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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미 선 Jun 05. 2024

인생 그게 뭐라니?(7)

누군가가 시집오던 날

내 어린 시절 우리 동네는  다 끈끈한 한 뭉치였다.

네 일은 네가 해라가 아니라 네 일도 내 일도 다 내 것인 공동체였다.

비밀도 기쁨도 슬픔도 다 같이 조각내어 나눠가졌다.


대문은 늘 헤벌쭉 열어놓았다.

그 개방감은 동네사람들을 더 친밀하게 엮는 통로가 되었다.

넉넉하게 부엌 선반에 올려놓은 보리밥도  아무나 와서 퍼 먹어도 흉이 되지 않았다.


농사를 짓다가도 농기구가 필요하면 냉큼 어느 집이고 들어갔다.

가져다 쓰고 제 자리에 갖다 놓으면 그만이었다.

빌려주며 빌리며 눈치를 보거나 승강이를 할 이유가 없었다.


동네 한 복판에 자리 잡은  공동우물은 새로운 뉴스가 생성되는 장소였다.

누구네 누렁이가 강아지를 여섯 마리나 낳았는지,

뉘 집 아저씨가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렸는지,

누가 곧 시집을 가게 되었다든지,

어떤 집 아들이 장가를 들게 된 사연도 다 빨래터에서 흘러나온 따끈따끈한 뉴스였다.


그중에서 나의 관심사요, 친구들  모두가 주목하는 행사는 동네의 혼사였다.

드디어 이목의 대상인  영자오빠가 장가를 간다는 것이었다.

그 집에서 혼사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먹거리가 많다는 것이다.


먹는 것에 목숨 건 이상 `결혼식날이여 어서 오라`

내 일과 무관했지만 그건 바로 나의 일이었다.

잔칫날!

그날은 배가 호사하는 날이요, 눈이 호강하는 날이다.


결혼식도 잔칫날이요, 초상날도 아이들에겐 잔칫날이다.

먹을 것들이 쌓이는 날이고 평소에 먹어보지 못한 산해진미가 넘쳐나는 날이다.

어찌 그날을 기다리지 않고 배길수 있으랴.


빨리 새색시가 우리 동네로 들어오길 바라고 또 바랐다.

드디어 영자네 큰 오빠가 결혼하는 날이 밝았다.

오! 필승 코~리아. 오! 필승 결~혼식. (월드컵 경기에 준하는 기쁜 날)

가마솥 잔치국수는 아침부터 끓어대기 시작했고 동네사람들이 우글우글 몰려들기 시작했다.


내겐 그 많은 먹거리 중에서 제일 맛있던 음식은 단연 잔치국수와 빈대떡이었다.

구수한 국물에 노랗고 하얀 계란 지단을 얹은 잔치국수는 생각만 해도, 

먹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엄마가 날라다 준 잔치국수를 마당 멍석 위에서 허겁지겁 먹으면서 생각했다.

이런 날이 맨날 맨날 맨날 있었으면 좋겠다고.

얼른얼른 결혼식을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면 얼마나 좋겠냐고.

꼬맹이는 애 늙은이였다.


마음 같아선 채반 위에 척척 쌓여있는 국수를 다 먹어치우고 싶었다.

그것은 생각뿐.

조막만 한 위의 용량으로 가당키나 한 일인가.

한 그릇 아니라 열 그릇이라도 먹을 수 있는 커다란 위를 갖지 못한 열패감에 시달렸다.


장독대 뒤에 자리 잡은 빈대떡, 이 또한 손가락을 폈다 접었다 하면서 기다리던 음식이다.

하룻밤 잤으니 손가락 한 개 접히고 두 밤 잤으니 손가락 두 개  접히고.

빈대떡의 고소한 유혹은 고문에 가까웠다.

저건 오늘 꼭 아기 주먹만 한 위장을 풍선으로 만들어 보리라.


여기서 잠시 빈대떡과 부침개의 구별을 짚고 넘어가자.

빈대떡은 녹두가 주재료이다.

거기다 소고기 돼지고기 고사리 숙주나물  김치등을 넣어서 두껍다.

