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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미 선 Mar 27. 2024

아저씨 탐구하기 (9)

아저씨의 뚝심

부부동반으로 대마도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다섯 쌍의 부부가 바다를 건너간 것이다.

다섯 쌍은 별문제 없이 여행을 잘 마칠 수 있었고 마지막 날에 선물가게에 들렀다. 

선물가게에서 가위도 사고 식칼도 샀다.(지금은 국산이 으뜸이지만 그땐 일제가 좋다고 인식함)


다 샀다고 생각하고 나오다가 나는 화과자와  눈이 딱 마주쳤다.

화과자의 앙증맞음이 마음에 끌렸다.

순간 그걸 집어 들고 계산대 앞으로 갔다. 

먼저 거슬러준 돈을 꺼내 계산을 하려는데 동전 지갑이 복잡했다.


뒤적거리다가  동전 지갑을 계산대 앞에서 다 쏟아놓고 동전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주 짧은 시간에 일이 벌어졌다.

가게 직원이 갑자기 동전을 모두 손바닥으로 쓸어서 자기네 동전통에 넣어버렸다. 

쓰윽 쓰레받기로 쓰레기를 치워버리듯 그렇게.


갑자기 일어난 그 점원의 무례한 행동에 나는 당황했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뭐라 말도 한마디 없이 자기 뜻대로 동전을 싹 쓸어버리다니.

길지도 않은  불과 1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 


동전이 전부 얼마였는지 계산도 해보기 전이라 그가 쓸어간 총액을 알지 못했다. 

물건을 사는 대로 거스름 돈은  동전지갑에 넣고 다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간편하고 편리한 카드 제도가 없어 그곳은 현금을 들고 다녀야 했고,

동전은 지갑으로 직행했다. 


그래서 이런 겪지 말아야 될 일을 겪게 되었다.

선진국 이라면서 후진국 같은 제도와 태도에 화가 났다.

있을 수도 없는 앞에 나는 언성이 높아졌다.

"아니 왜 내 돈을 다 거기다 쓸어 담아요. 다시  내놔요." 


빨리 돈을 내놓으라고 격앙된 소리로 말했건만  그 직원은 대꾸도 않고 

다른 손님들을 받고 있었다. 

여러 차례 항의를 했어도 `너는 떠들어라 나는 안 줄란다.` 그런 태도였다.


안하무인도 이런 안하무인이 없다.

점원은 안경을 낀 젊은 일본 남자였는데 그의 신체는 마른 명태였다. 

뱀 같은 눈, 한마디로 못생긴 남자였다.

이 남자도 생긴 대로 노는 것일까.


먼저 밖으로 나가있던 남편은 아무리 기다려도 마누라가 나오지 않자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덩치 큰 사나이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겠다.

나는 즉시 아저씨에게 전, 후 상황을 설명했다.

벌어진 동전 지갑 안에 한 푼도 없는 텅 빈 지갑을 보여주면서.


 아저씨는  일순간 얼굴이 벌게졌다.

"이런 싸기지 없는 놈. 네 매니저 불러와. 어디서 수작이야 수작이.

니네들은 아직도  한국인이 만만하냐. 쓸어 담은 돈 도로 내놔." 


점원 코앞에 손가락을 세우고 삿대질을 했다. 

어찌나 목소리가 우렁우렁한 지 다른 손님들이 우리 아저씨를 주목하고 서있었다.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 뭐야?  얼른 쓸어 담은 돈이나 내놔. 미친놈을 다 봤네."


"에잇, 왜 욕을 하고 그래." (한국인이 많이 드나드는 상점이라 한국말을 잘함)

젊은 점원은 아저씨를 향해 대들었다.

"그럼 네가 잘했어?"

돈을 제대로 세서 계산을 하려는데 네가 다 쓸어 담았잖아."


"...."


"우리나라에선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없는 일이야.

이건 네가 우리 마누라를 무시한 거고.

한국인을 무시한 거야."


"다 필요 없어. 이까진 빵  안 살 테니 돈이나 내놔."

아저씨는 계산대 위에 놓여있던  화과자를  홱 그 남자에게 던져버렸다.

그건 강도 높은 패대기였다.

그리곤 무섭게 그를 쏘아보았다.

눈빛에서 이글대는 광선은 지상에서 모여진 어떤 분노덩어리 보다 크고 강했다.


