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와 키오스크
kiosk.
원래는 신문이나 음료수 같은 간단한 물건을 파는 매점을 뜻했다.
이것이 정보통신 서비스와 접목하면서 터치스크린 방식의 무인 단말기로 변모했다.
인건비 절감과 편의성 추구라는 명목으로 점차 등록업소가 확산되는 추세다.
이미 공공장소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기기다.
키오스크는 종류도 다양해서 어디에 설치하느냐에 따라 조금씩 사용법이 다르다.
이 현대문명의 이기가 설치한 쪽에서는 편리성을 추구한다지만,
이용자 측면에선 아직 불편하다.
사람보다 먼저 키오스크와 대면해야 하고 기기에 맞게 사용법을 숙지해야 한다.
손가락을 까딱 잘못 눌렀다간 손해를 볼 수도 있다.
키오스크 앞에서는 말실수보다 손가락 실수가 크다.
수량을 1개만 눌러야 되는데 3개를 누르고 그대로 결재를 해버리면 탈이 생긴다.
이건 순전히 잘못 선택한 사람의 몫이다.
그 좋은 예로 지인의 사례를 들어보면 이렇다.
아는 지인 중에 정년퇴직을 하고 주로 집에 있는 아저씨가 있다.
그 아저씨가 아줌마가 집을 비운 사이 혼자 식당엘 갔단다.
그럴싸한 중국식당이었는데 거기서 식탁에 올려있는 키오스크로 주문을 하게 되었다.
들여다보니 그리 어렵지도 않아 먹고 싶은 볶음밥을 찍었겠다.
그런데 손가락이 고장 났는지 3개를 주문한 거였다.
그랬으면 주방에서 한 사람이 세 개를 시킨 것은 뭔가 잘못되었다고 판단했어야 옳았다.
그 손님에게 다시 확인을 했어야 했다.
그렇지 않고 임의대로 3개를 다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서빙하는 직원을 시켜서 이미 만들었으니 포장해서 가지고 가야 한다고 했더란다.
안 가져가면 버릴 수밖에 없어서 손해가 난다고 하면서.
손가락을 잘못 놀린 죄.
아저씨는 그걸 들고 오면서 `아휴! 바보, 바보.`
혼자 장탄식을 했을 것이다.
기계는 정확하고 사람은 실수를 하게 되니 기계가 사람을 혼내고 있다.
젊은 사람들에 비해 시력이 저하된 중년층 이상은 글씨를 들여다보느라
거기서도 또 거북목이 되어버린다.
지난 토요일(16일) 우리 부부는 충남 예산을 다녀왔다.
예산 시장이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았다.
한 사람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요식업계를 주름잡는 백종원.
백종원 대표가 자기 고향 예산을 살리기 위해서 발 벗고 나선 프로젝트가 대박이 났다.
음식에 대한 노하우를 제공하고 점포들마다 특성을 살려 맛집들을 유치했다.
그게 딱 맞아떨어져서 전국에서 예산 신드롬이 일어났다.
가보니 사람이 어찌나 많던지 인파에 우선 놀랐다.
그 넓은 광장에 이 조그만 여자가 앉을자리가 없었다.
이리 헤매고 저리 헤매다가 겨우 국숫집을 찾아가 긴 줄 뒤에 서게 되었다.
멸치를 우려낸 잔치 국수가 얼마나 맛있길래 이리 야단들인지 직접 먹어보고 싶었다.
국숫집이야 동네만 나가도 수두룩하다.
예산이 국수로 유명하다길래 "가볼까?" "그래 가보자."
둘은 호기심반 기대 반으로 거기까지 달려갔다.
그런데 이 무슨 호떡집에 불이란 말인고.
긴 줄이 줄어들어 우리 차례가 되었고 어김없이 키오스크 앞에 섰다.
그곳은 재래시장 형태의 상설시장이었는데 점포들 마다 키오스크가 다 설치되어 있었다.
아저씨가 키오스크로 국수를 주문했다.
기다리던 끝에 국수가 나왔다.
하나는 새콤달콤 비빔국수, 다른 하나는 멸치국수를 시켰다는데,
나온 것은 파기름 비빔국수였다.
멸치국수는 제대로 나왔지만 하나는 종류가 다른 국수가 나온 거다.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을 의식하면서 머리는 새콤으로, 손가락은 파기름으로 찍어버린 것이다.
기계는 찍힌 대로 실행할 뿐이다.
머리 따로 손가락 따로.
