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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운 네살 쌍둥이의 사춘기를 기대한다.

[엄마의 쉼표8 : 사춘기로 아이들에게서 온 초대장]

by 삐와이


"요즘 가장 기대되는 순간이 언제인가?"

누군가는 취미 생활을 '의식주를 제외하고 현재 가장 많은 돈을 쓰는 분야'라고 했고, 누군가는 '현재 자신의 삶에서 가장 기대되는 일'이라고 했다.

그렇게 치면 내게 취미 생활은 조용한 곳에서 나의 하루를 돌아보는 독서, 글쓰기 시간이 맞겠다. 여기서 중요한 건 '조용한 곳'이다. 그 조건을 맞추기 위해 나는 아이들을 위한 놀이시터님을 몇시간 모시거나, 돌봄 기능이 제공되는 키즈카페에 맡겨놓고 책을 펼치고 연필을 든다. 그것이 내가 요즘 누리는 가장 사치스러운 활동이다. 그 시간 덕분에 바쁜 일상에 숨을 불어넣을 수 있어서,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시간이 되었다.




얼마 전 업무적으로 알게 된 분과 식사를 할 일이 생겼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자 서로의 취미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분은 얼마 전부터 새벽수영을 시작했다고 했다.

'아, 정말 부지런한 분이구나. 새벽에 일어나서 그렇게 체력 소모가 큰 일을 다 하시고.'

속으로 감탄하고 있는데, 그다음 말이 인상적이었다.

"아이가 수영을 먼저 배웠는데 너무 재밌어하더라고요. 곧 사춘기가 될 것 같은데, 아이의 취미생활을 온 가족이 따라가 보기로 했어요. 그래서 아이는 중급, 저는 기본, 남편은 기초 레벨에 배정받아서 각자 코스에 맞게 수영을 해요."

그분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아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 자기 세계에 엄마아빠를 초대했는데, 게다가 자기가 더 가르쳐줄 게 많은 거죠. 자연스럽게 가족 간에 대화할 게 많아지고 끈끈해지더라고요."


사실 미운 네 살 쌍둥이를 입히고 먹이고 씻기고 재우기도 급급한 나날이라, 사춘기라는 먼 미래를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막연히 '그러니까 평소에 대화를 많이 나눠야겠다'라는 생각만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다음이었다.

'나는 어떻게 사춘기 아이들과 대화를 많이 나눌 수 있을까?'


대부분의 사춘기는 아이들이 자기만의 세계를 가지면서 시작된다. 그 세계는 엄마아빠가 살고 있는 세계와는 다소 거리가 있고, 아이들은 어른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입을 다물고 문을 잠근다. 그리고 본인을 이해할 수 있는 친구들이나 인터넷 세상으로 떠나버린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그랬다. 지금은 가족끼리 시시콜콜한 대화도 자주 주고받는 비교적 다정한 가족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학창 시절에는 "내가 알아서 할게요"만 반복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내가 관심을 가지는 분야를 시시하고 도움안되는 것으로 여기는 엄마아빠와의 대화가 그리 달갑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한 번 닫힌 문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그래서 사춘기는 '미운 네 살'처럼 '미운'이라는 귀여운 수식어로는 해결이 안 되는 영역이 되는 것이다.




우연히 알게 된 선배 엄마의 취미 생활 덕분에 나는 닫힌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들의 취미생활을 편견 없이 함께하자. 이왕이면 내가 진심으로 아이에게 배울 수 있는 분야면 더 좋다.

"엄마, 그것도 몰라요?"

자신만만해 하는 아이들의 미소를 머릿속에 그려본다. 아마 그 순간 아이들은 자신이 엄마보다 잘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에 뿌듯해할 것이다. 그리고 그 뿌듯함은 자연스럽게 엄마에게 더 많은 것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으로 이어질 것이다.

지금 당장은 옷도 스스로 다 벗지못해서 꼭 마지막에 "엄마, 이거 어떻게 해요? 이거 도와줘요!"를 외치며 내게 달려오는 아이들이지만, 언젠가는 자기만의 세계로 떠날 날이 올 것이다. 그 날이 오면 아이들이 닫은 문 앞에서 노크만 하고 있는 엄마가 아니라, 아이들의 세상에 당당히 초대받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아이의 세계에 초대받는 그날을 꿈꾸며,

"딱 기다려, 엄마가 조만간 따라잡는다!"라며 얄밉지 않게 눈을 흘기는 연습을 해봐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니 인생이 한창 지루해지기 시작할 나이, 40대에 받을 초대장이 벌써 기다려진다.


25.07.28

요즘 육아 어렵다, 힘들다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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