그때서야 일본인은 상황판단을 했는지 서랍에서 주섬주섬 동전을 꺼내 건네주었다. 

받은 돈이 떼인 돈보다 더 많은지 적은 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다만 욕을 먹으며 내준 동전이 쓸어간 동전보다 훨씬 적었다는 것은 확실했다. 

그랬어도 화과자를 부숴버린 것으로 분노를 탕감시켜야만 했다.


동전을 받아 들고 나오면서 아저씨는  냅다 또 한 번 소릴 질렀다.

"그 따위로 장사하지 마. 한국 사람 무시하다간 큰코다친다. 

지금이 뭐 일제강점긴지 아니?

이까진 가게서 별 시답잖은 놈을 다 봤네."


퉤퉤.

침을 뱉진 않았지만 뉘앙스가 그랬다.

일본의 젊은 남자가 한국 중년 아저씨한테 호되게 혼났다.

동전으로 인해 그는 욕 얻어먹고 모욕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일순간 잘못된 행동을 했기 때문에.


그 젊은 청년의 두 번째 실수는  아줌마와 아저씨를 구분한 거였다.

내가 돈을 다시 내놓으라고 말했을 때 순순히 내줬다면 욕까진 먹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순수한 사람이라면 그런 행동을 하지도 않았겠지만. 

덩치 큰 아저씨가 들어와서 화를 내니까 그제야 바짝 쪼그라든 것이 내겐 영 마뜩잖았다. 


주지 않는 돈을 달라고 억양을 높이고 섰던 입장은 

돈을 뺏긴 것이 아니라, `한 푼 줍쇼` 로  반전되었기 때문에 여간 굴욕적인 것이 아니었다.

동전을 소홀히 한 죄책감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만약에 일본인이 계속 깐죽거리면서 돈을 내어주지 않았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욱` 치미는 성질에 그 가게의 물건들이 다 공중전을 치렀을 것만 같다.

다 물어주는 한이 있더라도 아저씨는 그 자리를 순하게 물러날 리가 만무했다.


부당한 일을  정당하다고 우길 때 아저씨의 뚝심이 살아난다.

아저씨의 화는 그날 제대로 과녁을 맞혔다.

아저씨가 그날  읍소하듯이 조근조근 말했다면 일본인은 오히려 큰 소릴 칠 수도 있었다.

비록 욕을 한 건 잘못이지만 밀어붙일 때는 강하게 밀어붙이는 뚝심이 필요했다.


털려버린 돈도 돈이지만 돌려주지 않고 오히려 

쏘아보던 일본인이 내겐 그렇게 얄밉고 무서울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언제 그랬냐고 딱 잡아떼면서 나를 오히려 이상한 아줌마로 몰아갈까 봐 

그것이 더럭 겁이 났다.


그 사건은 벌써 10년 전 일이지만  지금까지 내겐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trauma.

트라우마는 뚫리다는 뜻을 갖고 있듯이 구멍이 뚫릴 만큼 심각한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그때의 상황이나 남편의 말이 하나도 잊히지 않고 지금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아저씨의 뚝심은 그렇게 순식간에 타올라 잘못된 것을 해결해 주었다. 

그날은 아저씨의 등이 남산만큼 커 보인 날이다.


식당으로 몰려갔던 4쌍의 부부는 우리가 나타나지 않자 전화가 빗발쳤다.

뒤늦게 식당에 들어서자 늦은 이유를 물어왔다.

곧 식당은 성토장으로 변했다.


금방이라도 그 가게로 몰려갈 듯 입에 게거품을 물었다.

특히 아저씨들이 액수를 떠나서  그 남자의 잘못된 행동과 태도를 몹시도 못마땅해했다.

고만큼의 응징을 아까워했던 것이다.


옳은 일로 뚝심이 설 때 그땐 무엇보다 남자의 가치가 빛나는 순간이다.

아저씨들은 꿍쳐두었던 감정이  이럴 때 불끈 뚝심으로  나타나는 것이리라.

이 순간 아저씨의 뚝심은 존경심으로 작용했다.

아저씨의 뚝심은 내게 악당을 물리쳐준 히어로였다.





봄날. 가로 25 세로 25 oil painting 필자.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봄이지만 아직도 

봄이 온 것 같지 않고 추워요. 

그래도 요즘 목련이 한창이라서 한점 그려봤어요.


대문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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