반면 부침개는 야채류와 해물을 넣어 밀가루로  얇게 부쳐낸 전 종류에 가깝다.

넓은 범위에서는 다 부침개에 속하지만 녹두와 밀가루의 구분에서 빈대떡과 부침개를 세분한다.

현재 광장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녹두빈대떡이다. 


결혼식엔 당연 정성과 맛이 곁들여진 부침개보다 한 수 위인 빈대떡을 만들었다.

아무리 쪼그매도 맛은 다 안다.

부침개보다 빈대떡이 훨씬 고소하고 맛있고 고급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 특별한 날 고급진 빈대떡을 손꼽아 기다렸던 것이다. 


가마솥 솥뚜껑을 엎어놓고 허연 돼지비계를 빙빙 돌려가며 부쳐내던 녹두빈대떡은  

누구나 환영하던 최고의 따따봉 음식이다.

마침 빈대떡  담당은 다름 아닌 우리 엄마다.


와우! 

영자엄마의 안목과 내 생각이 척척 맞아떨어졌다.

우리 엄마를 빈대떡  대장으로 임명하다니.

내가 그걸 좋아한다는 것을 어떻게 아셨을까.


사실 빈대떡 담당은 다른 일보다 노동력이 요구되는 작업이었다.

하루종일 지글지글 가마솥의 열기와 기름냄새로 골치 아픈 역할이다.

얼굴은 벌게지고 허리도 팔도 손가락도 다 시큰거리는 노역이다.

덥고 뜨거운 솥뚜껑 앞에서 연실 빈대떡을 부치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그토록 고소한 냄새도 지긋지긋함으로 변질될 것이 뻔하다. 


엄마의 고단함을 이해하지 못한 철부지는 엄마의 위치에 우쭐했다.

그날의 빈대떡을 책임져야 할 중책을 맡은 엄마와 두 명의 아줌마는 중노동에 시달렸다.

공급보다 수요가 폭발했다.


채반에 쌓일 새가 없이 날개를 달고 잔칫상으로 날아갔다.

그럼에도 엄마의 노역과 무관하게 내 어깨는 왜 그렇게 높게만 올라갔던지.

무슨 골목대장을 하는 기분까지 들었으니까.

하등 권리도 없이 일을 도와주는 처지였지만 일선에서 일하는 사람이 권력자다.

주인도 그날은  일하는 사람에게 떠맡겼다.


녹두빈대떡은  잔치국수를 금방 먹고서도 그 옆에  길을 내느라

뱃속은 점점 올챙이를 닮아갔다.

노랗고 바삭하고  고소한 빈대떡을  먹고 있으면 세상이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것인지.

이토록 맛있는 빈대떡을  왜 누군가가 장가를 가야만 먹을 수 있는 건지.

어린 마음에 심오한 철학을 야금야금 파헤치곤 했다.


배는 부를 대로 불러져 숨쉬기조차 힘들 무렵에 드디어 새색시가 시집으로 당도했다.

누군가가 큰 소리로  다 밖으로 나가라고 호령을 했다.

온 동네사람들이 다 밖으로 쫓겨났다.

새색시가 처음 그 집으로 들어갈 때 바가지를 문 앞에 엎어놓고 그걸 깨고 나서야 

동네 사람들이 다시 들어갔다. (새색시가 들어오며 악귀를 내쫓는 행위)

단 한 사람도 집안에 있으면 안 된다고 다 훑어내고 찾아냈다.


얼굴에 연지곤지를 찍고 한복을 입은  신부는 곧바로 작은 방으로 안내되었다.

안방과 대청마루를 낀 또 다른 방이었다.

신부가 오기 전 이미 방은 달궈질 대로 달궈져서 두꺼운 이불을 여러 겹으로

뭉쳐놓고 거기에 신부를 앉혔다.


손은 가지런히 앞으로 모으고 그 위에 하얀 천으로 덮은 뒤 가부좌를 틀고

하루 온종일 앉아있어야 했다.

동네사람들이 신부를 보겠다고 수시로 쪽문을 열고 들락거렸다.

그러다가 아예 확 개방해 놓고 대놓고 신부를 대 공개했다.


