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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미 선 Dec 20. 2023

아줌마 탐구하기(6)

아줌마는 경주마


가을날 5일장에서 어떤  꼬부랑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 등에는 국화꽃이 업혀있었다.

"할머니 힘드신데 왜 꽃을 업고 가세요?"

"이뻐서 샀는데 배달은 안 해준대."

"아휴, 힘드실 텐데 배달해 주면 좋으련만."

"흐흐 그러게 말이야."


할머니는  국화꽃을 사긴 샀는데 운반이 문제였다.

궁리 끝에 등에 아기처럼 포대기를 두르고 화분을 업었다.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화분을 업고 가면서도 할머니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무지무지 좋아하는 거라서 무거운 것쯤은 잠시 감수할 수 있다고 하셨다. 


지팡이까지 짚고 허리를 굽힌 등에서 꽃이 출렁거리고 지나갔다.

꽃도 할머니도 신이 났다.

할머니는 누구보다 꽃을 잘 가꾸실 의욕이 다리와 등에서 넘실거렸다.

이처럼 좋아하는 일은 고역이 되지 않는다.


할머니는 그날부터 국화꽃에게 넋두리도 웃음도 퍼부어줄 테다.

멀다는 이유로 어쩌다 오는 아들이나 딸보다 화초가 훨씬 낫다.

옆집에서 뽑아버린 제라늄도 할머니에겐 선물이다.   

할머니 손에만 들어가면  길바닥에서 사망선고를 기다리던 꽃들이 전부 

기사회생하는 마법이 일어난다. 


어느 날.

부스스 일어난 할머니의 눈에 환한 꽃뭉치가 들어온다.

저녁까지도 꽃망울을 감추고 있던  제라늄이  활짝 할머니를 향해 콘서트를 준비한 거다.

할머니는  박수를 짝짝짝 치면서  임영웅이 콘서트에 간 것보다 더 좋아하신다. 

아이구~~ 네가 꽃을 피워줬구나!


할머니는 이미 아줌마 시절부터 꽃과 동고동락하기 시작했을 테다.

집을 가꾸는 데 있어 식물의 중요성이나 분위기에 관심이 많아지는 건 아무래도 

살림을 하는 아줌마 들이다.

화초가 한두 개 있는 거와 없는 것은 그 집안 공기를 다르게 한다.

공기라는 것이 산소를 의미하지만은 않는다.

공기 정화 측면에서 뿐 아니라  분위기를 화기애애하는데 화초의 역할은 크다. 


나도 어릴 때부터 화초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꽃과 나무들을 좋아했다.

해마다 앞 뒤뜰에 빼꼭하게  화초를 심었던 부모님 덕에  우리 집은 늘 동네사람들이 

꽃구경을  오곤 했다.

봄에는 벨벳 같은 해당화가 샤넬이 무색할 만큼 진한  향수를 뿜어냈다.


해당화는 가시가 온 줄기를 감싸고돌아 감히 근접허가를 내주지 않았지만, 

어린 나는 그 주변에서 향을 즐겼다. 

크림슨에 가까운 해당화 꽃잎은 아줌마들의 립스틱을 연상케 했다. 

해당화는 봄이 저물고 여름이 될 때까지 왕권을 내려놓지 않았다.


그 뒤를 이어 옥잠화, 기생초, 칸나, 해바라기, 채송화, 봉선화, 삼잎국화가 

줄줄이 우리네 가난한 뜨락을  채워주었다. 

서리가 내리기 전까지 국화와 과꽃이  막바지 단장을 한 뒤에야 온전히 겨울을 맞았다.

한해살이 꽃들로 인해  정서적 안정을 얻었음은  물론이다.


결혼을 하고도 꽃을 키워보고 싶었으나 뜻하지 않게 살림이 쪽박을 찼다. 

꽃을 키울만한 공간도 없었고 마음까지 가난했던 시절이다.

