작은 아이들이 제일 먼저 떠오르고, 그다음엔 어린 시절 온 가족이 오빠의 승단 심사를 응원하러 국기원에 갔던 추억이 되살아난다. 하다 못해 집 앞 공터에서 맨날 잠자리 날개를 뜯던 동네 악동이  땀에 절은 태권도복을 입고 다녔던 기억까지... 누구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태권도의 작은 조각 하나 정도는 찾아낼 수 있을 거다.


내가 어릴 땐 (우리 오빠를 포함해, 보통 남자아이들이) 대 여섯 살부터 동네 형들을 따라 태권도장에 가거나 아예 유치원 대신 태권도장을 다니는 일이 많았다. 그게 굉장히 자연스러워서 아이가 어느 정도 크면 엄마들은 두 번 고민 안 하고 태권도장에 보냈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태권도는 수많은 미취학 아동들이 태어나 처음 배우는 운동으로 선택되고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포인트는 그렇게 어릴 때 다 같이 태권도를 열심히 배우다가도 중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하나둘씩 (보통은 학업에 집중하기 위해) 운동을 그만둔다는 거다. 그 후로 태권도 같은 건 까맣게 잊고 살다가 개인의 상황에 따라 군대에서 다시 잠깐 접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나는 군미필이라 주변 친구들에게 전해 듣기만 했다.) 뭐 그랬다가 제대하면서는 또 완전 빠이빠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한 번 생각해 보시라. 주변에 "요즘 친구들이랑 수업 끝나고 같이 태권도 배우러 다녀요."하고 말하는 대학생이나, "저는 퇴근 후에 (헬스나 요가나 수영이 아닌) 태권도를 합니다!"라고 말하는 직장인이나, "둘째 낳고 체력이 너무 안 좋아져서 태권도장에 왔네요~"하는 아기 엄마가 몇 명이나 있는지.


아마 거의 없을 거다. 내가 친구가 없어서인지 몰라도...

내 주변에는 정말이지 단. 한. 명. 도. 없었다.

좀 이상한 거 아닌가.



우리나라에서 태권도는 참 독특한 포지셔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1) 어릴 때 배우는 운동

2) 올림픽 때 '그래도 우리가 종주국인데 금메달 따야지!' 하며 응원하는 종목


딱 이렇게 두 가지 자리만 있는 느낌? 이름만 들으면 한국을 대표하는 국민 스포츠인 것 같은데 실제로는 (특히 성인의 경우)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만 가까이 접하고 있다. 마치 찾기 진짜 힘든 위치에 있고, 테이블도 한 개 밖에 없어서 아는 사람만 가는 곳인데 이름은 <김밥 천국>인 아이러니 대행진 식당 같다.


실제로 내가 처음 태권도를 배우기 위해 도장을 찾을 때도... 살고 있던 아파트 단지 내 상가를 포함한 우리 동네랑 옆 동네, 옆 옆 동네 태권도장에는 성인반이 없었다.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도장이 있기를 바랐지만 헛된 희망이었다. 결국 인터넷을 뒤져서 집에서 버스로 30분 거리에 있는 성인 전문 태권도장을 찾아내 등록했다. 그나마 그곳이 가장 가까운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텅 비어있을 것 같았던 내 예상과는 달리 도장은 대학생과 대학원생, 직장인, 그리고 일일체험을 온 외국인까지 다양한 사람들로 북적였다. 새로운 세상이었다. 그래서 초반에는 남몰래 속으로 계속 놀랐다. '아니 생각보다 사람이 정말 많네? 태권도 배우는 사람들이 여기 다 숨어(?) 있었구나!' 하고 말이다. 


그렇게 도장에 나가는 날이 늘어가면서 서서히 내 안에 있던 '태권도'와 '아이들'의 링크가 끊어졌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연결고리를 걷어내고 태권도와 가까워지면 좋겠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내 예상과 내 생각보다 사람이 많은 거였을 뿐, 실제로 성인 태권도 시장의 규모는 아직도 무척 쁘띠큐티하다.)



이런 건 어른이나 하는 거야.
그런 건 애들이나 하는 거지.


선을 그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몸과 마음을 동시에 단련할 수 있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아이들에게 태권도가 체력 증진과 인성 교육을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운동이라면, 성인에게도 그렇다.


어린이의 그림책이 어른을 울리기도 하고, 성인도 내용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책이라도 아이가 읽고 감동할 수 있는 거다. 오히려 어른이 보지 못하는 것까지 볼 수도 있겠다. 담배나 술처럼 아이들의 성장에 치명적으로 해로운 게 아닌 이상, 이건 어른의 영역, 그건 아이의 영역으로 생각을 구분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너는 여기까지만 해. 당신은 거기까지만 허용할 거야.' 안 그래도 시시각각 냉정하게 그어지는 선 앞에서 좌절하는 날들이 많은 요즘, 나는 태권도까지 그러진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땀에 절은 도복을 세탁기에 넣는다. 어쩌면 미래의 내가 누군가와 나눌지도 모를 대화를 기분 좋게 상상하면서.


"어머 하늘이 엄마~ 어디 가세요?"


"태권도장 가요!"


"아, 아이를 태권도 학원에 보내시나 봐요? 픽업 가세요?"


"아니오. 제가 다녀요. 아직 파란 띠인데 곧 승급 심사가 있거든요! 두근두근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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