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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떠난 뒤, 첫 아침

[엄마의 쉼표13 : 나의 유니콘 시터님을 떠나보내며]

by 삐와이


지금으로부터 십년쯤 전, 어느정도 신입사원의 뽕이 빠지고 직장생활의 물정도 혹독하게 겪은 뒤였던 것 같다. 나는 결심했다. 이 험한 세상에서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는 ‘적어도 육아휴직과 복직이 쉬운 직장’으로 가야겠다고.


그날 이후 나는 몇번의 이직을 거쳤다. 그리고 지금은 비교적 육아에 관대한 직장에서 쌍둥이를 낳고 복직해서 워킹맘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감사하게도 육아기 단축근로까지 신청해서 육아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을 더 벌기까지 했다. 이만하면 육아하기 최선을 근무조건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워킹맘의 일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복직 전 어린이집 앞에서 아이들과 웃으며 헤어지기까지도 몇 달이 걸렸고, 복직 후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자주 아팠다. 폐렴, 장염, 수족구로 돌아가면서 입원을 하거나 가정보육을 해야 했고, 나는 매일 '죄송합니다.'를 달고 살았다. ‘우리가 좋아서 낳은 아이는 우리가 책임지자’는 마음으로 나와 남편은 전우애를 불태웠지만, 남편이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빨리 퇴근해서 퇴근 후 1-2시간을 함께 하는 것 말고는 없었다.


이러다 죽겠구나 싶을 때 나는 서울시에서 24-36개월 아이를 키우는 가정에 일부 시터지원금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시터님을 모시게 되었고, 지난 1년을 좋은 등원 시터님께 의지하며 보낼 수 있었다.


시터님이 오신 뒤 나의 아침시간은 조금은 덜 분주해졌다. 아침에 아이들을 깨우고 아침밥을 준비한 뒤 아이들과 놀아주다보면 시터님이 오셨고, 준비된 아침밥을 아이들이 시터님과 함께 먹는 동안 나는 출근준비를 마치고 아이들과 헤어졌다. 업무가 밀린 날은 시터님이 오시자마자 출근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복직한 뒤 처음 맡게 된 업무에 적응해 나갔고, 아이들도 엄마 없이 등원하는 일상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 같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물론 아직 글을 쓰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낙서와 편지지 데코레이션을 담당했다) 시터님께 작별인사를 담은 편지를 전하며 지난 주, 우리는 시터님과 작별을 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스스로 밥을 먹고, 화장실도 가기 때문에 ‘조금 더 일찍 일어나서 나의 출근 준비만 하면 되겠거니’ 생각했는데 혼자 아이들의 등원을 오롯이 책임지게 된 첫날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밥먹는걸 지켜봐달라고 재잘거리는 아이들에게 '엄마 머리만 좀 더 말리고~'를 외치며 안방과 주방을 정신없이 오갔고, 허술하게 고양이 세수를 한 뒤 '준비 끝'을 외치는 아이들을 다시 하나씩 데리고 화장실에서 꼼꼼이 닦이고 로션을 바른 뒤 집을 나섰다. 2분거리에 있는 어린이집에 도착해서야 깨달았다. '아, 어린이집 가방을 안들고 왔구나'. 출근길, '오늘 등원 어땠어?"라는 남편의 카톡이 와있었다. "빠뜨린게 좀 있긴했는 데, 괜찮았어"라고 담담하게 답장을 보냈다. 그래, 첫날인데 뭐.


정신없이 업무를 헤치우고 퇴근 후 도착한 집안 꼴은 한번 더 나에게 어퍼컷을 날렸다. 현관문부터 널브러져 있는 수건과 아이들의 로션통. 아침 먹은 흔적이 말라 붙어있는 식기류, 거실에서 놀던 흔적까지. 등원 후 설거지와 거실정리를 한 뒤 퇴근하셨던 시터님에 대한 고마움이 뒤늦게 사무치게 올라왔다. 감상에 젖을 시간은 없었다. 당장 ‘엄마는 왜 맨날 늦게 오냐’가 불만인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 했고, 저녁준비도 해야 했고, 오늘은 남편도 회식이라 목욕부터 재우기까지 모든 건 내 차지였다.




그날 밤,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 텅 빈 집에 앉아 있으니 문득 시터님이 처음 우리 집에 오셨던 날이 생각났다. 낯선 분에게 아이들을 맡기는 게 불안해서 오랫동안 서성였던 현관 앞에서, 시터님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걱정마세요, 맡기고 가세요." 그 순간의 안도감이란. 마치 누군가가 내 어깨에서 무거운 짐을 들어준 것만 같았다. 출근 후 한창 일을 보고 있으면 “똘양이가 요즘은 이런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오늘의 비타민입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도착한 아이들의 사진도 그리웠다.


육아의 최종 관문이 아이의 독립이라면, 워킹맘이 되길 선택한 나의 삶의 최종관문은 무엇일까. 오늘따라 유난히 그리운 시터님의 빈자리를 채워가며 나의 워킹맘 라이프가 또 새로운 관문을 지나왔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관문이 마냥 쉽지만은 않겠지만 적어도 시터님과 함께한 나의 지난 날이 든든한 자양분이 되어줄 것임은 분명하다.


2025.08.15

※ [엄마의 쉼표], [이맛육]은 아래의 링크에서 인스타툰/카드뉴스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D

https://www.instagram.com/ddol.mom_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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