이런저런 고생 끝에 새 아파트를 장만하고 그때부터 꽃들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때 (2005년)에는 베란다가 웬만한 안방보다 널찍했다. 

                                       베란다가 넓어서 선택한 아파트.

                                               

                                

꽃에 한이 맺힌 사람처럼 온 동네 꽃집이란 꽃집, 인터넷에 널려있는 꽃집들을 

뒤져대기 시작했다. 

다육식물이 대 유행했던 시기였고, 당시 아줌마들이 그것에 혼을 뺏길 때였다.

모든 세상사는 다 흐름을 무시할 수 없다. 

허구한 날 다육식물들이 우리 집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거기서도 어린 시절 나의 집으로 동네사람들이 꽃구경을 왔듯이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수시로 눌러대는 벨 소리에 흙손으로 구경꾼들을 맞이했다.  

꽃중독에 빠진 것이다.

화분이 그렇게 늘어나고 있는데도 여전히  화분들을 줄일 생각이 없었다. 

이건 가정집이 아니라 작은 농장 수준이었다.












그러다가  이사를 하면서 대폭 동네 사람들에게 인심을 쓰기로 했다.

인심을 쓰기로 한 날.

아침부터 동네주민들이 벨을 누르고 문을 두드리면서 화분을 선점하려고 긴 줄을 늘였다. 

한결같이 뛰어왔다는 거였다. 

만사 제쳐두고 뛰어왔다고 했다.

그게 뭐라고. 















그렇게 나눠주고서도 2.5톤 트럭으로 화분만 한 트럭을 싣고 왔으니 해도 너무했다. 

이사 온 집에서도 꽃들을 열심히 가꾸다가 아무래도 힘에 부치면서 나눔 공고를 냈다. 

공고를 본 아줌마들이 밥솥을 사듯 뛰어왔다.

양말도 못 신고  맨발의 청춘임을 자처하면서.


세상에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실 태세다. 

공짜도 공짜지만 아줌마들을  현혹시킨 것은 화분들의 앙증맞은 비주얼 때문이다.

내가 주려고 한 것들이 거의 수제화분이다. 

가격도 만만찮은 고급 화분이었던 거다. 

`저건 가져와야 돼.`

이쁜 것이라면 환장을 하는 아줌마들이 가만있을 리 없었다.















저요, 저요.

서로 받아가려고 난리가 났다. 

수북하던 화분은 금세 동이 났고 못 받은 아줌마들은  한 발 늦은 것을 안타까워했다. 

나중에 이런 일이 또 있거든 꼭 부탁한다고  연락처까지 남기고 갔다.



























그렇게 퍼냈어도 여전히 지금도 화분이 100여 개가 넘는다.

훌쭉해지긴 했지만 당분간은 화분 나눔은 없겠다 싶었다.

그런데 웬걸.

어느 날  현관문을 밀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난초들이 문 앞에  열을 지어 서 있었다.

전국에서 몰려온 축하난이었다. 


남편이 그 업계 요직을 연임하게 되어 이틀에 걸쳐  난 화분을 보낸 것이다. 

미리 말이나 좀 해줬으면 준비라도 했건만. 

현관에 놓인 난 화분들을 들이기 시작하는데 이거 야단 났다.

흙이라도 흘릴까 봐.

행여 깨질까 봐.

조심조심 겨우 겨우 들여놓고 보니 좋은 것이 아니라 걱정스러웠다. 

전국에서 보내준 축하 난. 



















기껏 집에 있던 화분도 절반을 덜어냈는데 또 보태졌으니 이 걸 다 어떡한댜!

또다시 나눔을 결정했고 아파트 카페에 공지를 올리게 되었다. 

올리자마자 요이~~ 땅땅.

선착순이라고 쓴 문구가 무섭긴 무서웠나 보다.


아줌마란 아줌마는 다 우리 집으로 뛰기 시작했다. 

