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Y부부 Oct 06. 2021

우리는 난임을 걷는 중입니다.

아내, B 이야기 - Intro


“B야. 결혼한 지 얼마나 됐지?”

“아…. 3년이요”

“벌써? 에이, 너무 늦었다. 그럼 아기는 언제 가질려구?”

“아…. 천천히요”


   사람의 성격을 어떻게 딱 잘라 말할 수 있겠냐마는 어릴 적 나는 ‘당찬 성격’이라는 단어 안에 충분히 포함될 수 있는 아이였다. 또래 친구들보다 키도 빨리 큰 데다 남 앞에 서는 걸 부끄러워하질 않아서 동아리장, 체육대회 응원부장, 전교회장 등 ‘장’이 붙는 자리는 다 맡는, 지금으로 말하면 ‘핵인싸’였다고 할 수 있다. 그랬던 나는 결혼 생활 3년 만에 앞자리보다는 뒷자리를 선호하고, 먼저 말을 거는 사람이 있어도 ‘아…….’ 길게 뜸을 들이며 대답하는 일이 많아진, ‘소심한 성격’이라는 범주에 가까워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 

문득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어릴 적 당찬 그 소녀는 어디로 간 걸까. 나는 지금 어디쯤 서 있는 걸까.


   하늘색 풍선을 흔들고 콘서트에 찾아가지는 않았지만, 나는 학창시절 GOD 노래를 좋아했다. 그 중에서도 4집에 수록된 [길]이라는 노래는 아직도 가끔 찾아 듣곤 한다. 

    

'길'이 수록된 GOD 4집 앨범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중략)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길(2001), GOD 中- 

   

   이 노래에 등장하는 ‘꿈’은 누군가에게는 ‘취업’, 누군가에게는 ‘물질적 부’, 누군가에게는 ‘시험의 합격’이 될 수 있다. 나 역시 그랬다. 15년 전 나는 ‘꿈’의 자리에 ‘합격’을 밀어 넣어 소원을 빌었고, 8년 전의 나는 그 자리에 ‘취업’을 대입했고, 3년 전 나는 ‘부(富)’를 바랬다. 혹시 ‘꿈’이라는 자리에는 평생 집어넣을 수 있는 단어의 수가 정해져 있는건 아닐까. 지금 나는 그 자리에 ‘임신’이라는 단어를 집어넣고 그 어느 때 보다 간절히 꿈이 이루어지기를 3년째 바라고 있지만, 여전히 그 꿈에 도달하는 길은 오리무중 안개 속이다.

   

    대게 모든 건 이뤄지고 난 다음에야 주목받는다. ‘열심히 공부했다’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했다.’라는 결과가 없으면 그 사실은 ‘오늘 나는 아침에 사과를 먹었다.’는 것과 같이 흔하디흔한 일일 뿐이니까. 

    그래서 처음엔 아무것도 이루지도, 내가 어디쯤 서 있는지도 모르는 오늘을 글로 남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오늘도 GOD의 ‘길’을 들으며 불안한 하루를 달래고,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자 나의 불안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 순간 불안했다, 용기를 내고, 다시 좌절하는 삶이 반복되는 오늘일 뿐이지만 그런 마음으로 조금씩 오늘을 남기기로 한다.


나는, 우리는 함께 난임을 걷는 중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