결국 아저씨는 원치 않던 국수를 먹어야 했다.
그곳을 나와보니 빈대떡 집이 보였다.
아! 광장시장에서 먹어 본 그 녹두 빈대떡.
그 맛과 똑같진 않겠지만 무조건 그 집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거기도 사람들이 넘실거렸다.
"빈대떡 포장되나요?" 물었더니
주인아저씨가 저기 가서 키오스크부터 하고 오라고 가리켰다.
키오스크는 어른 눈높이만큼의 키로 올려져 있었다.
녹두 빈대떡을 찍고 수량을 찍었는데 그다음에 전화번호를 찍으란다.
아!
전화번호?
여기서 들이민 카드는 아저씨 카드였다.
전화번호로 전화를 건지가 언제였든가!
남편이면 남편.
서방님이면 서방님.
대장이면 대장.
임금님이면 임금님이지.
그렇다고 `남편` 이렇게 찍을 수도 없고.
남편은 그때도 내편이 아니고 잠깐 자리를 뜨고 없었다.
핸드폰을 꺼내 전화번호를 확인하느라 입력이 좀 늦어졌다.
뒤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뭐라 하진 않았지만 돌아보니 `에궁` 하는 표정이다.
내 번호가 182번.
182번째 손님으로 앞 손님이 15명이나 기다리고 있었다.
아줌마가 열심히 빈대떡을 굽는 장소 앞에 바로 키오스크가 올려져 있다.
그 키오스크 앞에 긴 의자가 있어서 거기에 앉아 나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본의 아니게 관찰자 시점이 된 것이다.
젊은 사람일수록 타다닥 몇 번 치면 끝이었다.
기계도 나이를 알아봤다.
나이순으로 버벅거렸다.
50대로 보이는 아저씨는 턱 버티고 선 키오스크 앞에 얼굴을 뒤밀고 미간을 좁혔다.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더니 한 손을 들고 손가락을 허공에서 구부렸다 폈다 예행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 새에 사람들은 자꾸 꼬리를 늘여갔다.
허공에서 예행연습을 마친 손가락은 드디어 결재를 끝냈나 보다.
아저씨는 영수증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다음 사람은 6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아저씨였는데 그 앞에 서자 한숨부터 쉬었다.
"아! 나 이거 할 줄 모르는데 " 하면서 키오스크를 더듬더듬 더듬었다.
어찌했는지 아무튼 영수증을 꺼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있다가 60대 아저씨가 빈대떡을 굽고 있는 젊은 아줌마에게 다가왔다.
"이거 잘못됐나 봐요."
아줌마는 영수증을 받아 들고 말없이 종이를 들여다보았다.
본래는 빈대떡 2개만 사려했는데 3개를 찍었다는 것이다.
그 후로도 어떤 아저씨가 또 주인에게 오더니 그것도 잘못되었다고
수량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나이 든 사람일수록 키오스크 앞에서 길을 헤맸다.
그것도 아저씨들이.
이건 키오스크가 아니라 카오스 다.
자세히 보면 그리 어렵지도 않건만 심리적으로 미리 쫄아있었다.
특히 수량 조절에서 실수가 많았다.
나이 든 것도 속상한데 뚱딴지같은 기계가 자신을 놀려대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을 거다.
인지력의 부족, 시력의 저하 신 문물에 대한 생소함.
이런 요소들을 헤쳐내고 기계에 익숙해져 가는 것이겠지만.
좋든 싫든 이제 이 단말기와 친해져야만 한다.
단말기와 친해지지 않으면 입장이 곤란하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하고 있다.
시대에 맞게 새로운 기계들이 새록새록 출시되고 있다.
사람이 아닌 기계들이 사람들을 조종하고 있다.
`情`이라는 우리네 정서에 찬 물을 끼얹는 냉정한 기계가 아직은 낯설다.
시대는 점점 정이 필요 없는 구도를 만들어 가고 있다.
"여기요."
손을 흔들면 달려오던 주인장 아저씨의 주문서는 이제 쓸모없게 생겼다.
말보다 손가락의 기능이 중요해졌다.
주고받을 말이 필요 없어진 시대가 되었다.
음성인식이 보급화 되지 않는 한.
대충이 허용되지 않는 기계 앞에서 아저씨들이 밀려났다.
아저씨가 키오스크 앞에서 숫자로 실수하는 이유는 차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는 마누라보다 키오스크와 더 친밀해져야 할 시점에 서있다.
"아저씨! 쫄지 마세요."
그 까진 게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