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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부부 Oct 07. 2021

내 난소와 나는 띠동갑이었습니다.

아내, B 이야기 - 산전검사


    본격적인 난밍아웃을 위해서는 시간 여행이 필요하다.

3년 전으로 가볼까? 아니, 시곗바늘을 돌리고 돌려 결혼 전, 직장 내 건강검진 결과지를 받아든 날로 돌아가 보기로 한다.

      

    내가 다니는 직장은 2년에 한 번씩 직원 복지 차원에서 건강검진 서비스를 제공해준다. 20대 여성인 내가 건강검진에서 두려운 것은 오직 하나, 몸무게뿐! 전날 저녁부터 금식하라는 병원의 고지도 나의 공식 몸무게를 0.1kg이라도 빼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니 별로 무섭지가 않았다. 그렇게 별생각 없이 검진을 마치고 몇 주 뒤 건강검진 결과지를 받아든 나는 생각보다 적게 나온 몸무게에 빙그레 미소를 짓고 검사지를 집어넣으려다 결과 요약지 하단의 빨간 글씨를 보고 멈칫하게 된다.

     

’AMH(Anti Mullerian Hormone : 난소능력예측검사)는 첨부한 결과지를 참고하셔서 내원 또는 가까운 병원에서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처음 들어보는 영어로 길게 적힌 약어, 뭔지 몰라도 병원 내원까지 필요한 거면 큰 병 아니야? 하는 생각에 후다닥 세부 검사지를 뒤져본 나는 충격적인 소견을 받아든다.

 

‘AMH농도는 1.60ng/mL이고, 수검자와 동일한 연령에서 하위 5%~10% 구간에 해당합니다. AMH농도에 근거해 약 만 39세 여성 중앙값에 해당합니다.’     


‘헐.....미친 거 아니야?’      


    내 나이 만27세. 분명 한날 한시에 태어 났을텐데 내 난소가 나보다 띠동갑 정도로 나이가 많다는걸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불안함에 세부 검사지를 들고 나는 퇴근길에 바로 야간 진료 중인 집 근처 여성병원으로 달려갔다. 여성병원 의사선생님은 ‘AMH 수치보다는 여성의 실제 신체나이가 더 중요하다. 게다가 AMH는 여성호르몬 주기에 따라 계속 바뀌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그때 이후로 나는 한 달에 한 번 생리를 할 때마다 내 난소의 나이를 떠올리며 찝찝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만28세에 결혼을 하게 된다. 아기가 생기면 신혼생활도 그날로 끝이라는 여러 결혼 선배들의 고견에 따라 우리 부부는 결혼 후 1년쯤 뒤에 아이와 함께하는 인생을 그렸고 한동안은 아무런 걱정 없이 신혼생활을 즐겼다.


지역구 보건소에서 제공하는 무료 산전검사


    하지만 내 안에 자리 잡은 불안 바이러스는 날 가만두지 않았고, 나는 보건소에서 신혼부부 건강검진을 무료로 제공해준다는 사실을 알아낸 뒤 신랑을 닦달해 보건소로 산전검사를 받으러 가기로 한다. 검사결과는 정상. 단, A형 B형간염 항체가 없으니 항체 주사를 맞으면 좋다는 소견을 사이좋게 받아들고 우리 부부는 어쩜 항체 없는 거도 똑같냐며 신혼다운 헛소리를 주고받으며 B형간염 예방접종만(나는 풍진 예방접종까지 추가해서) 몇 개월 간격으로 맞게 된다.     




    자, 우리 결혼 생활에서 가장 불안이 없던 시기는 여기서 끝이 난다. 

보건소검사 이후 받은 엽산도 잘 챙겨 먹고 배란테스트기(일명 배테기)도 종류별로 사서 ‘이날이다!’ 싶은 날마다 노력을 했지만, 결과는 매번 한 줄. 그렇게 우리 부부는 좀 더 큰 산부인과인 H병원을 찾아갔고 신랑은 정자검사, 나는 피를 한 바가지 뽑아서 온갖 호르몬 검사와 초음파검사를 하게 되었다.     


    난임의 시작이라고 앞서 밝혔으니 검사결과를 듣고 나는 펑펑 울었을까?

아니, 사실 생각보다 산부인과의 검사결과가 엄청 드라마틱하게 나오지는 않는다. 조금 큰 개인 여성병원에서도 해주는 검사를 좀 더 자세히 받아보는 정도랄까.


    자궁에 근종이 있지만 자궁 바깥쪽에 있어서 임신에 문제가 있을 것 같진 않다. AMH 수치는 낮게 나오지만, 실제 나이가 중요하니 배란일을 받아서(배란일 전후로 자궁 초음파를 보고 더 정확한 배란일을 확인하는 방법) 임신 시도를 해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남편 쪽은 정자의 운동성이 정상 범주 이하로 좋은 편은 아니지만 역시 자연임신이 안된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몇 개월 더 자연 임신을 시도한 뒤에 추가 검사(나팔관 조영술)를 해도 늦지 않다.     


    병원의 상담이 끝난 뒤 우리 부부 중 타격이 큰 쪽은 오히려 남편이었다.

몇 년 전 직장 건강검진이 내게 예방접종이 된 셈이랄까. 상담실을 나와 살짝 어색한 표정으로 웃어 보이는 신랑의 등을 툭툭 두드리며 이쪽 세계의 선배다운 자세로 말을 건넸다.     


오빠, 괜찮아. 이제 다 잘될 거야. 


    의사 선생님을 만났고 자연 임신이 안되는 건 아니라는 대답을 들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날부터 난임과 우리 부부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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