누가 누가 잘 달리나 경주마가 되어 눈썹 날리게 뛰어왔다.

아무 신발이나 보이는 거 꿰고 달려온 아줌마들이 시장터를 이루었다.  


절간을 연상하던 집이 갑자기 5일장이 되었고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었다. 

나는 `에헴` 까지는 아니어도 앞에 서서 난을 배분하게 된 경위를 잠시 설명해 주었다.

박수가 터졌다. 

주는 기쁨과 받는 기쁨으로 집안이 술렁거렸다. 


어떤 아줌마는 아저씨까지 끌고 왔다. 

마누라의 성화에 못 이겨 덩달아 달리면서 얼마나 우스웠을까. 

어찌 남편까지 동원할 생각을 했는지.

아줌마의 극성 덕에 그 아저씨는 두 개의 난을 얻어가는 행운을 얻었다. 


선착순에 든 아줌마들은 난 화분을 들고 감격했다.

우승컵을 들듯이 화분을  팔에 끼고 환호했다.  

간 발의 차이로 이겼다고.

고맙고, 감사하다고 연실 고개를 숙이며 현관을 빠져나갔다. 


화분을 받았음에도 어떤 아줌마는 

"조기,  저 화분 하나만 줄 수 없어요?"

작고 앙증맞은 토분들을 가리키며 그것을 탐내고 있었다.

세상에.

나는 그 아줌마에게 화분 다섯 개를 몽땅 주고 말았다.

또 털렸네. 또 털렸어.


아줌마가 되면 얼굴이 두꺼워지는 건가?

날마다  뜨거운 열기 앞에 서있다 보니 얼굴에 감각이 무디어 지나보다.

뜨거운 밥공기도 뜨거운 줄도 모르고 들고 서있듯, 

얼굴도 손가락도  다 무디어 지나보다.

그래야만 가족들을 보듬으며 살아갈 수 있나 보다.

그건 아줌마의 무기가 되겠지.


아줌마는 인생의 중간 허리에서 중추적인 위치에 서있다.

개미허리가 드럼통을 닮아 볼품은 없어졌지만 개미허리로 뭘 하겠는가.

차라리 실용면에서는 드럼통이 낫지. 

삶에는 멋보다 실속이 중요하지.

암 그렇고 말고. 


아줌마는 이렇듯 뻔뻔함, 인정, 실속이 오묘하게 버무려진 존재다.

가정을 위해 언제든지 달리기 선수가 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다.  

돈 한 푼을  아끼면서 실속을 위해서라면  뭔들 불사할 채비가 되어있다. 

특별하지 않아도 뭉근하게 삶을 고아 가는 능력이 있다.

그녀들에게는.


다음에 또 화분을 나눠야 할  입장이 되면 그땐 또 어떻게 아줌마들을 

경주마로 만들 것인지 궁리해 봐야겠다. 

주는 이나 받는 이나 웃겨 죽겠다고 서로 깔깔거리면서 한바탕 웃어제끼는 이벤트라도 

마련해 봐야겠다.


뛰어오느라 모두 빈손으로 왔건만 어떤 분은 키친타월을 들고뛰어온 걸 보면 

그나마 고마운 마음은 챙기고 왔다고 생각한다.

머릿속엔 고마움은 나중문제이고 내가 누구보다 빨리 뛰어가느냐가 문제였을 테다.

분명 어떤 걸 들고 올 여유가 없었을 거다.


아직도 여유분이 남긴 남았는데 그땐 어떤 방식으로 나눔을 해봐야 할까.

이왕이면 배꼽 실종사건 하날 만들어야겠다.

주는 이나 받는 이나 즐겁고 재밌고 행복한 시간들을 계획해 봐야겠다.

공고에는 절대로 짝짝이 신발 신고 오는 사람은 탈락이라고 전하면 그때부터 

웃음보따리 터지려나.


재밌는 아이디어 제공한 사람에겐 화분 다섯 개 당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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