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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아이 말고 너~

[엄마의 쉼표9 : 아들일까? 딸일까? 예비부모님께 드리는 편지]

by 삐와이


"화장실 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는 다소 지저분한 관용구처럼 사람의 마음은 참 간사하다. 임신이 안 될 때는 임신만 되라고 기도하다가, 막상 임신이 되고 나면 마음이 다른 방향으로 미끄러진다. 얼굴은 누굴 닮았을까. 성격은 어떨까. 성별은 뭘까. 그 중에서도 예비부부들의 가장 구체적인 고민은 성별에 집중되어 있을 것이다. SNS에서 심심찮게 보이는 젠더리빌 파티들이 그 증거다. 분홍색과 파란색 풍선 사이에서 예비 부모들은 은밀한 기대를 품는다.


쌍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우리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남자형제만 있는 집에서 자란 남편은 딸을 간절히 원했고, 시아버지는 "그래도 대를 이을 아들은 하나 있어야지" 하시며 남자아이를 바라셨다. 모두가 다른 꿈을 꿔서일까. 다행히 우리 아이들은 남매 쌍둥이였고, 모두의 바람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정작 아이들이 자라면서 깨달은 건, 성별이 성격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들은 딸처럼 애교가 넘치고, 딸은 박력 넘치는 여장부 스타일로 자라고 있다. 우리가 그토록 고민했던 성별의 의미는 생각보다 작았다.




얼마 전 절친한 친구가 임신 소식을 전했다. 그녀는 인터넷에서 본 '아들맘, 딸맘' 에피소드를 언급하며 "이왕이면 우아하게 육아할 수 있는 딸맘이 되고 싶다"고 했다. 몇 달 후 "결국 아들이었어 ㅠㅠ"라는 카톡이 왔다. 나는 "아들이 오히려 더 애교가 넘친다"며 위로했고, "이제 넌 수영장에서도 자유야"라고 농담을 건넸다. 아들과 딸을 모두 둔 사람의 여유였을까. “그렇긴하지….”라는 긴 여운을 남기며 우리의 대화는 거기서 끝을 맺었다.

출처 : unsplash

아이가 태어난 후 친구가 보내온 사진 속 아기는 신생아답지 않게 머리 숱도 많고 눈도 컸다. 얼핏 보면 여자아이로도 보일 만한 아름다운 아기였다. 그 시기 친구가 한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막 딸 엄청 바랐는데, 막상 태어나니까 딴 애기들 다 필요 없어. 얘가 최고야."


일 때문에 주말에만 들어오는 남편 때문에 신생아를 혼자 돌보느라 분명 힘들 테지만, 메시지 너머로 엄마 미소를 짓고 있는 친구의 얼굴이 자연스레 그려졌다. 세상에는 말로 정확히 설명할 수 없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들이 있다. 내게 우리 부모님이 최고인 이유, 내가 남편과 결혼한 이유, 그리고 우리 아이는 그저 사랑인 이유.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시간여행 능력으로 삶을 바꿔가던 주인공이 아이가 태어난 후 더 이상 시간 여행을 하지 않는 장면이 있다. 과거로 돌아가 무언가 바뀌면 다른 아이가 태어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였다.

지금 성별로 고민하는 예비 부모들에게 꼭 전하고 싶다. 태어나면 안다고. 아들인가 딸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바로 당신만을 위해 태어난, 당신과 배우자를 오묘하게 닮은 바로 그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당신은 그 아이를 사랑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세상의 수많은 우연이 만나 만들어낸 우리 아이라는 필연.


다른 아이는 필요 없다. 바로 그 아이, 당신의 아이면 충분하다.


25.08.01


요즘 육아 어렵다, 힘들다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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