신부를 방에  앉혀놓은 것은 신고식이었다.

이 사람이 이제 우리 집 식구가 되었다는 공식적인 절차였다.

새로운 가족이 생겼음을 동네사람들에게 공표하는 통과의례다.


처음 동네사람들에게 선을 보이는 자리가 이 뜨겁고도 불편한 이불 위의 좌석이다.

좌불안석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자리다.

부엌에 붙어있는 가마솥은 쉴 새 없이 뭔가를 끓여내느라 씩씩거렸다.

그 뜨거움은 그대로 방구들로 전달되었다.

방안의 열기는 5월의 날씨를 7월의 날씨로 확 바꾸어 놓았다.


신부는 방에 요강까지 갖다 놓고 어둡기까지 일체 밖엘 나갈 수도 서성일 수도 없었다.

한복은 억압의 상징처럼  부자유스러웠다.

자세가 주는 불편함을 묵과하고 동네사람들의 안주거리가 되었던 신부다.

이런 행위는 시집오는 날부터 고단한 시집살이를 예고했다.


신부는 말을 해도 안되고 웃어도 안되고 뜨거워도 참아야만 했다.

첫날부터 형벌이다.

신부는 이불 위에서 부동자세로 고개를 숙이고 앉아서 겨우 숨만 쉬고 있었다.


누가 들여다 보고 우스개소릴 해대도 차마  웃을 수 없는 처지였다. 

웃었다간 금방 동네로 일파만파 소문나기 십상이다. 

웃음이 헤프고 행동이 진중하지 못하다고.

게다가 동네 사람들의 들쑥날쑥한 평가는 신부를 더더욱 긴장으로 몰아갔다.


얼굴에 점 하나라도 찾아낼 요량인지 뚫어져라 들여다보기도 했다.

요모조모 살피다가 흠잡을 데가 없으면 "새색시가 참하네."

"그만하면 쓸만하네."로 남의 며느리를 평가했다.


생각 같아서는  결혼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친정으로 돌아가고 싶었겠다.

이제 와서 돌이킬 수 없는 이 난제 앞에서 신부는 울고만 싶었을 거다.

`엄니는 뭐 하러 나를 시집을 보내려고 안달했수?`

`이렇게 힘든 시집을 왜 보내려고 안달복달 중매쟁이를 쫓아다녔수?`


앞산 뻐꾸기는 `뻐꾹, 뻐꾹` 새색시의 마음을 읽었다.

새색시는 `엄마, 엄마` 뻐꾸기 흉내를 내고 싶었다.

신부의 속울음이 뻐꾸기의 화음으로 나타났다. 


앞산 뒷산에서 처량 맞게 울어대는 뻐꾸기와 신부는 한 통속이었다.

한 통속이든 두 통속이든 상관없이  나는, 우리는 꾸역꾸역 잔치국수와 부침개를 욱여넣었다.

남의 속 타는 심사는 아랑곳없이.

인생사의 중대한 결혼은 그렇게 신부는 속마음을 그을렸고,

아이들은 먹는 것에 빠지면서 불협화음으로 이어졌다.


신부는 밤이 되어서야 겨우 그 자리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뻐꾸기도 잠이 든 시간이 되어서야 이불 위에서 저린 발을 일으켜야 했다.

순박한 신부의 얼굴에 안도와 또 다른 두려움이 내려앉았다.


빈대떡 장사도 어스름 저녁에 작업을 접었다.

마지막에 남은 잔여분을  몽땅 부쳤다.

주인집 몫을 몇 장 남기고  나머지는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엄마가 빈대떡 대장이라는 위치에서 나는 다른 애들보다 한쪽 더 얻을 수 있었다.

누군가가 뺏기라도 하면 어쩌나.

쪼그만 여자 애는 빈대떡을 들고 냅다 뛰었다.

먹는 것에 목숨 걸었던 그 무대는 수많은 동네 사람들이 함께 엮어간 장엄한 뮤지컬이었다.

지나온 인생길은 그렇게 그립고 애잔하고 아련하다.


녹두빈대떡,  스케치북에 파스텔화로 그린 필자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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